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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과 삶의 방식
결국 파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명분을 중시해온 제가 파병을 결정한 것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전쟁을 막아야 할 책임 때문”이라며 “이라크 사태에서 보았듯이 북핵문제에 관해서도 미국은 명분에 따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현실론이 바로 보수, 극우주의의 견해와 변별되게 또다른 파병의 이유로 작동되었다.

그것은 북한문제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보를 막을 존재가 이 지구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바로 내 형제, 내 앞마당에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은 세계의 반전운동을 조롱했다는 것이다.

역시 북한의 침공도 반전운동을 조롱하며 전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전을 말하는 서구의 국가들도 실상, 이라크 석유의 기득권 쟁탈 속에서 나오고 있다.

바로 이 이유들이 비교적 개혁적 성향에 위치해 있는 사람들이 파병을 지지하게 된 배경이 아닐까 싶다.

신문과 방송에서 벌어지는 저 깡패의 주먹 자랑을 보면서,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반전운동을 보면서, 우리 목숨, 우리 가족과 민족의 목숨을 내놓고 진실로 전쟁을 반대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파병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실제 미국이 북한을 침공한다면, 그것이 실제 시나리오라면, 파병 반대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파병하면,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이라크 침공이 일어나기 전에도 미국의 북한에 대한 침공 위협이 공공연하게 있어왔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 믿음은 순진한 믿음으로 떨어지게 된다.

결국 파병을 하던 하지 않던 미국은 자국의 제국주의 이익에 따라 북한을 침공할 수도 있고, 침공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게 된 까닭은 <북한문제를 이라크 방식과는 다르게 대처하겠다>는 미국의 공식적 확인에 조금이라도 기대를 갖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선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 결정이 가치보다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나타난 결정이라고 본다.

우리 불교인들이 생각해볼 지점은 바로 여기다.

반전운동은 기본적으로 가치운동이다.

반전을 통해서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도 반전운동의 중요한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반전운동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보살핌이라는 가치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생명을 죽이는 일이 내 삶의 가치와 지향에 비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때문에 반전운동은 현실론과 본질적으로는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단어이다.

불교는 바로 이 가치운동의 최전선에 있다.

연기, 무아, 사성제의 가르침을 이 가치운동을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생명을 죽이는 일은 고(苦)를 해결하는 정확한 인식의 출발이 아니다.

아니, 무엇보다 붓다는 그랬다.

너무나 유명한, 그래서 익숙하게 방치해 둔 본생담의 이야기가 기억 속에 있다.

나무 아래서 명상에 든 수행자가 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저쪽에서 도망쳐 온다.

필경 사냥꾼에 쫓기고 있는 중이다.

수행자는 급히 비둘기를 숨겨준다.

뒤쫓아 온 사냥꾼이 비둘기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아니면, 비둘기만큼의 고기를 달라는 것이다.

수행자는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 준다.

그러나 비둘기 무게가 더 무겁다.

그래서 다리를 주었다.

역시 모자랐다.

그렇게 팔, 몸통을 주었지만 비둘기가 더 무거웠다.

결국 수행자 자신을 줄 수밖에 없다.

불교의 가치는 이런 것이 아닐까. 계량화해서 나타날 수 없으며, 자기 목숨이 달린 현실이라고 해서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아닐까. 그렇게 내가 기꺼이 죽는 길, 어쩌면 그 길이 불교의 길이 아닐까. 그런데, 이 가치의 길, 불교의 길이 우리들의 일상에서, 그리고 매일 부딪치는 일터에서, 사회현상에서, 이 길은 얼마나 힘을 받고 있을까. 결국 파병으로 결정난 것은 이러한 일상과 일터, 사회에서 이 가치의 길이 아직은 많은 지지와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에게 흔쾌히 그 길을 가겠다는 답변을 확인하지 못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것은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터전이 힘의 논리와, 폭력의 논리, 강자의 논리, 다툼의 논리, 욕망의 논리, 발전의 논리 그리고 죽임의 논리가 현실이란 이름아래 공공연하게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불교계에서도 종단과 교계단체들은 반전평화의 목소리가 나왔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그런데, 반전평화의 목소리에 담고 있는 가치를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하는가. 그 불교의 가치를 말이다.

지금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는 가치와 방식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미국의 이라크 폭격의 논리와 문화가 스며있지는 않은가. 반전평화의 외침은 그냥, 전단지에 적어 뿌려보는 우아한 행사가 아니다.

립싱크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전변이며,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럴 때에 반전평화운동은 진정 의미를 갖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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