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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을 깨야한다
자식에게 뭔가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심정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일 게다.

내 비록 지금은 가난하고 권세라고는 쥐뿔도 없지만 그런 쓰라린 처지가 내 자식들에게 대물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는 것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다.

어쩌면 그런 모진 다짐들이 켜켜이 쌓여 사회적 부를 늘린다고 하여도 영 어긋난 말은 아니다.

반대로 사회는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을 부채질하여 그네들이 더욱 노동의 강도를 높이도록 한다고 꼬집어도 과언은 아니다.

자식이 행여 남의 집 애들에게 치일까 진작부터 유치원을 보내고 뭔 조기교육도 시킨다.

아니 시키고 싶지 않아도, 정말 그럴만한 형편이 되지 않아도 이 나라에서 그저 최소한 제 밥통이나 챙기며 살게 하려면 애들 교육비에 적잖은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

남의 돈 먹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냐며 비아냥거리는 직장 상사의 말에 속에서 욕이 치밀어도 참는 구실 가운데 하나는 자식에 대한 애비의 책임이 작용한다.

어찌된 게 갈수록 자식에게 해줄 것도 더 늘기만 한다.

전에는 학습지 정도면 그럭저럭 때울 수 있더니 어느 때부터는 저기 부자들 모여 산다는 강남에서부터 불어온 조기교육 여파로 영어가 추가되고 그것도 원어민 영어강사 교육을 받는 게 어느새 못사는 마을에도 들어왔다.

언감생심 해외 어학연수는 해주지 못하더라도 영어로 녹음된 교재를 챙겨줘야 막말로 자식을 혼내도 덜 캥긴다.

컴퓨터도 마련해줘야 하고 자라면서 맞고 다니지 않게 하려면 태권도도 가르쳐야 한다.

그러고 보니 집에 애들 학습교재가 널부러져 있기 마련이다.

몇 십 권 짜리 어린이도서 전질이 방 한 켠을 장식하고 영어학습 녹음테프도 어지럽다.

“이 자식아, 애비가 너 공부시키느라 허리가 휘는데 그래 성적이 고작 이 정도냐. 내가 지금 네가 누리는 환경의 십분의 일만 되었어도 이 고생은 안 한다.

” 가난과 멸시의 대물림을 끊는 주요한 고리는 공부였다.

더 노골적으로 꼬집는다면 학벌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예전에도 그랬거니와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실태가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름짜나 날리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가난과 멸시를 벗어나는 최소한의 들머리였다.

학벌은 그 자체로 ‘고급사교구락부’의 기능을 가졌다.

왜놈의 압제시절에도 학벌은 식민지백성의 신분을 벗어나게 하였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어서도 왜놈의 총애를 받으며 형성한 학벌의 영향력으로 등 따숩게 살았다.

솔직히 사촌이 논 산 것보다 더 속 쓰리게 그 자식들도 대를 이어 호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제대에 이어 서울대학교, 또는 미국유학 등으로 얽히고 설킨 이네들의 학벌과 인맥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 담겨져 있는 반민중적 반민족적 성격의 산실이기도 하다.

좌우지간 좀 뭣한 말이지만 자식이 서울대에 진학한다는 것 자체가 집안이 펼 수 있는 계기쯤으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 들으면 극렬하게 반박 하든가 아니면 이런 말이 남의 꼬투리나 잡으려는, 배앓이로 치부할 터이지만, 부와 권력과 명예의 전당 - 일류대학출신에 유학파들로 형성된 상층계층의 안온한 삶은 시절이 바뀌어도 변함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상위 1할도 안 되는 이들의 안온함 삶은 마치 경관 좋은 언덕에 자리 잡은 별장처럼 하위 9할의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경의 대상이지 그 별장에서 단잠을 잘 수는 없다.

얼마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지난 34년 동안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 1만 여명을 조사했더니, 이런 옘병 대한민국의 서울 사람, 그것도 강남 8학군 고소득층 자녀들이 대거 입학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유층 자녀의 입학률이 일반 가정의 자녀들보다 무려 최고 17배나 높았을 뿐만 아니라 그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봉건제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신분이 대를 이어 세습하듯 자본제 사회는 부와 권력의 세습이 교육이라는 형식을 거쳐 이뤄지고 있다.

아니 어디 교육 만이겠는가? 삼성재벌의 집안처럼 ‘대한민국’의 실정법을 교묘한 방법으로 따돌리면서 대대로 재산을 물려주기가 일쑤다.

이 나라도 유산을 그대로 물려주면 상당한 세금을 물리는 법이 있긴 하지만 잘 배운 사람들을 고용하면 그런 법망은 우습기 그지없게 된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이 저 햇볕 잘 드는 언덕 위의 별장에서 단잠을 자려면 일류대학을 나와 부유층에 고용되어야 한다.

보시라! 이 대한민국의 이른바 ‘황제집안(로얄패밀리)’에 고용되어 출세한 사람들의 성공담이 우리의 가슴을 얼마나 후벼파는지. 어떤 이는 막강한 언론사, 자기들 변명으로는 민족언론이라나, 어쨌거나 과거의 전력이 출세에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그 언론사의 힘을 빌어 일약 정계의 거두로 된 인간이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은 무슨 고고한 지식인 냥 소박하게 살면서 남한 부유층의 세습을 지켜주는 미국의 나팔수가 되는 이도 있다.

또 정말 참담한 경우이긴 하지만, 유명대학 출신이 아닌 이들은 몸으로라도 때우는 사례도 있다.

간혹 일하는 사람들의 울화를 돋우는 경우인데, 어떤 이는 매판자본으로 막강한 재산을 일군 재벌회사의 계열회사 보험외판으로 일년에 수 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이들의 자식 가운데 아주 보기 드물게 저 언덕의 별장 일원이 되었다는 풍문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기관은 계급의 재생산을 만드는 시설이다.

인간이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습의 마당이 아니라 인간끼리 경쟁하며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데 이바지하는 사고를 갖도록 가르친다.

그런 제도로 부유층의 세습은 이뤄진다.

그것은 곧 가난의 대물림이다.

더러 양심적인 이들이 이런 제도를 벗어난 교육을 시도하고 있지만, 대세를 거스리지는 못하고 있다.

문제는 어디에 있나? 우리를 짓누르는 사회의 형식이다.

형식을 봄날 논밭 갈아엎듯 근본부터 갈아치워야 한다.

저희들끼리 대를 물려 잘사는 사회의 형식을 깨야 한다.

이 형식을 존치한채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가난한 사람을 우롱하는 짓이다.

아, 답은 진작에 나와 있는데....
글을 시작하며...감동이 없는 시대다.

죄 흥분하기는 하는데, 그 흥분에는 철학이 없다.

악악 질러대는 고함에 정작 착취와 수탈을 까뭉개는 의지가 없다.

어줍잖게 점잔 떠는 자들이 인간이 이뤄야할 보편적 가치를 농락한다.

사회주의는 이상이라고? 웃기시네. 혹 내가 이런 수작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가차없이 매질을 하시라.나도 그런 자들을 호되게 매질할터이니. 예전에 쓴 글도 짬짬이 올리겠다.

지금과 잘 비교해보시라. 예전과 뭐이 달라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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