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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The Reds!' 붉은악마가 되라
1.월드컵 16강 진출은 한국인들에게 아주 소중한 염원이다.

1987년 6월 10일 시청 앞을 가득 메웠던 민주화의 열기에 버금가는 '붉은 열정'을 2002년 6월 10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을 뒤덮은 붉은 셔츠의 인파는 우리에게 얼마나 월드컵 16강 진출이 중요한지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월드컵 16강 진출에는 '미국'이라는 장애가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평범한 이웃 국가가 아니다.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인에게 친근한 이웃 국가도 아름다운 나라도 아니다.

다만 약소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족 감정을 쇠꼬챙이로 쑤셔대는 증오스런 국가일 뿐이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또한 구닥다리 전투기를 팔아먹기 위해 한반도에 엄청난 전쟁 위협을 몰아와 온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한국인들 중에서 미국을 허물없는 이웃 국가로 생각하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몇몇 한나라당의 정치인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 미국을 상대로 한국의 붉은 전사들이 축구라는 스포츠로 대결을 펼치던 날, 경찰은 모든 물리력을 준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그리고 몇몇 언론들은 국민들의 반미 감정이 축구를 통해 폭발해서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현명했다.

시청과 광화문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들은 '스포츠는 정치이다'라는 명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정치적으로 현명하게 미국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마음 속 깊이 갈무리 한 채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응원했다.

이날 2002년 6월 10일 미국 대사관은 물론 재한 미국인의 손끝도 다쳤다는 기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 축구 대표팀 브루스 어리나 감독의 말처럼 미국은 한국 축구대표팀 11명과 경기를 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인 모두와 싸워야 했다.

그렇다.

한국인들은 거리에서 90분간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일심동체의 조직력으로 미국과 최선을 다해 싸웠다.

2.한국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다면 더덩실 춤이라도 추겠다.

그만큼 소중한 염원이다.

그런데 한국의 월드컵 16강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있다.

노숙인 인권도 월드컵 16강만큼이나 소중하다.

아니 생명존엄의 문제이기 때문에 월드컵 16강보다 더 중요하다.

대부분 시민들은 모르겠지만 올해 초 서울시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거리노숙인을 몇 백명씩 묶어 지방 청소년수련원으로 4박 5일간 '특별연수'를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철회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이를 통해 노숙인을 바라보는 서울시의 반인권적인 시각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가 중요하다고 해도, 도시미관을 저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노숙인들을 격리하려 했던 발상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사회적 약자인 노숙인을 지원해야할 행정당국이 수시로 이런 발상을 하니 노숙 당사자들이 갖는 사회에 대한 불신을 어떻게 씻어야 할지 답답하다.

행정당국이 보기엔 노숙인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었다.

노숙인들은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오! 필승 코리아"를 목청껏 외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지난 6월 4일 한국대 폴란드의 경기가 있던 날, 노숙인 공동체 쉼터 '아침을여는집' 가족들은 'Be The Reds!'가 인쇄된 붉은 셔츠를 입고 광화문 4거리에서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과연 6월 4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오! 필승 코리아"를 목청껏 외친 10여명의 그들은 누구일까?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면…. 3. 방송국 카메라에 비친 시청 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붉은악마의 환호와 탄성도 들리고, 북과 나발 소리도 들린다.

온통 월드컵의 광기에 도심이 달궈지고 있을 때, 수만명의 붉은악마의 발 밑 시청역 지하도에 웅크린 노숙인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월드컵의 광기에 한국이 달궈지고 있을 때, 떡볶이를 조리해서 팔던 생계형 노점상들이 거리에서 몰려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월드컵의 광기에 전 지구가 달궈지고 있을 때,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가 제3세계 아동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공이란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류의 축제인 월드컵. 축제의 규모만큼이나 거리에서 축제로 잊혀지는 사람들도 많다.

4년에 한번. 한 달동안 벌어지는 광기의 시간인 월드컵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아무도 월드컵의 광기에 전염되고 삼켜진다는 걸 모른다.

잊혀진 사람도, 광기에 삼켜진 사람도 모두 거리에서 외칠 뿐이다.

'Be The Reds!'. 붉은악마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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