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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가자
기막힌, 아니 기묘한 현장이다.

이건 남남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고자 하는 최소한의 자기 성찰의 문제이다.

7일 오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가 인혁당ㆍ민청학련 사건이 정권차원에서 조작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64년 인혁당과 북한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남파 간첩 김영춘’을 지목했다.

과거사위는 그가 “정부 기관으로부터 특수 공작임무를 받아 북파된 인물”이라고 밝혔다.

억울한 죽음, 진실을 왜곡시킨 정권에 묶여 당한 핍박, 이용당한 사람, 기만 속에 자행된 비겁한 동조 또는 방관, 무지했던 침묵…그렇게 짓밟힌 역사! 참으로 캄캄한 일이었다.

무명(無明)의 역사가 반복되는가. 지난 5일 북파공작원 출신모임인 대한민국 H.I.D 특수임무청년동지회(회장 오복섭) 회원들이 보광사에 조성된 비전향장기수 묘역을 파헤쳤다.

뒤늦게 도착한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해병대들은 ‘우리가 한발 늦었다’며 흥분했다니…모든 시비를 떠나 이 사건은 끔찍하고 야만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잘라 비난한다면 그들도 억울할 터이다.

북파공작원은 누구인가? 그들의 ‘애국’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우리는 잘 모른다.

그들 또한 영화 ꡔ실미도ꡕ 때문에 알려졌을 정도로 조국 분단의 그늘이자 역사의 희생양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반목ㆍ갈등의 ‘적’은 북에 있는가, 남에 있는가? 이 또한 이분법적 질문이고, 우문이다.

남북교류협력이 중요한 시대 과제가 되고 있는 마당에,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일보다 관용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애국’일 테다.

왜냐면 우리 사회 갈등비용(시간ㆍ물질ㆍ심리적으로 낭비하는 비용)이 클수록 지체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고 그것은 국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지리산 달궁에서 민족화해를 위한 지리산 위령제가 있었다.

각계 종교단체, 시민단체가 모여서 했던 그 위령제는 민족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영혼들께, 이제 좌우 이념의 갈등을 뛰어넘고 화해와 상생의 시대를 향해 가겠다는, 우리들의 참회와 다짐을 담은 해원의 천도재였다.

그때 나는 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지내는 큰아버지 위패를 모셨다.

그 날에야 비로소 무심했던 조카로서 내 자신을 생각하고 기가 막혔고 부끄러웠다.

작은 인정과 연민이 없었던 내 자신을 참회하는 눈물로 눈이 퉁퉁 부었다.

아니, 조카를 만나 반가운 큰아버지가 그렇게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꽃다운 청춘이었던 큰아버지의 꿈을 생각해 보는 것처럼, 오늘, 비전향장기수들이 마저 태우지 못하고 남은 유골에 서린 한은 무엇이며, 보수적 노병들의 심장을 불사를 듯한 분노는 무엇인가. 사무친 원한의 이면에는 남북을 불문하고 과거 지배 권력의 보이지 않는 탐욕이 있었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가 얽혀있었다.

거기에 전쟁에 내몰린 백성들의 아우성이 범벅이 되어 난마처럼 얽히게 된 원한 관계의 실상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어있는 모순 그 자체였다.

내 발등을 찍고, 내 손으로 내 눈을 찔러 눈먼 것과 다를 바 없는 혼돈의 실타래를 지금 ‘비전향장기수의 무덤’을 파헤쳐 풀릴 수 있을까?세계 강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분단된 한반도에 살면서 이데올로기 경쟁으로 이익 본 게 사실은 없다.

우리는 항상 위태롭고 불안했다.

남북경쟁에서 이긴 남한의 경제력, 그 동안 치렀던 안보비용을 따져보면 뒤로 밑진 장사가 아니었는가? 국방력증강은 미국 군수산업체에 쏟아 부어야 하는 예산을 뜻하고, 남북관계개선은 미국의 윤허(!)가 있어야 되는 측면을 누가 부인하랴. 북한의 파산으로 판정승이 나버린 남북 경쟁에서 이제 대결의 판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던져져 있다.

화해와 협력, 상생의 역사를 쓰기 위해, 남북이 6ㆍ15공동선언을 했고, 북측대표단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태도의 변화도 보여주었다.

과거 반목의 골이 비록 깊었지만, 평화시대를 열려는 남북화해의 새싹을 북돋워줘야 하는 때이다.

골이 깊은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관용의 지혜가 필요한 때에 폭력을 동원하여 반공이데올로기를 선동하는 사람들을 깨어있는 시민들은 결코 동조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사회는 뭔가 동의할 수 없는 가치의 차이가 있더라도, 자기 의사의 표현을 위해 최소한의 예의와 절차가 지켜질 때 스스로 주장하는 자유민주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수준이 되었다.

다양성을 소중하게 보는 자유를 아는 것이다.

그렇다.

자유와 민주가 뭔지도 모르고 자유민주를 수호하는 애국자가 될 수 없다.

자유(自由)는 존재 이유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자유’이다.

여유롭지 못하고 뭔가 굶주린, 자유롭지 못한 자기 영혼을 돌아본다면, 자기를 부정하는 폭력이 부끄러울 것이다.

우리 역사의 발등을 우리가 찍고, 스스로 폭력에 내모는 자살골을 넣는 어리석음은 그만! 화해의 토스로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남북이 함께 가는 길을 찾아야 할 때, ‘연화공원’을 잘 살렸더라면 북한도 과거를 더 부끄러워했을 일이었다.

/ 노귀남(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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