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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魚寺址, 제2의 천진암 되려나?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주어리]소재의 주어사지에 대해 오늘 처음 들었다.

예전에는 부도가 20여기 있었다는데 큰 비에 휩쓸려 소실되고 2기만 남았다는 것이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주춧돌과 절터가 그대로 남아있는 모양인데 밤새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컴퓨터에서 여주군내 사적지, 유적지에 대해 검색을 해 봐도 고달사지는 검색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주어사지에 대해서는 검색란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경기도에 와서 살면서 참으로 불심이 없는 곳이라고 한탄도 해보는데 고달사지를 보면 신라말 고려초의 큰 사찰터로 국보7호 보물4호 등 여러 유물이 남아있다.

추측컨데 한참 불교가 번창하던 신라 고려초에는 경기도 일대에도 큰 사찰들이 많이 있었다는 증거인데 여주군 일대의 지명들을 봐도 별스런 지명들이 많다.

'도립리' '도지리' '상품리' 등 여느 일반적인 윗마을 아랫마을 큰고을 작은고을하던 지명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름들이다.

제2의 천진암이 될 것인가?부도가 20여기나 있었다는데 왜 전혀 파악이 되질 않았을까? 나만 모르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80년대초에 카톨릭의 신부가 그당시 쌀포대로 한 포대의 돈을 들고 와 평당 400원인가에 주어사지를 매입한 후 여러 신부들과 교수들이 와서 주어사지를 둘러보기도 여러차례였고 주어사지에 있던 비석을 서울에 있는 절두산 천주교 성지로 싣고 갔다는데 그 비석에 보면 주어사는 여주 신륵사보다도 더 오래된 절터 갔다고 했다.

천주교에서 먼저 주어사지를 매입하고 답사한 배경을 살펴보면 제2의 천진암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경기도 양평군 여주군 일대에는 과거 조선말에 카톨릭 선교사들이 주어사에 들어와 숨어 지냈다고 한다.

현재 천주교계에서는 광주의 천진암보다 더 오래전에 선교사들의 은신처로 사용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으며, 이에 증거 자료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확실한 증거 자료들이 수집되면 주어사지도 천주교 성지로 성역화 시키는 것이 천주교계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말 때문인가? 잠이 오지 않는다.

여주군에서 조차 자세히 조사파악이 되지않는 절터. 예전에는 수많은 부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천주교 성지로 성역화 한다니...천진암처럼 절터에 수녀원이 들어서고 대형 십자가가 세워지고 지명은 분명 사찰명을 붙인 천진암인데 천주교 성지라고 소개되고 있는... 그와같은 일이 또다시 불교 유적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 불교인은 과연 몇 명이나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모른채 하며 방관해야 하는건지. 그냥 그런 일이 있더라고 떠들고 말아야하는건지, 아니면 불교의 위상을 보존하고 정당한 권리을 찾기 위해 심각하게 대처해야 하는건지.....주어사지는 불자들의 손에 의해 보존되어야만약 이일이 천진암처럼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불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불교유적지 주어사는 보존되어야 하고 어디론가로 옮겨졌다는 비석도 제대로 찾아 원형 복원하고 잘 연구되어지길 바랄 것이다.

주어사의 내력이 천주교인의 손에서가 아니고 불교인의 손에서 세상에 드러나 불교유적이나 사적의 보존이 드문 양평 여주 일대에서 가치있는 불교유적으로 남아 앞으로 이 지역의 불교중흥과 올바른 포교의 근본 초석이 되길 간절이 바라는 것이 불자들의 한결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주어사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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