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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카 병원 이야기 - 용감한 남매 이야기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 나왔다.

핑계는 비자연장을 위해서이고 인도의 주변 국가 아무곳에나 가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쉬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까지 들어와 버렸었다.

한국에서도 역시 인도 병원에서의 사업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이곳저곳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의료관계자들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셨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남도 아니고 바로 필자의 여동생이었다.

필자의 여동생은 새내기 의사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인턴으로 금년부터 근무를 하기 시작한 이 친구는 오빠의 해외자원봉사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오빠로부터 틈틈히 둥게스와리 천민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다보니 현지의 의료구호사업을 누구보다 걱정하기도 한다.

이번 기회에 여동생은 오빠의 실무기술을 늘려주기 위해 이것저것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어느날 밤에 갑자기 방에 들고 온 갖가지 모양의 주사기들과 어디에 쓰는지 모를 의료용품들. 병원 입원환자들에게나 쓰던게 아니겠는가. 여동생은 정맥주사를 꽂는 연습과 기브스를 하는 연습을 오빠에게 실습시켜줄려고 준비한 것이다.

우선 동생이 내 팔에다 시범으로 설명을 곁들이면서 주사바늘을 꽂는다.

애꿎은 멀쩡한 피를 뽑아내면서...어떻게 하는건지 쉽고 자세히 설명해주지만 요점은 간단하다.

무조건 찌르고 보는 것이고 부단한 연습만이 사람을 능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음은 내 차례다.

자기 팔을 내미는 동생.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자기 한 쪽 팔과 주사기를 내놓는다.

자기들 실습할때는 다 이렇게 하는거라고 애기하면서... 참으로 이렇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할데가... 필자는 이런 의료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어쩔 수 없이 인도현장에서 필요하니 병원 책임을 맡았을 뿐. 큰 마음 먹고 동생 팔뚝에서 정맥을 찾아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바늘을 꽂아본다.

인도에서야 인도스탭들이 하는 것 옆에서 보고서 엉덩이 주사를 놓아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세밀하게 찔러 넣어야 하는 혈관주사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아뿔사, 어디 그게 보는 것 만큼 쉽던가. 동생의 팔뚝 속에 들어간 나의 바늘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피도 뽑아져 나오지 않는다.

다시 조금씩 바늘을 뺐다가 다시 찔러 넣기를 수 차례. 결국 대충 하기는 해서 성공은 했지만 동생의 팔뚝은 말이 아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는 동생을 보니 잠깐 걷혀 올라간 소매사이로 팔뚝의 파랗게 멍든 자국이 보인다.

이렇게 미안할 수가... 다음날 저녁, 이번에는 기브스다.

석고붕대와 기타 물품을 가지고 와서 직접 시범을 보인다.

석고붕대에 물을 묻혀 굳는 것까지 보여주려고 하는데 이것을 보여주려는 시간이 웬만큼 늦은 밤이어야지. 보통 아침 7, 8시이전에 출근하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는 인턴의 생활인데,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씻고 잠들어버리는 것을 본게 하루이틀이 아닌데, 이 날만큼은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개발(?)을 위해 기어이 수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오늘은 쉬고 다음에 하자는 나의 부탁(?)을 끝까지 뿌리치고서 말이다.

동생이 이렇게 수업을 강행하면서 설명해주는 이유인즉슨 '인턴생활을 해보니 생각날 때 바로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이 영영 뒤로 밀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 피곤해서 못하겠다면 다음에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끝내 기브스하는 것을 배웠다.

덤으로 일단은 뼈를 맞추고 나서 기브스를 해야하는데 무조건 잡아빼서 딱 맞추라는 친절한(?) 방법까지 주워들었다.

현지의 열악한 사정을 틈나는대로 설명해주었더니 그에 맞춰 딱 맞는 매우 적절한 조언을 이렇게 해주기도 한다.

필자의 동생은 나중에 의사 남편을 만나서 부부가 같이 험한 곳으로 의료자원봉사를 떠나는 꿈을 꾸고 있다.

고등학교때 아프리카에서 평생 봉사하다 귀국하는 의사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아 의대를 지원한 얘였다.

오빠는 병원장, 동생은 의사. 참으로 잘 나가는 집안아닌가. 사실은 필자도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인도현장에서 어려운 경우들에 자주 부딪히다보니 제대로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신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정토회 의장인 유수스님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한국에 들어가서 의대공부를 하고나서 다시 오고 싶다고...그런데 유수스님 왈, '6년간 학비 다 대주겠다.

의사가 되서 돌아오거라'. '단, 둥게스와리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 풋!, 이건 정말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의사가 되는 걸 포기했다.

대신에 우리 동생같이 어려운 조건을 감수하고도 평생 봉사에 헌신하고 싶어하는 의사들을 포섭(?)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 주위에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보건의료관련 종사자들 중에 이런 종류의 일에 관심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곳 둥게스와리의 지바카 병원을 알려주셨으면 한다.

혹 그게 안되더라면 우리 동생같이 불법적(?)으로라도 개인의료과외실습을 시켜줄 분을 소개시켜주셨으면 좋겠다.

정말 여기에서는 아쉬운게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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