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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승복의 무게를 곱씹어본다
동진 출가하여 40년이 넘게 회색 승복을 입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새삼 승복의 무게를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 사미[니]계를 받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옷과 발우[衣鉢]을 받는 것은 논 서 마지기를 받는 것과 같다.

” 실은 어릴 때라서 그랬는지, 그 말뜻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내가 상좌를 받아 “승가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으로 회색 승복과 발우를 그들에게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논 서 마지기’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 대신에 이렇게 말해줍니다.

“이 옷은 스스로를 단속하라는 표시이다.

이 옷을 받음으로 해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묻어있던 먼지와 마음속에 간직해온 때를 정화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함께 받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온갖 악업을 지으라고 권하는 그 어떤 유혹을 받을 때마다 이 회색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스스로를 억압하고 다스려야 한다.

이 옷의 무게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옷은 네 양심과 같은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승복 입은 자네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고, 혹 이 옷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도록 하거라.”‘논 세 마지기’를 비유하던 시절은 승과 속을 불문하고 어려운 때였습니다.

하루 세 끼를 빠지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사람이면 매우 행복한 축에 들었습니다.

절 집에서도 여름과 겨울옷을 따로 갖추어 입지 못하고, 때로는 여름옷을 겨울까지, 또 어떨 때는 겨울옷이 한 벌 생기면 여름까지 입고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옷 한 벌이 논 세 마지기 몫은 한다고 했으니, 최소한 굶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비유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의 생각입니다만, 그보다는 ‘시주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가 아주 먼 옛날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전설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전체 세상이 달라지고 있지만, 절 집안의 사정은 바깥 세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변해왔습니다.

풍요에서 생기는‘심각한 문제’를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까지 넉넉한 살림살이를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 변화해야 하는 것이라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보다는 살기 편안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렇게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 소박한 바람[願]을 누구도 탓을 할 수 없습니다.

출가 수행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절 집안 살림이 여유로워진 것 자체를 탓하거나, “옛날에는 이랬는데 말이야, 요즈음은 영!..”하면서 “쯧쯧” 혀만 차는 분들이 계시지만 나는 이런 분들에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가 변하는 만큼 그에 따라 승가가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신발을 신는 데에도 규정이 까다로웠고, 수레와 같은 탈것을 이용하지도 말고 꼭 걸어다니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많은 스님들이 대중 교통수단을 넘어서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을 보고, “계를 어겼다[破戒]”고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성을 인정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신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기본 정신에 맞추어 어긋나지 않는다면 “사소한 규정에는 가감과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 정신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핵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 정신을 지키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마‘보통 사람들의 생각에 지극히 상식적’이면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 정신에도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든지 스스로 헤아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다른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상식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어서 간혹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부처님 제자가 되었음’을, 그리고 ‘나는 부처님 제자임’을 자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표시인 회색 승복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만 않는다면 그 밖의 모든 일들이 그야말로 ‘사소한 사항’이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승복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데, 종단 권력이나 재산 때문에 스님들이 싸움을 하거나, 술을 과도하게 마시고 실수를 하거나 세속법을 어겨서 어려움을 겪는 일을 하겠습니까?승복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데, 세속 정치인들에게 기대어 “한 몫 얻어보겠다”고 선거 때마다 지지자 대열에 끼어 TV화면에 그 모습을 드러내겠습니까?승복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이 부처님 제자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데, 아내와 자식들을 남의 호적에 숨겨두고서도 “에헴!”하며 헛기침을 하면서 신도들의 절을 받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승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전생에 엄청난 선업을 쌓아서 이 옷을 입게 되었는지, 그 복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는데, 대중 생활이 귀찮고 불편해서 세속인들과 똑같이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까다로운 독신자’처럼 살면서도 ‘스님 대접’은 받고 싶어하겠습니까?요즈음, 너나 없이 정치와 선거 그리고 탄핵만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데에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승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승복의 무게’를 매일 매일 곱씹어보고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니, 현재는 100%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늘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승복을 너무 가벼이 여기지 않는 일’, 이것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모든 승가 구성원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야말로 ‘스님답게’ 의연하게 살아간다면, 종권 분쟁이 자리잡을 틈도 하나 없고, 우리 승가의 위의(威儀)가 바깥 세상까지도 환하게 밝혀주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세상, 아니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보고 있는 저 세상을 바로잡는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僧淸淨, 國土淸淨입니다.

性潭(lestofilos@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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