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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남진의 오로빌공동체와 인도NGO탐방기<2>“나마스떼!”
[편집자]참여불교재가연대 기획실장 윤남진 법우가 4월 13일부터 22일까지 9박10일간 <시민의 신문>이 주최한 ‘NGO 인도연수'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불교정보센터는 참여불교재가연대와 함께 윤남진실장의 오빌로공동체와 인도NGO 탐방기를 몇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열독(?)부탁드립니다.


인디언들과 코리언들이 뒤섞여 짐들을 선반에 올리느라 어수선한 가운데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일행 셋이 나란히 앉았는데 내 왼쪽으로 <가톨릭농민회 청주교구본부>의 유영아 간사, 그 옆에 <전국귀농운동본부>에 성여경 사무처장이 나란히 앉았다.

유영아 간사는 나보다 2살 아래였고, 성여경 사무처장은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성여경 사무처장은 우리 일행의 부단장 - 나중에 아무런 실권도 없는 자리였다는 것을 알고는 내내 버스 뒷자리 마피아로 실질적인 보스행세를 하긴 하였지만 - 역할도 함께 맡고 있었다.

내 앞에는 호남사투리를 징글맞게 쓰고 - 전라남도 고흥 출신 - 현재 오로빌공동체마을에 부인과 두 남매를 견습과정에 보내놓고 있는 자칭 기러기 아빠라고 하는 김철관 <언론개혁시민연대> 운영위원이 앉았다.

김철관 선생은 배재대학교 겸임교수로 출강도하고 <구로타임스> 취재부장으로 직접 취재활동도 하고,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뉴스>에 종종 기사도 올리는 분인데 시종일관 걸쭉한 호남사투리로 <조선일보>를 보지 말자는 말을 입에 붙이고 다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중간 통로를 건너 내 오른쪽에는 평소에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 쓰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라도사투리와 제주도 사투리를 모두 자유롭게 구사하는 <거제환경운동연합>의 윤미숙 사무국장이 있었는데 그분은 몇 년 전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인도 배낭여행을 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 옆에는 나중에 나와 인도여행 내내 몇 개 호텔을 도는 동안 방을 함께 쓰게 될 <강진사랑시민회>의 윤영선 사무국장이 다소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것은 나를 둘러싸고 비행기 좌석을 나누어 앉았던 이들에 대해 나중에 알게된 기억이다.

나는 초면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될 때마다 좌불안석이었다.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델리공항에 도착하기까지 7시간 여 동안 신상명세 이상의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나는 기내에서 나온 저녁식사 때 와인을 두 잔 들고 난 다음 내내 잠에 취했다.

비행기가 인도 영공에 들어서야 기내 통로를 다니며 말썽을 피우는 인디언 소년을 말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이 녀석은 옆에 있는 엄마의 말은 물론이고 김철관 선생, 승무원 언니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이탈했다.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는 소리가 들리고 몇 번씩이나 승무원이 주의를 주어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고집을 피웠다.

김철관 선생이 나서서 거듭 구슬려 보려고 하자 승무원이 이제 그만 하라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 자칫 다칠 수도 있으니 어떻게든 - 한국 아이였다면 심하게 꾸지람을 해서 울며 겨자 먹기가 될지라도 - 자리에 앉혀 안전벨트를 매게 해야 할 것인데 그만하고 그냥 두라는 말이 좀 이상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승무원이 하는 말이 “꼬마들에게 잘 해주니까 마치 자기 하인들처럼 생각해서 더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도 그렇다.

그 꼬마녀석이야 철없는 놈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녀석의 엄마는 정말 왜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까? 안전벨트쯤 매지 않아도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하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우리 같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 아이가 그 꼬마녀석 같았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녀석을 자리에 묶고야 말았을 것이다.

결국 그 꼬마녀석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로 무사히 델리 공항에 착륙했다.

델리 공항에 내리니 후덥지근한 여름날씨였다.

입국 수속 장에서는 정체불명의 괴질인 <사스> 여파로 인해, 내 실력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영어로 된 페이퍼 한 장이 주어졌다.

물론 화장실 청소할 때나 맡을 수 있는 소독냄새도 진동했다.

다른 일행이 쓰는 것을 떠듬떠듬 흘겨가며 빈칸을 채웠다.

(<현대드림투어> 소속으로 안내를 맡은 분이 페이퍼의 가장 밑에 있는 증상 - 설사 혹은 고열증세 등 - 에는 절대로 아무표기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페이퍼의 아주 간단한 정답이었다.

) 자유주의적이라기 보다는 다소 사회주의적인 냄새를 풍기는 입국심사대 공무원의 한마디 질문, “그룹?...어쩌구...”(앞에 사람들과 일행이냐는 질문인 듯)에 대해 “예”라는 한마디로 응대한 후,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 대단히 권위적인 소리를 듣는 것을 끝으로 입국절차를 모두 마쳤다.

짐을 찾아 공항 앞 주차장에 대기중인 전세버스에 오르려 공항 문을 나서니 초여름 무더운 인도 날씨가 확연히 다가왔다.

대강 짐을 부려놓고 애연가들이 늘 그렇듯이 버스 한켠으로 죽 늘어서서 담배를 꺼내 문다.

출국할 때 성냥과 라이터를 소지할 수 없어 모두 큰짐들에 넣어 보냈는데 다들 언제 챙겼는지 손에는 이미 불이 들렸다.

버스에 오르니 인도 출국 때까지 동행할 현지 안내인을 소개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그의 성과 이름을 전부는 모르고 그냥‘씽’이라고만 알고 있다.

씽은 독립인도의 초대 수상을 지내고 현재의 인도 다수당을 기초한 자와할랄 네루를 닮아 보였다.

씽은 대학졸업 후 한국 여행사와 인연을 맺고 현지 가이드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고 했는데 유창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인도 말(20여개 대표적인 인도 말 중 현재 국가에서 권장하는 공용어인 힌디어)로 하는 인사를 가르쳐 주었다.

“나마스떼!” 인도 현지 시각으로 4월 14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예약된 델리의 그랜드호텔에 도착하여 아침 7시 식사시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사 측에서 얼마나 단단히 호텔 측에 부탁을 해 놓았던지 새벽 6시와 6시30분 두 번에 걸쳐 잠을 깨우는 전화벨이 울렸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have a good day..”어쩌구 하는데, 녹음된 것인지 생소리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몽롱한 상태에서 무조건 “땡큐!”했다.

나중에는 대개 녹음된 것이라고 해서 방을 같이 쓰던 윤국장님 스타일대로“알았당께요!”하던지, “모시 모시”하는 것으로 바꿨다.

어떤 날은 두 번 벨을 울리고도 모자라 세 번째로는 호텔 측의 직원이 방문을 일일이 두드려 확인하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윤국장님이 먼저 세면장을 이용하는 사이 나는 호텔 커튼을 활짝 열고 인도의 첫날 아침을 맞았다.

창문 밖으로는 열대의 야자수가 시원하게 서 있었고, 비둘기들이 한가로이 날았다.

아래에는 분수대의 물을 길어다 호텔 정원의 돌길을 닦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멀리로는 성벽와 같은 커다란 돌담이 바로 몇 미터 밖의 세상과 최고급 호텔을 갈라놓고 있다.

나는 펜을 들어 인도여행에서의 첫 메모를 시작했다.

인도여행기간 중 내가 생각해보고자 했던 문제, 이번 인도 여행 중의 나의 화두를 차분히 적어 내려갔다.

지금 서울은 아마도 오전11시쯤 되었을 것이다.

* 다음에는 <3. 타지마할, 그리고 간디의 흔적을 찾아서>가 계속됩니다.

글 : 윤남진(참여불교재가연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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