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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부추기는 그들은 누구인가
『불교신문』 9월 7일자 도법 스님의 칼럼 <조계종에 대한 절망>이란 화살은 아프다.

정작 화살은 다른 곳으로 쏘았는데 아픈 사람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역설적이다.

뿐 아니라, 최근에는 종단 내에 상식의 눈으로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뻔뻔하고 공격스럽게 벌어지고 있어 우리 불교계에 절망을 부추기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곱씹게 한다.

첫 장면. 도법 스님이 "분노를 넘어 절망"케 하고 "종단을 곡(哭)"하게 하는 까닭은 강원 정원을 30명에서 10명으로 하향 조정하는 과정의 일방성과 졸속성, 그리고 반민주적인 오만과 독선이다.

종단의 백년대계인 교육문제를 한 차례의 본사주의회의를 한 후 성급하게 결정한 것에는 교육문제를 사찰 운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구태의연함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 스님의 판단이다.

이제 '교육만이 살 길이다'는 명제는 공염불이 됐다는 것이다.

둘째 장면. 지난 종단 사태 때 종헌과 종법을 부정하고, 종단 권력에 탐착하느라 살진 배를 가른다고 위협했던 '정화개혁회의'에 주도적 참여자인 탄우 스님을 중앙종회의원으로 재입성케 한 중앙종회의 전근대적 몰가치성이다.

그리고 이 전근대의 식탁에는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결된 '종권 파이 나눠먹기' 흔적이 보인다.

그들은 깨끗하게 치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전근대의 습(習)은 치우지 못한 채 파이 자른 칼과 파이를 담은 접시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 파이 묻은 칼과 접시를 치우는 사람들은 물론 무덤덤한 종도들이다.

너무 많은 것을 어설프게 말하지 말자. 다친다.

그러나 다치지 않을 정도는 말하자. 그리하여 우리들을 무덤덤하게 접시만 치우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면서 계속 파이 나눠먹기에 골몰하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식적 수준에서의 잣대가 필요하다.

첫째. 허공에 대고 분심(忿心)을 내지르지 말자. 분심을 가진다는 것은 애심(愛心)과 동전의 양면임을 볼 때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 분심은 포도주잔 들이키며 '카카카카' 웃으며 내지르는 쾌심(快心)과는 구별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타깃이 흐릿한 분심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분심은 흔히 양비론으로 외화되는데, 양비론이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킨 것은 익히 경험한 바다.

물론 양비론이 꼭 부정되어야할 논리는 아니다.

문제가 분명 양쪽 다 있다면 이 양비론은 순기능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이 양쪽에 대한 세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구체적으로 지적되면서 이에 따른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양비론은 정교성을 갖는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제기되는 양비론은 흔히 기득권자에게만 순기능을 하게 된다.

일례로 중앙종회의 파행에 대한 책임을 이러한 양비론으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에서 문제제기했듯이 탄우스님의 재등장과 동국학원의 이사의 특정 문중의 일방적인 도배질은 상식으로 보아도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상식이 상식을 뻔뻔스럽게 공격적으로 몰아간다.

흙탕물 속으로. 여기에 양비론의 침을 뱉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문제는 비상식에 있다.

비불교에 있는 것이다.

이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둘째. 순결성으로 모든 것을 때리지 말자. 이 순결성은 막강한 무기이다.

이 칼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우수수 낙엽 떨어진다.

그래서 불교계의 나긋나긋하고 우아한 순결주의자들은 작은 흙탕물에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는 코를 막고 손사래를 친다.

"이 잡것들!" 하고 말이다.

이 순결주의자의 눈에는 종단의 모든 정치적 행태가 혐오스럽다.

이해가 된다.

그러나 동의는 못한다.

왜냐면 이들은 혐오를 즐기면서 어떤 대안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성실하게 흙탕물 속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더욱 혼란함과 무력감만 잔뜩 안기고 저 멀리 떨어져서 득의양양하다.

이들의 눈에는 그나마 흙탕물을 바꾸려는 노력도 너무나 가소롭다.

그래서 도덕적 순결성을 무기로 나름대로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난타한다.

그러나 나는 그 순결성이 너무나 의심스럽다.

연기론의 시각으로 본다면 종단 정치가 불교의 신해행증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체감하려면 그 사이에는 수많은 징검다리가 있어야 한다.

모든 불자들에게 이 징검다리를 파악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이기에, 적어도 한두 개 정도는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불교밥을 먹는 사람들의 의무일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우리를 절망 속으로 부추기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정교하고 세심하게 사부대중 앞에 드러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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