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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예의'반미'의 도구가 된 여성의 몸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콜라병에 두들겨 맞아 깨진 머리, 27㎝가량의 우산대가 꽂혀 있던 항문, 콜라병이 박혀버린 자궁, 피멍과 타박상 투성이였던 온몸.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준 모습은 끔찍했다.

그녀는 그렇게 살해됐다.

범인은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이클 이병.윤금이씨의 처참한 주검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은 미군범죄의 잔악성을 폭로하기에 충분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종교, 여성, 인권 단체 등 전국 48개 단체가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꾸려내는데,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공대위는 그녀의 주검이 담긴 사진을 들고 국민의 여론에 호소했다.

그 결과, 살인범 케네스 리 마이클 이병은 94년 5월 17일 한국에 인도돼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됐다.

사진의 힘은 컸다.

한반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행패를 부리던 주한미군의 범죄에 일침을 가할 정도로 힘은 컸다.

그 뒤부터 주한미군이 저지른 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내걸었다.

그녀의 참혹함 주검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을. 그 뒤로 다시는 보지 않았다.

슬픔을 간직한 한 여인의 비참한 주검은 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 슬프도록 비참한 주검을 보고 미군에 대한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슬픈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이 죽어서까지도 모욕당해야 하는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본다.

죽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해줄까?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해 줄지는 몰라도, 바램은 하나다.

아름답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랄뿐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할까?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하리라고 믿는다.

가슴 저리도록 비참하게 죽은 윤금이, 그녀도 마찬가지일거다.

인격은 산 자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이미 몸뚱이는 소멸됐지만, 산 자들의 기억 속에 남은 죽은 자들도 인격은 있다.

우리들이 예의를 지켜야 한다면, 그건 산 자들에게만 지켜야할 예의는 아니다.

죽은 자들에게도 지켜야할 예의이다.

우리는 윤금이씨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녀의 참혹한 주검이 찍힌 사진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사진은 ‘반미투쟁’의 무기가 되었다.

주한미군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그녀의 사진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쓰여 졌다.

이는 반미와 민족자주를 외치는 민족민주운동진영의 오래된 관습이 돼버렸다.

홍익대 총학생회 김광민 정보통신부장은 “윤금이씨 사진이 특별하게 선정적이거나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매년 일어나는 미군범죄를 하나씩 살펴본다면 훨씬 잔인한 게 많다.

사진사용의 의도가 여성에 성적 수치감을 주려는 게 아니라 이러한 미군 범죄의 실태를 드러내는데 있었다”고 설명한다(대학생신문 2003.04.15). 홍익대 총학생회 일꾼 김광민씨가 말했듯이 민족민주운동진영은 별다른 죄책감이 없어 보인다.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죽은 자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던, 부관참시剖棺斬屍. 왕조시대 역적들에게나 내렸던 형벌, 부관참시. 그 부관참시가 21세기 문명사회인 한국에서 재현되었다.

그것도 시대의 야만을 청산하려는 민족민주운동진영에서 저질렀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거 왕조시대 때 저질러졌던 부관참시는 목이 베어 내걸린 곳까지 가서 봐야하기 때문에 안 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부관참시는 안 보려고 노력해도 안 보기가 어려워졌다.

사진기술과 방송매체의 발달로 우연히 걷던 거리에서 나도 모르게 볼 수도 있게 되었다.

더구나, 민족민주운동진영은 한, 두장의 사진으로도 모자라 대량으로 포스터까지 찍어 배포하고 있다.

최근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미군바로알기 10종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10종 포스터 안에는 윤금이씨의 참혹한 주검도 포함되어 있었다.

윤금이씨의 사진은 거리뿐만 아니라 한 중학교의 교실에서도 부관참시 됐다고 한다.

중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선생님의 ‘미군바로알기’ 수업에 딴지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수업내용을 시비삼아 ‘색깔’을 덧씌우고 싶지도 않다.

다만 중학교 교사의 노력이 긍정적일지언정 여성의 몸을 ‘수업’의 도구, 더 나아가 ‘반미’의 도구로 삼은 죄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죽은 그녀가 동의하지도 않았음에도, 그녀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죄를…. 안 볼 수가 없다.

보기 싫어도 억지로 강요한다.

그녀의 주검을 보고 분노해서 반미투쟁의 전선에 나서라고. ‘반미’의 도구가 된 여성의 몸을 돌려주자. 윤금이씨의 몸을, 효순이와 미순이의 몸을 돌려주자. 그들의 참혹한 주검을 무기로 더 이상 반미를 선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살의 현장에서 참혹하게 죽은 이들의 주검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 길만이 인간에 대한 예의, 죽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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