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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불화, 불화
대학 졸업을 앞둔 94년 겨울. 나는 서른이 되면 출가할 것이라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내심 단단히 결심을 하였다.

그 나이가 되면 나는 많이 자유로워질 것이고,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여유로운 눈을 가지게 되고 거친 강퍅함이 많이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 때까지 나는 천박하게 덜컹거리면 가는 이 세상에 어지간히 칼날을 똑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고, 세상과는 영원히 불화(不和)할 것 같았다.

나는 세상과 아무런 갈등없이 발랄하게 화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불온하게 배회했다.

그러나 나는 완벽하게 불화하지 못했고, 그 불완전의 틈새로 희미하게 올라온 붓다의 가르침에 나는 늘 출렁였다.

그리고 지금 그 때 출가할 것이란 나이가 일년이 지나고 다시 2년이 지나간다.

그것도 새로운 세기란 이름으로 말이다.

불법(佛法)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98년이 99년으로 넘어가는 현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며 늘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고, 나의 일상도 99년과 큰 결별을 할 기미는 보이지 않기에 밖의 소란스러움이 마뜩찮기만 하다.

오히려 나는 2천년이란 것이 물리적인 수사로서가 아닌 이 때까지 살아왔던 완고하기만 한 삶의 가치를 전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넓어지고 복잡해지면서 그만큼 갈망과 절망은 더 깊어졌다.

하여 날이 선 채로 세상과 불화했던 눈으로는 내 자신을 많이 피폐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간파할 때쯤 나는 새로운 세기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세상과 이제 불화하지 않고 화해하는 것일까? 그리고 세상은 내가 악수를 내밀 정도로 부드러워졌는가. 나는 아직도 이 천박한 자본주의 문명에 잘 적응할 수 없다.

인간을 광포하게 무지의 나락으로 밀어뜨리는 알 수 없는 정체, 아니 조금은 그 모양을 드러낸 것들을 마주하면 나는 어지럽다.

세상이 전보다 더욱 부드럽기는커녕 무섭도록 간교해졌으며, 인간 실존의 여백은 그만큼 늘어난다.

세상은 불의 온도와 모양을 바꾼 채 늘 불타고 있을 뿐이다.

내심자증(內心自證)을 더욱 치밀하고 열정있게 내 속에 돋을새김 해야 할 뿐이다.

불교가 인간 실존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기에 불교를 온몸으로 밀고 가는 사람들은 늘 이 실존의 문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오늘의 시대에 섬뜩하게 체감되는 것은 붓다이래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실존적 문제의식과는 그 결이 다른 것 같다.

나는 그 결의 차이를 아직 지혜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러면 그 그물망 속에 있는 나는 이제 어떤 보폭과 무게로 발을 내딛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서 불교는,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현실역사에서의 불교는 나에게 어떤 나침반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세상과 불화하고 있지만 거친 강퍅함은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나는 더 정교하게 불화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물음을 던진다.

혹, 세상과 화해하면서 불화할 수는 없을까? 예를 들면 자본주의 속에서 살면서도 자본주의 삶을 넘어서는 것, 그런 것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온갖 풍요와 혜택을 즐겁게 누리면서 고(苦)를 반복하며 나불대는 사이비 불교주의자들은 말고. 사원경제의 온갖 단물을 맛보면서 속 빈 머리와 고압적 권위로 불교를 희롱하는 의사(擬似) 출가자들 말고. 이런 가짜 출가자들과 기생하거나 비밀스럽게 공생하며 목숨을 이어가는 불쌍한 재가자들 말고. 참,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왜냐면 "고릴라쯤 되면 벌써 상대방이 째려보는 것에 신경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과 즐겁게 화해하는 자. 나는 의심한다.

지금 세상과의 불화에만 골몰하는 자. 나는 안타깝다.

생뚱같지만 99년 조계종단 사태 이후 즐겁게 화합하고자 하는 자. 나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냉소에만 골몰하는 자. 안타깝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사람이 배짱이 맞는다는 이유로 동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웃긴다.

세상과 화해하며 불화하는 자는 혼자만의 길을 기꺼이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사회, 그리고 우리 불교계에 필요한 사람들은 세상과 화해하며 불화한 채 홀로 가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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