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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에 '근대'가 주는 의미
첫 생각. 이상한 일이다.

불교라는 위대한 가르침을 보여준 부처님의 생애를 진지하게 모색한 책이 많지 않다는 것은. 각종 교학과 가벼운 수필류가 불교계 활자문화의 주류를 이루지만, 정작 그 밑바닥을 흐르는 부처님이란 역사적 인간이 온몸으로 겪었던 부침의 시간은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는 깨달음과 교학을 고압적으로 움켜쥔 채 필요할 때 베풀 듯 내어주는 불교지식인들의 오만함이 엿보인다.

그들은 불교를 아무나 접근할 수 없게 하는 그들만의 언어로 암호화시켜 코드 읽기에 열심토록 불자들을 독려한다.

이런 행태는 부처님 생애의 무게 중심을 깨달음 이후의 화려함으로 이동시켜 불교를 기계적으로 읽어내게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 가졌던 스스로에 대한 근원적인 자기인식과 물음은 '사문유관'이란 이름으로 간략하고 깔끔하게 정리한 채 들려준다.

그러나 정작 불교의 출발은 고타마가 가졌던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존재적 물음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생로병사에 대한 끝없는 자기물음과 자기분열의 과정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행로가 부처님을 있게 한 원천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불교계에 교학체계의 암호화, 녹음기 틀기 등의 일그러진 문화가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 깨달음 이전의 문제는 곧, 근원적인 자기인식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것은 난중지사이다.

만해와 데카르트. 어제(17일)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사람이 함께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강좌가 김상봉 교수(전 그리스도신학대학 교수)의 강의로 열렸다.

6개월로 진행되는 이번 강의의 첫날 이야기는 <근대의 자기의식>.김교수에 의하면 서구에서 '근대'란 의미는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곧, '나'가 자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기와의 투쟁으로 행복과 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로 읽고 있다.

이는 보편적, 절대적 세계가 지배했던 고대 및 중세와 가르는 중요한 잣대이다.

그래서 서구에서의 '근대'는 희망적인 자기 발견, 자기 복귀의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게 '근대'란 것은 오히려 '자기 상실의 시대'이다.

식민지와 분단 시기를 거친 우리에게 '근대'란 근원적인 자기분열과 단절 속에서 체험될 뿐이다.

그런데 김교수가 주목하는 점은 바로 이 자기분열과 단절을 떨리며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이것이 이상하다.

그 분열과 단절 속에서도 아무도 갈등하거나 미치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이. 선배에게 세 번씩 허리굽혀 인사하는 중학생들의 문화와 n세대로 일컫는 테크놀러지 문화가 함께 동거하는 이 기이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김교수가 발견한 지점은 바로 한국사회 뿌리와의 정직한 대면이다.

이 땅에서 근대란 절망적인 자기상실과 자기분열이었기에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철저한 부정, 그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우리의 분열상을 정직하게 개념화하였을 때 바로 서구의 근대가 아닌 우리 근대의 핵심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것을 그대로 파지(把持)하는 정신을 요구한다.

식민지 시대의 만해(卍海)는 그 절망적인 자기분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 감당했던 사람이라고 김교수는 보고 있다.

근대적 주체의 자기 복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해와 데카르트는 함께 논의될 수 있다고 밝힌다.

오늘의 불교계에서 '근대'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근대'의 논의를 회피하면서 우리 길을 가겠다는 게으르고 아둔한 이들의 반발은 웃으면서 넘기고, 우리 불교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가를 밑바닥까지 내려가 물어보자. 어쩌면 그 바닥에는 고타마가 밤을 새하얗게 지새며 뒤척였던 자신의 존재의미와 역할의 시간들이 첩첩하게 쌓여있지 않을까. 더불어 식민지 시대와 해방, 그리고 정화시기를 통과한 오늘의 한국불교에게 '근대의 문제의식'의 확인은 현실문제 해결에 대한 냉철한 시각 교정의 머릿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에 대한 천착의 부재는 곧 한국불교를 테크놀러지의 한 복판에서 보였던 자기 상실의 추태를 반복하게 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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