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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돌려주고 오라
불교상담개발원에서 운영하는 ‘자비의전화’ 자원 봉사 상담원 선생님한테서 들은 얘기다.

십몇 년 전 신심이 돈독해진 이 선생님은 절에 가는 게 마냥 행복해 토요일 일요일 법회는 물론, 수요 법회, 가족 법회 등 온갖 모임과 행사에 따라다녔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히 집안일에 소홀해지고 가족들의 원망이 심해졌다.

드디어 남편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렇게 가정은 나 몰라라 하고 절에만 다닐 것인가, 아님 가정을 택할 것인가 양자 택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절에 가서 혼자 잘 되자는 게 아니라, 온 집안 식구들 잘 되라고 기도하고 발원하는데 남편과 자식들이 그런 마음을 몰라주니 선생님은 섭섭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태도가 워낙 강경한지라 절 대신 집을 택해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스스로 표현하기를 가족들한테서 ‘법난’을 당한 셈이었다.

그렇게 2-3년을 지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답답하고 야속하기만 했는데, 한참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가족을 위해 기도한답시고 절에 다니면서 오히려 그런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고 소외시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한 게 아니라 선생님 자신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킨 셈이었다.

이렇게 마음의 변화가 온 뒤에 절에 다시 나가자 열광적으로 밖으로만 돌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따라서 가정에서 주부로서 할 일도 제대로 하면서 불자로서의 활동도 병행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불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신자들도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하게 된다.

특히 초발심자들은 새로이 얻은 믿음에 감동하여 종교 활동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본분을 잃고 종교 활동의 인생의 전부인 양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정을 등한시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직장을 때려치우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 이런 문제로 상담 신청을 해온다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답하실까? “내 가르침에 교화되었으니 반갑구나, 어서 오너라” 하고 대환영을 하셨을까, 아니면? <잡아함경> 제43권 1174.유수경(流樹經)에 그 답이 있다.

부처님께서 제자에게 법을 설하고 있었다.

마침 소치는 사람 난다가 옆에 있다가 설법 내용을 듣고 감동해서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오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난다는 “소들이 길을 알므로 스스로 집을 찾아갈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남의 옷을 입고 남의 밥을 먹고 있으니 돌아가 그 집 주인에게 알려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수행하여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 으뜸’이라고 늘 강조하시면서도 그 출가를 할 때에는 모든 세속 일을 깨끗이 마무리하라고 하신 것이다.

믿음이 우선이고 집안일이나 직장 업무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한테는 큰 경계의 말씀이 될 터이다.

가정주부는 가사를 제대로 꾸리고, 직장인은 업무를 온전히 수행하면서 믿음을 가지라는 말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특히 ‘남의 옷을 입고 남의 밥을 먹고’있는 직장인들에게 신행 생활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면서 갈등이 생길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가르침이다.

(본 글은 '직장불교 2003년 2월호'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
글을 시작하는 간단한 소감 <계를 받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절도 없고, 꾸준히 나가는 법회도 없으니 사이비 불자가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곤 했다.

특히 참선이나 기도 정진을 맹렬히 하는 열심 불자를 대할 때면 더욱 위축감이 들어 내가 불자가 맞긴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2000년에 석사 논문으로「불경에 나타난 석가모니의 상담사례 연구­잡아함경을 중심으로」를 쓰면서 이런 자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나같이 어설픈 불자도 ‘부처님 법 안에 있다’는 희망의 말씀을 '잡아함경'에 남겨 놓으셨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카필라바투국 냐그로다 동산에 계실 때 석씨 마하나마가 찾아와 여쭈었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어울려 살다가 부처님과 부처님 법, 그리고 승단을 잊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은 뒤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 걱정이 됩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마하나마에게 말씀하셨다.

“큰 나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 그 밑동을 자르면 어느 쪽으로 쓰러지겠는가?”“기우는 쪽으로 넘어질 것입니다.

”“너도 그와 같으니라. 너는 오랫동안 불법승을 생각하고 닦아 익혔다.

비록 목숨이 다해 그 몸이 불에 타거나 묘지에 버려져 오랫동안 바람에 쐬고 햇볕에 쪼여 마침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마음은 오랫동안 바른 믿음에 쐬고 계율과 보시, 들음, 지혜에 쪼였기 때문에 그 신식(神識)은 안락한 곳을 향해 위로 올라가 미래에 천상에 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라.”<제33권 930.자공경(自恐經)>부처님은 큰 나무가 기운 곳으로 쓰러지듯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부처님 법 안에 든다고 말씀해 주셨다.

1990년에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창작활동을 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삶’, 그것을 이끄는 ‘인간 심리’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1998년부터는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심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상담심리를 전공하였다.

그리고 졸업 논문으로 불경에 나타난 부처님의 상담사례를 연구해 '잡아함경'을 분석했고, 2002년에는 이를 좀더 상세히 연구하고 보완해 <붓다의 상담-꽃향기를 훔치는 도둑>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도피안사 간, 신국판, 662쪽).'잡아함경'을 텍스트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잡아함경'은 불경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경전으로, 다른 경전에 비해 부처님의 행적과 법문이 변형되지 않고 원음 그대로 생생히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잡아함경'에 수록된 1362경을 하나하나 연구하는 동안 마치 부처님의 육성을 듣는 듯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잡아함경'에 나타난 부처님은 위대한 종교 창시자라기보다 인자한 어머니요, 자상한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투정을 부리면 받아 주고, 몸이 아프면 찾아와 위로하고, 따지고 들거나 속이고 욕을 해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심지어 죽이려고 덤벼들어도 자비로써 잘못을 깨우쳐 주었다.

경전 하나하나가 마치 오늘날 내담자와 상담자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담 장면 같았다.

그리고 부처님은 어떤 내담자든 자신의 잠재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하여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위대한 상담가’였다.

불경과 부처님을 상담심리학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면서 이런 시도가 오히려 부처님의 위의에 손상이 가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부처님의 진면목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되리라고 자위하면서 원고를 써나갔다.

이 칼럼 역시 <붓다의 상담-꽃향기를 훔치는 도둑>을 쓰면서 연구한 바를 토대로 불경을 오늘날의 심리상담과 연결해 본다.

아직도 나는 초발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불자이지만 그래도 부처님 쪽으로 기운 나무이니, 언젠가 부처님 법 안에 온전히 안길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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