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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봉거사님! 극락왕생하소서"<인도 현지 르포> 수자타아카데미 총격현장
<편집자주> 김동훈기자님(격월간 <참여불교>편집위원)은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중이십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불교정보센터에 인도 현지 소식을 알려오셨습니다.

<1> 인도 비하르주 둥게스와리 지역에 위치한 JTS(국제 기아질병문맹퇴치 민간기구, 이사장 법륜) 사업장에서 현지시간 10일 목요일 오후 6시 15분경 정체불명의 무장괴한들이 침입하여 총격을 가해 한국인 실무자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평소 JTS 인도 사업장의 보안을 맡고 있는 설성봉(46) 거사는 저녁식사를 하던 중 외부의 소란스런 소리에 정황을 확인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괴한들이 쏘는 첫 발에 참변을 당했다.

당시 JTS 사업장 안에는 설성봉 거사 외에 JTS 실무자 2명과 자원봉사자 9명, 티베트 화공 5명이 있었으며, 법륜스님을 비롯한 실무자들은 정토회 성지순례 행사관계로 바라나시에 있었다.

괴한들은 약 30여분간에 걸쳐 JTS 사업장과 주변마을을 향해 공포를 쏘며 JTS 지바카 병원 뒤쪽 자그디스푸르 쪽으로 사라졌다.

이 지역은 평소 국가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무장갱단이 빈번하게 출몰하여 인도 JTS에서는 자체적으로 대비를 해오던 참이었으나 갑작스런 총격으로 불행한 사태를 겪게 된 것이다.

고인이 된 설성봉 거사는 작년 7월 인도 JTS 건축분야를 담당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며 사고 당일 기술중학교 건물의 1층 콘크리트 투설 작업을 완료하고 인부들과 회식 후 숙소로 돌아온 참이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2시간 후에 경찰이 도착하여 현장감식을 시작했으며 부검을 위해 시신을 경찰서로 운구하였다.

11일 오전 보드가야 근교 '메디컬 컬리지'에서 시신에 대한 부검이 이루어졌으며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을 타격한 12발의 산탄으로 나타났다.

부검된 시신은 바로 JTS 사업장 '지바카 병원'에 안치되어 빈소를 마련하였으며 그날 저녁에 도착한 정토회 성지순례단의 여러 스님과 신도들에 의해 영가천도 기도가 올려졌다.

장례는 12일 오후 4시, 가야시장을 비롯 보드가야에서 수행하고 있는 각국 스님 50여분과 마을 주민들이 보는 가운데 인도식 화장으로 이루어졌으며, 13일 오전에는 영가에 대한 추도식이, 그 뒤를 이어 설성봉 거사가 직접 만든 무대 위에서 '수자타 아카데미 8주년 기념식'과 문화행사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현지 경찰은 수자타 아카데미에 상주하며 해고된 노동자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채 혼선을 빚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보드가야에 와있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저격설'과 관련하여 여러 추측을 하고 있는 가운데 'AP통신'과 '스타TV'를 필두로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뤘으며, 국내언론으로는 '시사저널'에서 기자를 파견하여 현지 취재하고 있으며 정토회 성지순례단과 동행한 법보신문사에서도 취재해갔다.

<2>그런 밤이 지나고도 아침은 또 왔다.

새로 맞은 아침은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는 살아남은 것 같고 그래서 주어진 짐 또한 더 무거워졌다.

사건의 현장에 같이 있었던 우리들의 인생은 이제 어떻게 진행될까?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아직도 현실은 진행형일 뿐이다.

"꽝-" 여느 때보다 가까운 소리였다.

그러나 매일 밤마다 듣는 총소리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다음 소리는 가슴을 철렁 내려앉힐만 했다.

"거사님이 총 맞았어!!" 절규에 가까운 그 소리는 앞을 까마득하게 만들었다.

계속 주의해왔고 지난번 무장강도단 이후로 몇 년의 시간이 흘렀기에 법륜스님도 보안문제에 특별히 신경써 줄 것을 신신당부해오던 참이었다.

그래서 설성봉 거사님이 앞장서서 매사에 신경을 써오던 터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비책을 다 가지고서도 가장 예상하기 쉬웠던 바로 그 시간에 우리는 가장 불행한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의 모든 멤버들이 비상사태에 대비한 약속대로 모든 문을 걸어잠그고서 황급히 옥상으로 모여들었다.

옥상에 올라가서도 괴한들이 쏘는 총탄에 대비해 계속 몸을 바짝 숙이고서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제대한 이후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포복자세를 취하며 우리는 어떻게 될 지 모를 시간을 보내야 만 했다.

상황은 처참했다.

정면 쪽 옥상 가에 설성봉 거사님은 쓰러져 계시고 먼저 올라온 영민(지바카 병원 자원봉사자) 형이 거사님의 가슴을 누르며 지혈을 하고 있었다.

이미 주위는 벌겋게 핏물로 물들었고 거사님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가장 먼저 옥상에 올라와 거사님을 발견한 삼현(지바카 병원 자원봉사자)이의 얘기를 따르면 자기가 발견했을 때 거사님이 '꺼억'하며 고개를 젖히셨다고 한다.

자기 생각으로는 그때가 숨을 거두는 때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건물 밖에서는 괴한들이 또 총을 쏴대며 괴성을 질러대었고 우리는 전혀 앞을 구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저 지켜보아야 할 뿐이었다.

법당 앞 정문 앞에 어른거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으나 감히 플래쉬를 비춰보고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플래쉬를 비추면 바로 거기다 대고 총을 쏘아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옥상에 올라온 우리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비교적 침착하게 사방을 모두 경계하며 그때그때마다 상황을 전했다.

이 곳의 총괄실무자인 선주법사님은 전화로 경찰에 연락하는 한편 법륜스님과 보드가야의 관계자들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수자타 아카데미(인도JTS 사업장은 크게 수자타 아카데미, 지바카 병원, 그리고 사건이 있었던 게스트 하우스-법당 건물 세 채가 있다) 건물 쪽에서도 사람들이 여기저기 고함을 질러대고 플래쉬 불빛들이 왔다갔다하며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수자타 건물에는 얼마 전부터 시작된 학교의 어린 기숙사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행여나 그 애들을 인질로 잡고 우리에게 나오기를 요구하면 그때는 정말 대책도 없는 판이었다.

누군가 동욱이가 안보인다고 소리쳤다.

또 누군가는 동욱이(수자타 아카데미 자원봉사자)가 아직 건물밖에 있다고 소리치고... "동욱아! 동욱아!" 소리를 질러 찾아본다.

"여기 있어요" 병원 쪽 건물이다.

상민(공사장 자원봉사자(이가 심각해진 상황을 전하고 병원 건물로 피신하도록 얘기했다.

동욱이는 저녁을 일찍 먹고 잠시 건물 밖에 있다가 문이 닫혀 버려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영민형이 나에게 한 번 거사님 상태를 보라고 하였다.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싶었지만 우선 급한대로 목을 짚어본다.

하지만 모르겠다.

내가 너무 긴장한 탓일까. 무엇하나 손끝으로 느껴지는 박동이 없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정아(병원 자원봉사자)가 급하게 응급상자에서 쓸만한 것들을 찾아보았지만 지혈하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들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솓아나오는 피를 손으로 막고 있는 것 외에는... '우리 쪽에 부상자만 없다면 경찰이 오기까지 한 시간이든 두시간이든 어떻게든 버텨볼텐데...' '어떻게든 이 포위망을 뚫고 거사님을 병원까지 데려가야 하는데...'.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떠오르는 해답이 없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 머리를 굴린다고 굴려봤지만 새까맣게 지워진 머리 속에서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쪽 사람들의 정황을 살펴볼 겸 영민 형에게 플래쉬를 달라고 했다.

거사님을 지혈하던 형이 잠깐 여기저기 찾다가 플래쉬를 넘겨준다.

내 손에 플래쉬가 넘겨지고 손바닥 전체에 끈적끈적한 느낌이 엉켜온다.

피들이 엉켜있는 것이다.

손에 느껴지는 그 감촉을 애써 느끼지 않으려 하며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러 가야했다.

옥상 여기저기에 우리 멤버들이 바싹 바닥에 엎드려 간간히 고개를 들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선주법사님이 경찰에게 연락했으니까 곧 올거라고 했다.

상민이는 소란스런 학교쪽에 우리 인부들 목소리를 듣고서 아는 이름을 불러본다.

여기저기 섞여있는 목소리에 학교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인부들 중 기술자 '발람'이 평소 우리 병원에서 자원봉사하는 동네 약사 '까미스와르'와 같이 와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 거사님의 상태를 보일 수 있는 건 까미스와르 뿐이라 상민은 출입구 쪽으로 까미스와르 혼자만 오라고 소리쳤다.

몇 번의 잘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 중에 드디어 까미스와르와 발람이 우리 건물 안으로 들어왔고 곧바로 거사님이 쓰러지신 쪽으로 갔다.

그 와중에서도 저들의 총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교 앞 마을로 간 모양이다.

이번엔 마을 사람들에게 총질해대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까미스와르가 거사님의 맥을 짚어본다.

우리는 경계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모두 곁에 모여 지켜본다.

까미스와르가 한참을 짚어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선 두 무릎 사이에 파묻어 버린다.

우리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지만 대답이 없다.

다만 옆에 있던 발람이 "Dead!, Dead!"라고 힘주어 반복해서 말할 뿐이다.

이렇게 쉬운 걸까? 이렇게 간단한 걸까?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 '젠장'하며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땅을 친다.

누군가가 천을 가져왔다.

시신을 덮어야만 했다.

이때 쯤에는 주위도 서서히 조용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설거사님을 향해 삼배를 하고 주위의 둘러앉아 기도를 올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경찰들이 도착하고 현장감식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감식이란 말이 너무 거창할 뿐이다.

총든 경찰들만 떼거지로 몰려왔을뿐 구경꾼에 다름아니다.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않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진술조서도 없고, 그저 자기네 보고서만 쓰고 마는 것이다.

그나마 나은 것은 밖에서 범행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탄피가 발견된 것이었다.

빨간 색으로 칠해진 그 탄피는 한국에서 보았던 밀엽꾼들이 쓰던 그런 종류였다.

산탄총이었다.

그래서 시신의 총알 들어간 자리가 그렇게 컸나보다.

내 엄지손가락이 들어갈만 했으니까. 그 떠들석한 시간을 보내고 동욱과 수진(수자타 아카데미 실무자)그리고 나는 시신을 앰블런스에 싣고 따라가야했다.

도착한 곳은 보드가야를 지나 어딘지 모를 경찰서, 그들 말로는 '메디컬 칼리지'라는 곳의 경찰서였다.

거기서 한참 동안이나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한 얼음과 그것을 담을 관을 기다려야 했고 우리는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오라는 얼음은 안오고 기자들만 몰려오는구나'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인터뷰를 하니 기자들이 질문하는 것이 똑같다.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달라!" "이번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이번 사건 후에도 계속 여기에 남아 일할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구체적인 상황은 아는데까지 설명하지만 내가 이번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나도 범인이 누구고 왜 그랬는지를 몰라 답답한데... 계속 일할 것이냐 떠날 것이냐 하는 질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충격 속에서 자신의 이후 일정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내 의지에 상관없이 JTS의 인도사업자체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판에... 얼음도 왔고 관도 왔고...드라이아이스를 구할 수 없는 이 곳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얼음을 깨서 그 엉성한 나무관에 시신과 함께 채워넣는 것. 설거사님은 그렇게 그 곳 '시체검사소'라고 밖에 얘기할 없는 다 쓰러져가는 해부학 강의실 같은 곳에 모셔졌고 그 냉랭한 방에서 하루밤을 보내셔야 했다.

다음날 시신에 대한 부검이 있었고 부검이 끝난 후에야 나는 경찰관계자와 같이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안 봤길 다행이지. 해부해 놓은 시신을 확인하고 심장에서 나온 총알들도 확인하고... 그렇게 해부대 위에 올려진 시신은 언젠가 들은 듯한 말그대로 '고기덩어리' 일뿐이었다.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해부된 사람 속을 들여다 본 적도 없는 나에게 그것은 아무런 '감흥없음'으로 다가오는 조용한 충격이었다.

열린 곳을 꼬메고 철판으로 만든 급조된 새 관(이 곳에서 그럴 듯한 관을 구할 수는 없다.

관 없이 화장을 하므로...)에 담아 수자타 아카데미로 이동했다.

그 곳으로 돌아가면 법륜스님과 성지순례단 일행도 돌아와 있을 터였다.

관을 병원으로 옮겼고 급히 도착한 성지순례단은 영가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법당은 훌쩍이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우리는 거사님 영전에 차를 올린다.

밤새 스님들과 신도 분들의 기도가 이어졌고 우리는 또 새아침을 맞는다.

상주로 상민이와 창섭이형(공사장 자원봉사자)이 나섰다.

둘 다 거사님과 같이 일하던 이들이었다.

특히 상민이는 거사님이 총을 맞는 바로 옆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고 하마터면 자신도 참사를 당할 뻔했다.

위패가 세워져 있고 제물이 올려져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릇 두 개가 올라있는데 하나는 '밥'이고 하나는 '라면'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건 당일 저녁에 먹던 메뉴가 라면이다.

성지순례단이 오기 전에 구호품들이 먼저 왔는데 그 중에 우리 자원활동가들을 위한 라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 곳에서 라면이라면 아파 누워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 먹는 반가운 음식이었고 거사님도 너무 좋아하셔 냄비채 드시곤 하셨다.

그런데 그 날 저녁은 좋아하시던 라면도 다 드시지 못하고 가신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울컥 눈물이 쏟아질려고 한다.

상주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 수는 없어 몰래 옆방에 들어가 눈물을 닦아본다.

장례는 인도식으로 치루게 되었다.

슈레스(JTS 인도인 실무자)가 주관하여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으고서 장례를 준비하였다.

나무를 쌓고 시신을 내어다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인도는 우리와 풍습이 달라 시신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단다.

마을 사람들이 병원 앞마당에 잔뜩 모여있는 가운데 보드가야에서 오신 한국스님들이 염불을 하시며 마을남자들이 시신을 물로 씻기고 옷을 입힌다.

상의를 입힐려고 상체를 일으키는 총알을 맞은 구멍에서 벌건 핏물이 쏟아져 나온다.

인도 여인네들은 사방천지가 울리도록 곡을 하고, 한국사람들은 울지는 못하고 그저 울먹일 뿐이다.

가야시장을 비롯 많은 각국의 스님들이 보시는 가운데 나뭇더미에 불이 붙여졌다.

상주들이 불을 붙여 장작들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스님들과 신도님네들의 염불이 계속 되고 거사님이 그렇게 연기로, 재로 사라지셨다.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 오늘 염불해주시던 스님들의 말씀을 옆에서 엿들을 수 있었다.

"오늘 참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영가도 아주 편히 쉬시는 것 같았어요""저는 마치 영가가 저에게 '정말 편안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오늘 화장은 얼마나 깨끗하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군더더기도 하나 없고...""정말 복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시는 길을 밝혀주었으니..." 거사님은 그렇게 가신 것 같다.

자기 한 분의 죽음으로 우리를 다 지키신 것이고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이 사업도 지키신 것이다.

연기로 재로 사라지던 그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인생의 무상함을 눈으로 직접 보았으며, 여기서 이루고자 하던 큰 뜻들이 지켜져야 함도 느꼈다.

이 사건을 겪은 우리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충격이고 상처이면서도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눈을 열어주었다.

설성봉 거사님의 명복을 빌며 왕생극락을 기원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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