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파병결정, 우리는 비겁했다황금빛 사슴 니그로다
이라크 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모든 나라들이 정의를 외치지만 속내를 들어다보면 이해관계의 득실에 따라 움직인다.

대량살상무기 폐기와 테러방지라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의 속내도 결국 ‘석유’를 독점하겠다는 탐욕일 뿐이다.

부시와 럼스펠드, 블레어가 이 전쟁을 ‘예방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세계시민은 이 전쟁이 ‘침략전쟁’임을 다 안다.

국회에서 이라크 침략 전쟁에 파병을 결정했다.

한국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파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야만과 폭력, 독재정권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미국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보증수표라며 시민을 설득했다.

파병이라는 보증수표는 결국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한국 정부는 파병을 하는 대신에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을 문서로 받아냈는가.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립서비스를 국가간의 약속인 것처럼 믿는 것은 혹시 아닌지 모르겠다.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듯 개운하지 않다.

파병문제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파병찬성 입장을 지닌 사람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공조해야 우리가 산다는 주장이고, 파병반대 입장을 지닌 사람들은 세계시민에게 한국이 반전,평화의 결연함을 보여야 한반도가 평화의 메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괴롭다.

내가 살기 위해서 어린이들과 여인들이 죽어가는 전쟁터에 군대를 보내야 하는가? 과연은 국익(國益)은 정의(正義)보다 중요한가?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새싹들에게 정의를 가르치고 설명해야 한다.

한국군의 이라크 전쟁 파병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함 밀려온다.

만약 내 아이가 “아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왜, 한국군을 보냈어?” 라고 묻는다면 “응, 내가 살기 위해서 이라크 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단다.

” 이렇게 대답해야 하는가. 부처님의 제자된 몸으로 가장 참혹한 폭력인 전쟁에 내 살기 위한 파병을 찬성할 수 없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나도, 내 가족도, 이라크 민중들도, 미군들도. 목숨이 두 개인 사람은 없다.

그만큼 목숨은 소중하다.

그래서 무섭다.

전쟁은 내 목숨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목숨도 한 개인의 힘으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들은 귀중한 목숨을 숫자놀음인냥 다루고 있다.

이라크 군인이나 민간인들이 죽으면 숫자이고, 미군이 죽으면 생명인냥 보도하는 미 언론의 태도가 혐오스럽다.

황금빛 니그로다 사슴의 이야기 속에서 진정 우리가 갈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그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보살은 사슴으로 태어났는데, 날 때부터 그의 몸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그는 5백 마리의 사슴에게 둘러싸여 숲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를 일러 니그로다 사슴이라 했다.

그때 왕은 사슴 사냥에 빠져 사슴 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늘 생업에 바쁜 백성들을 불러내어 날마다 사슴 사냥을 나갔다.

백성들은 의논 끝에 드넓은 궁전 뜰에 사슴이 좋아하는 먹이와 물을 마련해 두고, 숲에서 사슴 떼를 몰아다 넣은 뒤 문을 닫아 버렸다.

왕은 뜰에 그득하게 갇혀있는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그러다가 그 우리 속에서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황금빛 사슴을 발견하고, 그 사슴만은 다치지 않도록 하라고 시종들에게 특별히 일러두었다.

이때부터 왕은 끼니때가 되면 뜰에 나가 사슴을 한 마리씩 활로 쏘아 잡았다.

사슴들은 활을 볼 때마다 두려워 떨면서 이리 저리 피해 다니다가 결국은 화살에 맞아 죽어갔다.

니그로다 사슴은 많은 사슴들이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것을 보고, 이제부터는 이쪽에서 차례를 정해 놓고 스스로 처형대에 오르기로 했다.

다른 사슴들에게 두려움과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날부터 왕은 몸소 활을 쏘지 않아도 되었고, 자기 차례가 된 사슴은 제 발로 걸어가 처형대에 목을 대고 가로누웠다.

그러면 요리사가 와서 그 사슴을 잡아갔다.

그런데 하루는 새끼를 밴 암사슴의 차례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안 황금빛 니그로다 사슴은 “당신은 아기를 낳은 다음에 오시오. 내가 대신 가겠소”하고 처형대로 나아갔다.

황금빛 사슴이 처형대에 누워 있는 것은 본 요리사는 왕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왕은 뜰에 나와 니그로다 사슴을 보고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는데, 어째서 여기 누워 있느냐?” “대왕이여, 새끼를 밴 어미 사슴의 차례가 되었기에 제가 대신 죽으려고 나왔습니다.

” 이 말은 들은 왕은 속으로 크게 뉘우쳤다.

“나는 너처럼 자비심이 많은 이를 인간들 속에서도 보지 못했다.

너로 말미암아 내 눈이 뜨이는 것 같구나. 일어나라, 너와 어미 사슴의 목숨을 살려 주리라.” “대왕이여, 둘의 모숨은 건질 수 있다지만 다른 사슴의 목숨은 어찌합니까?” “좋다, 그들도 구해 주리라.” “그럼 사슴들은 죽음을 면하겠지만, 다른 네 발 가진 짐승들은 또 어찌합니까?” “좋다, 그들의 목숨도 보호하리라.” 황금빛 사슴은 다시 간청했다.

“네 발 가진 짐승들은 안전하겠지만, 두 발 가진 새들은 어찌합니까?” “좋다, 그들도 보호하리라.” “대왕이여, 새들은 안전하겠지만 물 속에 사는 어류는 어찌합니까? “착하다, 니그로다여! 그들도 모두 안전하게 해주리라.” 이와 같이 보살은 왕에게 모든 생물의 목숨을 보호해주도록 간청했다.

그렇게 왕의 눈을 뜨게 한 뒤 남은 사슴들과 함께 살던 숲 속으로 돌아갔다.

] <자타카 12> '황금빛 사슴’이야기가 이 시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깨닫게 해준다.

첫째, 사슴 고기 맛에 길 드려진 왕은 백성들에게 가혹한 노동(매일 계속되는 사냥)을 시켰다.

백성들은 이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사슴 무리를 유인해서 왕궁 안에 가둬버렸다.

백성들은 내 한 몸 편하자고 더욱 약자인 사슴들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죄를 저질렀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번영을 약속 받기 위해 이라크 전쟁 파병을 찬성한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둘째, 도망칠 곳조차 없는 사슴들은 왕의 화살에 하루하루를 두려워하며 불안해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매일 계속되는 폭격 속에서 사는 이라크 민중들은 왕궁에 갇힌 사슴처럼 두려움에 떨면서 살고 있다.

황금빛 니그로다 사슴의 제안은 그래서 의미 있다.

황금빛 사슴은 결코 폭력을 동반하는 폭동을 선동하지 않았다.

약자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인 비폭력과 양보를 택했다.

양보함으로써 평화를 지키는 법, 이것이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의 알맹이가 아닐까. 셋째, 황금빛 니그로다 사슴은 결코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차례대로 처형대에 오르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새끼를 밴 어미 사슴의 가련함에 자비심을 낸 황금빛 사슴은 먼저 처형대에 목을 얹어 놓았다.

그는 모든 생명의 목숨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았기에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목숨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의 목숨을 빼앗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황금빛 사슴의 간절한 호소가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왕은 니그로다 사슴의 자비심에 감동하여 모든 생명들의 목숨을 죽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만약 황금빛 니그로다 사슴에 폭동을 선동하여 왕과 맞서 싸웠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아마도 더욱 안 좋은 결과를 남기지 않았을까? 2003년 4월 2일. 국회에서 이라크 전쟁 파병동의안이 통과되었다.

결국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 죄를 짓고 말았다.

아! 우리의 어리석음이 빚은 공업(共業)의 과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내가 살자고 남을 죽이는 이 어리석음을 어찌 우리의 아이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 파병은 국익뿐만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략을 명분, 정의도 없는 21세기의 야만으로 기록할 것이다.

21세기에 벌어지는 야만스런 전쟁에 왜, 한국이 동참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이라크와 아랍 민중들에게 깊이 사죄한다.

지난 월드컵 때 보였던 ‘Pride of Asia'란 약속을 저버린 대한민국을, 그대들이여! 결코 용서하지 말아 달라.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이윤주원의 다른기사 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