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서산과 사명의 후예들에 바람
1.지금 어느 불교계 연대기구에서 박노자 교수의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사회에 스며있는 위선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해온 한국학 교수로 이름나 있습니다.

강의는 오는 6월 17일 저녁 동국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며 강연주제는 '호국불교와 폭력의 문화를 넘어'라는 것입니다.

호국불교의 대명사는 서산과 사명임에 틀림없습니다.

서산과 사명은 한국불교의 선맥을 잇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선불교가 사회적 고통과 재난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본보기로 두 분은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두 분이 승병을 일으키고 칼을 들고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전쟁에 나선 것을 가볍게 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두 분이 조선시대 8천민 중의 하나이고 도성출입이 금지되어있던 최하층인 승려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국왕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배운 바로 해석하자면 전쟁으로 인해 조선과 왜의 사람과 강토가 처절한 고통에 잠길 것이기에 그것을 막고자 군사적 혹은 외교적 수단을 동원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명당이 군사적 행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 한치의 변호도 펴지 않은 것으로 보면 그것은 더욱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박노자 교수의 논문에 인용된 사명당의 다음의 시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겠습니다.

'남의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였으니 남도 또한 내 형을 죽였으리라 어찌하여 너에게 돌아오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남의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였나?'자신이 지은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그 과보가 남는다는 것은 부처님 생전의 이야기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심코 땅을 짚다가 미물이 깔려 죽었다면 그것은 악행은 아니지만 그 생명을 죽인 과보는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불교인들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한 행위 혹은 많은 생명을 살리는 폭력과 같은 좋은 일을 위한 행위는 과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행위에 대한 과보는 빈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2.우리는 사명당의 시를 읽고 사명당의 불제자로서의 고뇌 그리고 일관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중생(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 어떻게 후대에 와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아니 특정한 정파, 정치권력을 보호하는 것으로 전락하였는지 되물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정관념과 낡은 틀을 깨는 선사적 지혜로 우리민족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정세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고통과 재난을 예방하고 생명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산과 사명의 정통 선맥을 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조계의 후손들이 우리 민족과 우리 민족을 둘러싸고 있는 4대 열강의 움직임에 대해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그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을 주문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내년(2003년)은 협정 상 북한 경수로공사가 끝나야 하는 시점이고, 북한이 핵사찰을 받아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긴장과 대립으로 갔을 경우 군사적 충돌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닥치지 않을 것이라 하더라도, 남북의 생명들에게 주는 긴장과 스트레스, 선군정치(군대 우선 정치) 하에 있는 북한 주민들이 겪게 될 배고픔과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북한의 NPT 탈퇴 때처럼 북한에 대한 미사일 공격과 서울 불바다가 거론되는 상황도 아예 상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김정일위원장의 답방을 시급히 실현해야 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위해서는 남한의 여야 정치인들이 이 부분에 대해 마음을 합해주어야 합니다.

이 남한의 여야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일에 서산과 사명의 선맥을 잇는 대선사들과 그들로 구성된 종단들은 사자후를 토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필요하다면 현 대통령과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을 준엄히 꾸짖기도 해야 할 것이고, 번득이는 선적 지혜로 해결의 단서(화두)도 일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남과 북이 긴장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고 그 거대한 물결이 만들어진다면, 북한의 굶주리는 수많은 중생들을 건질 수 있을 것이며, 하나의 비좁은 섬사람들로 고립되어 온갖 스트레스 속에 이해와 너그러움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처럼 되어버린 남한의 중생들에게 대륙횡단의 광대함과 접하게 하고 거대한 문화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서산과 사명의 후예라면 불과 몇 백억 짜리 불사를 가지고 아둥바둥할 것이 아니라 수천만 민족의 생명을 살찌우고, 세계 인류를 크게 이익 되게 하는 이 일을 이 시점의 선적 실천의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월드컵은 우리 나라가 얼마나 좁고, 그 동안 남한 사람들이 광대한 대륙과 완전히 고립되어 살아왔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을 '세계전도'에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청사의 다른기사 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