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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한 K 선배에게
K 선배. 기억나요? 4년 전인가, 허리우드 극장에서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한 그릇에 1,500원 하는 해장국집이요. 왜 선배하고 가끔 종로 근처에 오면 선배는 늘 이쪽으로 절 끌고 오곤 했죠. 선배가 출가한다고 서울을 떠나갈 때 이곳에서 소수 두 병을 함께 비웠죠. 선배는 이곳에 오면 선배의 존재를 느낀다고 했나요? 아마도 가난한 삶에 지친 이들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가하고 전 생각했죠. 바로 우리들의 탁자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어 함께 잔을 기울였는데 그 분이 돈이 없어 밥값을 우리들이 낸 사실도 기억하죠? 술도 잘 못하는 선배는 소주 몇 잔에 취해서인지 눈가가 붉어졌어요. 그 때 전 선배가 우는 이유를 삶이 힘겨워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선배는 가난과 하나가 되지 못한 스스로를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그 눈물도 선배 스스로에게 보내는 눈물이었죠. 합리주의자였던 선배는 끝내 반합리주의자였어요. K 선배. 오늘 저녁 무렵 그 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그곳으로 들어가 해장국을 먹었어요. 그 때와 값도 달라진 것 없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변함없이 어두운 옷감으로 주름진 빈곤함과 피로감을 안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세상은 탈근대니 21세기니 하고 어디론가 돌진하듯 털컹거리며 가는데 이곳만은 4년 전 그대로입니다.

때가 낀 탁자하며, 닳고 상처난 국그릇이 4년 전의 필름 속으로, 아니 더 오래된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유독 오늘, 선배와의 일이 떠오른 것은 오늘도 그 때처럼 제 탁자 앞에 거친 주름의 할아버지 한 분과 합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해장국 한 그릇을 시키더니 그곳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럽게 그러더군요. 소주 500원어치만 달라고. 소주 500원어치. 세상에는 500원어치 소주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군요. 아닌게 아니라, 그곳에서 소주는 2,000원이었습니다.

밥값보다 비싸더군요. 그 때는 1500원이었는데 말이죠. 아주머니의 안 된다는 단호함에 그 분은 허허, 하며 꼼짝 못하더군요. 옆의 노인 분이 슬며시 끼어들어 막걸리는 500원에 마실 수 있다며 훈수를 둬줍니다.

그러더니 그분은 다시 허허, 막걸리도 술이니까 막걸리 500원어치 주소, 합니다.

아주머니는 곧 막걸리병을 가져와 500원어치 한 잔 따라 줍니다.

그 분은 달게 막걸리를 마시며 눈을 씀벅거리는 저를 보고 허허, 하고 쑥스러운 듯 주름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K 선배. 제가 측은지심이나 동정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줄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어느 날 머리를 흔들고 다시 보니 아까와는 전혀 다른 화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 놀라움에 어쩔 줄 모르는 그런 것입니다.

햇볕은 눈앞에서 잘게 부서지고, 모든 사람들은 낯설게 타자화(他者化)되어 버립니다.

물질화된 근대성과 합리성의 건조한 서걱거림에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후훗, 저도 합리주의자는 못되나 봅니다.

윤기있게 미끌거리는 탁자보다 1500원짜리 해장국집 탁자에 가슴이 더 싸, 한 것이 말입니다.

K 선배. 저는 근 몇 년 동안 불교의 젖을 먹으며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젖을 먹는 사람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목숨바쳐 삼보에 귀의한다는 이야기가 그 1500원짜리 해장국, 500원의 막걸리처럼 나의 일상에서 잊혀져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건조한 모래같은 합리성으로 무장한 채 불교를 보고 있자면 많이 어지러울 때가 있습니다.

목숨바쳐 귀의한다는 말이 매끈한 합리성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 뭐 그런 것 말이죠. 그것은 어느 분이 표현했듯 일종의 '정리성(情理性)'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이심전심과 비슷하겠죠. 훗,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는 뻔뻔한 비합리가 공격스러운 불교계에서는 간지러운 소리군요. K 선배. 오늘 그저 성글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누군가 선배를 마산 부근에서 봤다고 하고, 강원도 어느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바람 속에 실려옵니다.

눈물 많은 형이 오늘 많이 보고 싶군요. 1500원짜리 해장국은 여전히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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