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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이용조례 만들자
만불신문(펌) 2006-10-16 14:42:44 | 조회: 5308
말과 승용차

신라 신문왕 때 국노(國老)로 존경받던 경흥법사(憬興法師)는 대궐에 드나들 때 늘 말을 타고 다녔다. 행렬 앞뒤에는 법사를 호위하는 시종들이 늘어서서 위엄과 권위를 더했다. 그런데 어느 날 경흥법사의 권위를 비웃는 고약한 일이 생겼다. 그날도 경흥법사는 입궐채비를 하느라고 말에 오르는 중이었다. 그 때 허름한 행색을 한 웬 노스님이 망태기에 마른 명태를 지고 법사 앞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본 법사의 시종이 '너는 중의 옷을 입고 어째서 깨끗하지 못한 것을 지고 다니느냐'며 꾸짖었다. 그러자 허름한 행색의 노스님은 '산 고기를 사타구니에 끼고 다니는 스님도 있는데 죽은 물고기를 등에 졌다고 무슨 허물이 되겠느냐'며 빈정거렸다.

경흥법사는 깨달은 바가 있어 사람을 시켜 그의 뒤를 밟게 했다. 그를 따라갔던 사람이 돌아와 고하기를 그는 남산 문수사 밑에서 굉주리를 버리고 살졌는데 짚었던 지팡이는 문수보살상 앞에 있었고 마른 고기는 소나무 껍질이었다고 했다. 법사는 '문수보살이 내게 와서 말타고 다니는 것을 경계한 것'이라며 이후 종신토록 말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7 감통편 '경흥성우(憬興聖遇)조에 나오는 얘기다.

경흥법사 승마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현대의 스님들이 자가용 승용차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승용차는 옛날로 치면 말(馬)에 해당되는데 스님들이 이 현대식 말을 타는 것이 괜찮은가 어떤가 하는 것이 자주 일없는 사람들의 화제 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보수적이냐 개방적이냐에 따라 찬반양론이 확연하게 갈라지고 있다.

비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스님들이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보기가 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여행을 할 때 수레를 타고 다닌 적이 없었다. '세 벌 옷에 밥그릇 하나(三衣一鉢)'라는 말에서 보듯이 소유는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삶을 전범으로 삼아야 할 수행자들은 당연히 '적은 소유로 만족할 줄 아는 것(少欲知足)'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열반한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의 누더기 한 벌과 꿰맨 양말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이 감동했던 것도 풍요의 시대에 검소한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스님들은 실용성과 편리성만 따지기보다는 어느 정도 불편하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이에 반해 스님들의 승용차 이용을 청빈덕목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생각이라는 반론도 거세다. 승용차가 사치품이 아닌 생활의 필수품처럼 된 현대사회에서 이를 시비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주장이다. 옛날 인도로 떠난 구법승들이 말이나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넜듯이 요즘 스님들도 필요에 따라 비행기도 타고 승용차도 타는 것은 허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사치라고 한다면 스님들은 아직도 촛불 아래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식의 억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팽팽한 찬반논쟁에 대해 어느 쪽이 더 옳은지는 쉽게 단안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묻는다면 후자가 더 타당하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생활환경이 바뀌었으면 거기에 적응하는 것이 옳지 무조건 옛날 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무리 따져봐도 무리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단서가 따른다. 승용차 이용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고급화 경향은 자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절마당에 고급승용차가 즐비해지면 가난한 단월에게 위화감을 줄뿐만 아니라 수행자의 검소와 절제의 덕목이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종단이 나서서 승용차의 소유나 이용에 관한 조례라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에는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수행자가 좋은 옷을 입는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行者羅網 狗被象皮)'고 충고한바 있다. 옷을 입되 사치한 것은 안 된다는 말씀이다. 승용차 이용과 관련해서 겸손하게 새겨들어야 할 말씀인 것 같다.
2006-10-16 14:42:44
218.xxx.xxx.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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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 2006-10-18 11:04:02 삭제

좋은 제안이다. 이번에 새로 종회가 구성되면 이런 문제를 논의해보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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