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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후에. . . . .
만정(卍定)은 보시게.금년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네. 이제 입춘(立春)도 지났고, 해제(解制)도 했으니 머지 않아 봄이 오겠군. 지난 겨울 엄동설한(嚴冬雪寒) 속에 그대의 공부에는 꽃 피는 소식이 있었는가? 세월은 덧없이 흘러 임진(壬辰) 생인 나는 금년에 나이 오십이 되었네. 일찍이 십육세의 어린 나이에 돈발(頓發)하는 신심(信心)을 어쩌지 못하고, 중학교를 다니고 있든 나는 미처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할 사이도 없이 출가(出家)를 단행했었네. 그리고 이네 구족계(具足戒)를 받기도 전부터 운수납자(雲水納者)가 되어 조국(祖國)의 산천(山川)을 떠돌며 참선수행(參禪修行)을 해 왔지만, 아직도 부처님의 은혜(恩惠)와 고향(故鄕)의 부모형제(父母兄弟)에 은혜를 갚기에는 공부가 턱없이 부족하네. 그리고 그대와 나는 불가(佛家)의 오랜 전통(傳統)에 따라 스승과 제자라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인연(因緣)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나는 남의 윗사람이 되기에는 덕(德)이 부족(不足)하고, 나 한사람을 수용하기에도 가진 복(福)이 모자라는 사람이네. 그대는 그런 사람의 상좌(上佐)가 되어 무던히 마음고생도 많았을 것이네. 거기에다가 수행자로서 행실(行實)에도 허물이 많아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을 것이네. 그런 점에서 나를 거울삼아 그대는 그대의 상좌들에게 그런 실망(失望)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게. 오늘 나는 내 인생의 오십 년과, 출가사문(出家沙門)으로서의 삶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허물을 점검하고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네. 세속(世俗)적인 의미로 본다면 유서(遺書)라고 해도 좋고, 그대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유촉(遺囑)의 글이라고 생각해도 좋네. 고인(古人)들은 그저 열반송(涅槃頌)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일생(一生)의 살림살이를 다 정리했지. 한데 나는 이렇게 번거롭게 긴 글을 남겨 공연히 일을 만들고, 허물 하나를 더하게 되었네. 우선 앞으로 내가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더 살다가 죽을지 모르겠어나, 오늘 내가 하는 말은 그 먼 훗날까지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바, 만약 내가 중간에 생각이 변한다면 그때는 오늘을 기준 삼아 나이든 사람의 허물을 지적해 주게. 항용 노추(老醜)라고 하여 닦아 놓은 도력(道力)도 없이 나이 들고 늙어지면 살아 있든 정신도 죽어지고 점차로 추(醜)해지는 경향이 있어 그를 경계하여 하는 말이네. 우선 내가 죽고 나면 내 살림살이를 정리 할 때,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수행자의 삶이란 내외(內外)가 명철(明徹)해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해 주게, 그리하여 비록 작은 허물이라도 그대들의 눈에 발견이 된다면 그것을 절대로 감추려 하지말고 [우리 스님은 이런 저런 허물이 있었습니다.

]하고 밝혀 주게. 아울러 반대로 자랑 할 만한 것이 조금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대들이 나서서 자랑하려고 하지 말게. 왜냐 하면 참으로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라면 그대들이 나서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나서서 자랑 할 것이네. 그러니 상좌(上佐)들은 그런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 전에 큰스님들이 열반하신 뒤에 그 문도(門徒) 들이 자신들의 스승을 과대(過大)하게 자랑하여 세인(世人)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네. 그런 일이 내게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일생을 수행자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 왔네. 예전 처음 선원(禪院)에서 수행(修行) 할 때였지. 여러 도반(道伴)들이 지대방에 모여 앉아 말하기를 [우리는 일평생(一平生) 일대사(一大事)를 해결(解決)하는 일에서 물러나지 말자.]라고 했네. 그때의 초심(初心)에 따라 나는 일생을 수행자로 살기로 작심(作心)했었네. 종단개혁(宗團改革)과 실천불교운동(實踐佛敎運動)을 하느라고 분주하게 보낼 때도 수행자의 마음을 저버리지는 않았었지. 94년 종단개혁(宗團改革)때 잠시 종단(宗團)의 여러 중요(重要)한 소임(所任)을 맡아 본 일이 있기는 하지만, 이내 종단 일에서 손을 땠고. 98년도 분규(紛糾)이후에는 크게 실망하여 일체의 소임을 다 사임(辭任)하고 본래의 수선납자(修禪納者)로 돌아 왔네. 자고로 나 스스로는 나아 갈 때 나아가고 물러 날 때가 되면 물러난다는 것을 실천하고자 한 것이지. 앞으로도 부처님의 밥을 축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위로 불은(佛恩)을 갚고 아래로는 시주(施主)의 은혜(恩惠)를 갚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소임을 보지 않는다고는 말 할 수 없어나, 그럴 때라도 나는 적당한 때에 신속히 물러나 수행자로 돌아 올 것인 바, 만약 내가 작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적미적한다면 그대가 나서서 말해 주게. 이는 정말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이네. 은사는 상좌의 모범이 되어야 하겠지만, 상좌 역시 은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보이면 즉시 충심으로 이를 알려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고인의 글을 보면 [비록 티끌 속의 세상에 있으나 마음은 항상 깨끗하게 한다.

[誰在塵勞心常淸淨]]고 한 것이 있는데, 일찍이 나는 98년도 종단의 분규 때에 수행자가 자기 직분(職分)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체험(體驗)했네. 98년 분규를 막기 위해 일신을 돌아보지 안았지만 종단은 결국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웠지. 그것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아상(我相)이 없는 보살행(菩薩行)이란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란 것을 깨달았을 뿐이네. 각설하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 역시 나이 들면서 수행자의 본분(本分)을 망각하고 위선(僞善)적인 행위로 대중(大衆)을 속이고도 스스로를 합리화(合理化)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네.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가 도인(道人)이 아닌 이가 없고, 참답게 수행하지 않은 이가 없지. 하지만 그들이 참으로 재물(財物)이나 명예(名譽), 권력(權力) 등을 초월(超越)하여 일체에 걸림이 없는 도인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없지 않네. 아울러 그대와 나는 오직 주변을 돌아볼 여지도 없이 오직 수행만을 할 것이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을 속이지도 않는 사람이 되도록 하세.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가 서로를 철저히 탁마(琢磨)하여 위선(僞善)적인 인간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지. 내가 그대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은 이것 뿐이네. 사람 몸을 받아 불법을 만났으니 우리가 할 일이란 오직 일대사를 해결하는 것 그것 밖에 달리 무슨 일이 또 있겠는가. 그리고 이제부터 정말 내가 죽고 난 후에 일을 부탁하겠네. 다비식(茶毘式)은 무조건(無條件) 간소(簡素)하고 간결(簡潔)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주게. 그러기 위해서 영결식장(永訣式場)에 참석(參席)하는 인원(人員)을 스님과 신도를 다 포함하여 100명을 넘지 말기 바라네. 여기에 스님의 숫자도 2~30명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네. 그러니까 지극히 가까운 몇몇 스님들에게만 나의 죽음을 알리게. 장례(葬禮)의 경비(經費) 역시 평소 내가 사찰(寺刹)로부터 보시 받은 돈을 통장에 넣고 사용해 왔는데 그 통장에서 인출하여 사용하게. 그리고 경비의 액수는 현재의 물가 기준으로 5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해 주게. 49제 역시 그 경비를 300만원으로 하고, 부도(浮屠)는 세우지 않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만약 그대들이 꼭 세워야 한다면 그때도 먼저간 도반 종태(宗跆) 스님의 것 보다 결코 크게 하지 말아 주게. 여기에 소용되는 돈은 통장에 남겨 놓을 것인즉 그것으로 충당하게. 오늘 이후 내가 몇 십 년을 더 살는지 모르지만 내가 가사 종단(宗團)의 큰스님이 된다고 해도 오늘의 이 기준과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한 것인즉. 내 인생의 끝까지 무소유(無所有)의 기본 정신을 버리지 않을 것인 바. 내가 죽은 후에 그대들에게 물러줄 재산이 있다거나 할 것으로는 기대하지 말아 주게. 수행자가 죽은 후에 고액의 통장이 있다던가. 달리 감추어 둔 재물이 있다고 하는 것은 큰 수치가 아니겠는가. 그런 중에도 내가 죽은 후에 그동안 이래저래 글을 써서 책을 만든 일이 있는데, 그 판권은 실천승가회에 넘겨주게. 문집(文集)을 만든다 든 가 하는 것도, 그 책임과 권한을 실천승가회에 넘겨주게. 기타 여기에 미쳐 기록하지 못한 사항에 대하여서는 먼저 검소하고 간결하게 해야 한다는 정신을 살리는 선에서 처리하고, 보광사(普光寺) 주지(住持) 일문(一門) 스님이나, 법안(法眼) 스님과 상의하도록 해 주게. 한 사람의 수행자로 일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큰 복락(福樂)이네. 그러한 복락(福樂)을 나는 원 없이 누리고 살았으니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오늘 죽는다 해도 무슨 여한 있을 것이며, 앞으로 백년을 더 산다고 해도 이보다 더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앞으로 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미진한 공부를 마무리하고 부처님의 커다란 은혜를 다소나마 갚는 것이지. 만정(卍定)! 그대와 나는 은사(恩師)와 상좌(上佐)를 떠나서 같은 수행자이며, 부처님의 제자이네. 우리가 출가(出家)하여 사문(沙門)이 된 것은 오직 하나 확철대오(廓徹大悟)하여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벗어나는 것이네. 내가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한마디를 해야 한다면, [부디 초발심(初發心)을 잊어버리지 말자.] 하는 것이네. 그럼 여기서 글을 끝내겠네. 깨달음의 세계에서 다시 만나세. 守 口 菴 曉 林 合 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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