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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교계언론인들의 오만과 무지
"특히 그 폭력사태에서 히히덕 거리면서 건수 찾았다고 즐기고 있는 불교계 기자들을 본격적으로 비판할 생각입니다.

" 천리안 불교동호회 <너른 벌판>에 올려져 있는 나의 글 중 이 부분이 불교계 기자들을 발끈시켰나보다.

이해한다.

그리고 우선 사과한다.

일부 교계 기자들의 행태를 전체 교계 기자들인 냥 싸잡아 비판한 것은 잘못됐다.

앞으로 조심하겠다.

성실하게 불교의 앞날을 고민하고 있는 교계 기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불교계 기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도하게 감정이 개입되었다.

다시 한번 사과한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잘못을 인정한 것은 그것이 분명 잘못된 언어 선택이었기에 그렇다.

때문이 나는 <불교계 기자들>을 <일부 불교계 기자들>로 바꿔서 비판하고자 한다.

나는 천리안 불교동호회에 글을 올린 후 지난 16일에 <불교정보센터>에 <불교자주권의 절망과 자학>이란 글을 썼다.

천리안 불교동호회에서 올린 글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 글에서 나는 일부 교계 기자들이 왜 지난 10월 1일과 2일 재판부 오판 사태가 난 후 이 사태를 <불교자주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 문제가 바로 "자기 모멸" 때문이고, 그런 태도는 결국 "마조히즘의 키득거림만 부추길 뿐이다"라고 제기했다.

그런데 웬걸? 아무런 답변도 없다.

오직 들려오는 소리는 나를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놈이다, 언급할 필요없다, 두고 보자, 넌 교계 기자들에게 찍혔다, 등등의 말과 욕설뿐이다.

이 소리들을 들으면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거 무서워서 어디 교계기자들을 비판할 수 있겠나. 더구나 나는 교계에서 글쓰는 것으로 업을 삼고자 원을 세웠는데, 이거 정말 잘못 찍혔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일부 교계 기자들에게 묻는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이 진심인가? 그러면서 뒤로는 음습하게 나를 비난하면서 '두고 보자'는 식으로 겁을 주다니! 웃기는 일이다.

나는 일부 교계 기자들의 그러한 현실 인식이 그들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준 것이라고 본다.

다른 곳도 아닌 글로써 불교밥을 빌어먹는 교계 기자라는 사람들이 글로써 비판의 논거를 삼지 않고, 끼리끼리 주고받는 가벼운 말로 공중에 떠다니도록 부추기다니. 나는 일부 교계 기자들의 그런 행태는 불교언론의 수준만 떨어뜨리는데 기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우울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앞으로 불교언론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불교계에게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의 형태를 갖고 있는 한국불교기자협회(이하 불기협)에 소속해 있는 교계 기자들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력한 비판의 담지자로서의 행동만을 해왔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대방을 비판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이는데 익숙하지만, 비판을 받아들이는데는 아주 낯설어한다.

감히 누가 교계 기자들을 비판한단 말인가. 오직 그들은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뿐 비판을 받는 역할은 아주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일부 불교계 기자들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과도한 반응도 이런 비판을 그들이 받아들이는데 아주 낯설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우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부 불교계 언론 반응의 모습을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례 1.> 『법보신문』 10월 13일자의 1면 머릿기사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체제로 전환>이다.

이것은 이 신문의 일관된 지향이다.

다음주 신문의 1면 머릿기사도 <11월 15일 새총무원장 선출>이다.

『법보신문』의 관심은 재판부 판결 이후 줄곧 관심사가 <새총무원장 선출>이다.

왜? "불교의 자주권과 법통수호를 위해 하루 속히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하여야"(10월 13일자 사설)하기 때문이다.

그래? 불교의 자주권과 법통수호를 위해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솔직히 웃음이 나온다.

완전히 자가당착이다.

법보신문은 재판부의 판결이 "종단의 자주성 침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것"(10일 13일 사설)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주성을 침해한 <총무원장 부존재 확인>을 받아들여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하자고 한다.

언제부터? 재판부 판결 이후 줄곧 주장하고 있다.

이 논리의 모순에는 이번 재판부 오판 사태를 계기로 나타난 불교자주권 문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이후 종권(宗勸)의 향배에 대한 예민한 포석만이 준비되고 있는 그림자가 보인다.

물론 법보신문의 <새로운 총무원장 선출>의 주장은 물론 자유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불교의 자주권과 법통 수호를 위해>라고 한다면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불교의 자주성을 위해서라면 재판부에 의해서 부정된 고산 총무원장을 재추대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래야 앞뒤가 맞다.

그런데 법보신문의 논조는 그렇지 않다.

종헌·종법을 지키자고 결연하게 외치면서도 종헌·종법상 고산 총무원장이 사퇴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퇴>했다며 재선거에서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하자고 일갈한다.

왜 앞뒤가 이렇게 안 맞는가.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하다.

밝혀달라. 사례 2> 이번 사태는 재판부가 <총무원장 부존재 확인>과 <직무대행 선임>이라는 판결을 시작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일부 불교계 언론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주간불교』10월 12일자 1면 머릿기사는 <물리적 충돌 안된다>였고, 다음주 19일자 머릿기사는 <또다시 폭력 국민들 경악>이다.

나는 폭력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현 총무원이 폭력현상에 대한 상당히 둔감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폭력이 문제되는 것은 지금 현 조계종단이 방어적인 폭력의 범위를 넘어서 공격적인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 때문이다.

한쪽이 폭력을 일으키겠다고 작정하고 있다면 폭력은 언제든지 일어날 개연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충돌은 안 된다"는 녹음기만 틀어대는 것이 과연 언론이 내어야할 소리인가? 그리고 막상 폭력 상황이 일어나자, 1면 사진으로 "또 폭력"(법보신문)을 내보내고, "우정국로는 치안 부존재"(주간불교)라면서 거품을 문다.

일간지의 황색저널리즘의 뺨을 서너 댓쯤은 때리겠다.

여기서 나는 불교언론이 하나의 팩트(fact)를 소홀하게 지나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년 조계종 11.30 승려대회에서 확인한 것처럼 조계종 종헌·종법의 정통성이 조계종 종정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종정의 정통성을 내세운 정화회의의 불법성을 조계종단 안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언론은 이런 팩트를 외면한 채 현 조계종단과 정화회의를 동일선상에서 놓고 마치 객관보도를 하고 있는 냥 흉내를 내고 있다.

(지금 정화측이 보여주는 직무대행 유효 주장도 불교언론은 그저 팔짱만 끼고 객관보도라는 미명하에 양측의 싸움을 보고만 있다.

불교언론은 언제 자신들의 가치판단을 보여줄 것인가?) 이런 팩트의 불성실함은 결국 재판부의 오만스런 오판으로 정화회의가 눈꼽을 떼고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에 찬물을 앞에 대령하고 세수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객관보도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는 불교자주권 문제를 불교언론이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자사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끼워넣기로 다루는 모습 속에서도 보여진다.

물론 불교언론이 이를 팩트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있다.

그러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한 후 논지를 전개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사도 없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가? 나는 이런 몇몇 사례들이 바로 일부 불교계 기자들에게 이번 폭력사태를 자기 모멸적으로 받아들여 마조히즘의 색채를 보여주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문제의 핵심과 원인에 대한 분석보다도 현상에 대한 보도 태도만이 춤추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불교 언론이 이 말을 실천하려면 작년 조계종단 사태이후 사태의 원인 분석을 세밀하게 하지 못한 게으름을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이번 재판부 오판 사태를 계기로 나타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조계종단에 과연 불교사상과 그 정신이 살아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물음은 교단이 살아있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 속에서 "과연 우리가 이 집단을 지켜야하는가"란 문제가 던져져야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문제가 출가자들의 싸움이라고 보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논지를 스스로 따르려면 앞으로 사부대중의 종단 참여란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입으로는 사부대중을 외치면서 교단이 중요한 위기에 처해있을 때 출가자의 싸움으로 외면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에게 조계종단이란 무엇인가, 왜 불교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조계종단의 손을 분명하게 들어주지 못하고 있는가 등의 문제는 조계종단에게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위기와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던져줄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정작 고민해야 할 부분들은 이런 부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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