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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양심' 부정할 수는 없다
흔히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멀리하는 마음을 양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척도로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사회적 윤리에 비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우리는 양심에 맞는지 양심에 걸리는지 판단할 수는 있다.

사회적 윤리의 기준과 가치는 사회 구성원들마다 다르다.

이런 이유로 동일한 행위이지만 어떤 곳은 윤리적으로는 물론 법률적으로 합법적이더라도, 어떤 곳에서는 법률적으로도 불법이거니와 윤리적으로도 파렴치하게 취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회적 갈등이 우리사회에서 논란 중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부정하는 허영철(한겨레신문2002. 7. 11. '왜냐면' <'양심'이라고 모두 보장할 수 없다> 참조)의 말을 들어보면 양심이나 신념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양심이나 신념이라는 잣대로 사회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합의된 규칙인 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근거로 법을 위반했을 때,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양심이나 신념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까지가 양심, 여기를 넘으면 양심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측정 불가능하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실존하는 양심'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있을까? 측정할 수 없을 뿐이지 분명 '양심'은 실존하기에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 '양심'이 무엇이기에 이런 논란을 가져다 줬는지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중세철학에서는 옳음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그름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의 타고난 능력을 양심이라고 일컬었다.

양심(良心, conscience)은 '함께-알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 라틴어 conscience, 그리스어 syneidsis에서 유래했다.

이는 우리말의 '양심'보다는 넓은 '의식(意識)'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은 원래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둘 다를 '함께-아는'데서 성립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양심은 분명 자의적인 신념만은 아니다.

만약 '양심'이 자의적인 신념 체계라면 일년에 수백억원을 버는 사람이 양심상의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양심적'이기 때문에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양심은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을 함께 성찰하는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수백억원을 버는 재산가가 개인적 욕망으로 세금을 착복하고 싶어도 사회적 규범이 그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회화된 규범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 모두에 '양심의 자유'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이처럼 측정 가능하지 않더라도 양심과 양심 없음의 경계를 인간의 이성은 어느 정도 분별할 능력이 있다.

그건 그 사회가 합의한 규범의 수준과 개인의 진실을 사회적 이성이 충분히 검증할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과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와 맞물릴 수 있는 것일까?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내심(內心)의 자유'에 속하며, 행동의 자유에 선행하는 정신적 자유의 근원을 이루는 자유이다.

양심의 자유는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 한 법률로서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유이다.

그러나 각 국가들의 상황과 시대적인 한계는 표현하는 '양심의 자유'를 법적으로 옭아맨다.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병역은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자 신성시되는 의무로 각인되어져 있다.

분단 50년동안 병역의 의무를 놓고 시민들은 '양심의 자유'를 자유롭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남·북한의 분단은 강력한 국가주의적 통제를 강요했다.

국가주의 폭력 앞에서 그 어떠한 '자유'도 더 이상 '자유'로 성립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국가주의 통제장치인 병역의 의무가 정의롭고 신성한 것은 아니다.

병역거부는 양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종교와 양심의 신념에 따라 병역과 집총이 자신의 양심을 거슬리는 행위임을 확신한다면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병역거부의 '양심'이 과연 양심적인가라는 것이다.

오태양씨와 유호근씨로 대표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평화를 지향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인류의 공생정신에 비춰 볼 때, 분명히 양심적이다.

더욱이 수많은 외침과 전쟁의 위협 속에 살아왔고 살아갈 우리들이기 때문에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폭력의 부정하는 사회적 의식은 중요하다.

비록 실정법인 병역법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이들은 파렴치범이나 양심이 없는 사람들로 단정하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주의 폭력에 의해 강요되고 신성시되는 '의무'와 인류의 평화공존을 지키고자 선택한 '양심의 자유'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가슴 아픈 사실은 오태양씨와 유호근씨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이 군 복무를 마친 모든 이들에게 혼란과 고통을 주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고뇌한다.

"나는 비양심적이어서 병역 의무와 집총을 자연스럽게 택했던가?"라고 말이다.

절대 아니다.

군복무를 마쳤거나 군 복무 중이거나 군 복무가 예정인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비양심적이지 않다.

또한 호전적인 사람들도 아니다.

다만 다른 길, 즉 군 복무를 대신해서 사회에 봉사할 길인 대체복무제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역의 짐을 짊어진 것뿐이다.

오늘날 각국의 특수한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의 차이는 있으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이다.

추세는 이러하다.

우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근거가 종교의 자유뿐만 아니라 양심의 자유 영역까지 확대해 가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과연 진실로 양심에 근거해 병역이나 집총을 거부하는 것인지를 심사하는 심사기관을 설치하고 있으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대체복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허씨는 대만의 대체복무제 도입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대만은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한정된 국방 예산으로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 과정에서 남아도는 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만의 군 현대화 과정이 대체복무제에 도입에 기여했을 것이다.

현대 전쟁은 미국의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처럼 버튼 조작만으로 전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현대전의 수행을 적절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군 현대화는 필수적이다.

대부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일찍 실현된 국가들은 선진국이며 군 현대화를 남 보다 빠르게 이루한 나라들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대만의 병역거부권의 획득과 대체복무제는 수많은 평화주의자들의 쉼 없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얻어진 열매이다.

다만 군 현대화 과정과 맞물려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는 허씨의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또한 그는 대체복무제의 현실 적용에 있어서 소위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을 하는 학교, 해외 파견 등에 배치되면서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대만의 대체복무제도가 일으킨 박탈감은 박탈감 축에도 끼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현행 병역제도는 '가진 자와 권력가'들의 병역비리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은 물론 모든 시민들에게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덧붙여 대만의 대체복무제도가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 악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대체복무인력 때문에 사회복지단체 직원들의 임금 삭감과 정식 직원의 대체복무인력으로 대체 등으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용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제도를 인류는 만들거나 가져 본 역사가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보완·수정하여 인류의 공익에 최대한 기여하려 노력할 뿐이다.

미래에 벌어질 두려움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공존에 기여할 제도를 부정적으로 성급하게 재단할 필요가 없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분명 우리들이 대체복무제도의 불안정함을 인식하고 있다면 발생가능 할 부정과 부조리는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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