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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가는 길....제주도석굴암에서 열린 산상법회
“지금 어디쯤 왔습니까”“5분 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오늘(25일)은 붇다클럽 한라회가 석굴암에서 산상법회를 하는 날. 출발 예정 시간은 아침 8시 천왕사 주차장. 출발시간이 10여분 남았는데 혹 늦어질까 봐 확인하는 전화였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송성하회장과 고수향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 데로 속속 출발하고 있다고 했다.

전직회장과 회원 3~4명도 도착했다.

우리들은 출발시간 보다 10분을 더 기다렸다.

“이쯤 기다렸으니 올 회원들은 모두 온 것 같습니다.

이제 출발합시다”는 회장의 말에 일행은 석굴암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부인과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몹시 서운했다.

석굴암에 몇 번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 때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부인과 같이 석굴암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올해는 꼭 부인과 함께 꼭 석굴암에 가고 싶었는데.... 며칠 전부터 부인과 약속했다.

올해는 같이 석굴암에서 기도하자고. 그런데 부인은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온다고 같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 같은 내 마음을 아는 지 동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출발지까지 같이 왔다.

아픈 곳에 파스를 붙였지만 허벅지에 통증이 계속됐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눈치다.

이대로 산에 올랐다가는 7월18일 마이산을 오를 때처럼 무척 고생할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이산을 오르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부인은 어제 저녁에 “이번에는 석굴암에 같이 가 볼까”라고 말했었다.

아무튼 부인을 뒤로 하고 산을 올랐다.

등산로(산책로) 입구 오른쪽에는 파란 색 봇짐들이 눈에 띄었다.

석굴암을 찾은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석굴암의 물건을 갖고 내려와 이곳에 놓는다.

그러면 석굴암에 필요한 물건들은 봇짐에 싸서 산책로 입구 왼쪽에 놔두면 사람들이 짊어지고 석굴암으로 가져간다.

석굴암을 찾는 사람들은 이를 마다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봇짐을 지고 나른다.

석굴암은 제주도 한라산 국립공원내 아흔아홉골(골머리 계곡)에 있는 암자다.

지금은 조립식 건물로 암자를 감싸고 있다.

전에는 계곡 벼랑바위 아래 암굴이 있었고 그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암자 위 큰 바위에는 '南無十六大羅漢聖衆'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다.

석굴암 코스는 내리막과 오르막길이지만 걸어서 30~40분 길어야 1시간 정도면 갔다 올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산책코스로 이용한다.

그러나 산책로라고 만만하게 봤다가는 기진맥진한다.

제주시에서 석굴암 출발지인 천왕사 주차장까지는 1100도로(99번)을 따라 차량으로 10분쯤 걸린다.

수필가 김길웅씨는 '내 마음 속의 부처님'에서 석굴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 이 암자는 1953년 서상형 거사가 창건했다.

당시 관음사 포교당 보현사의 월암 스님이 기도처를 찾기 위해 1000일 기도를 회향하던 바로 그 날, 낙심 끝에 포기하려는데 웬 한 마리 새가 스님에게 길을 인도하듯 앞을 섰다는 것이다.

포롱포롱 날다가 종종걸음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중략) 언제 누구의 손길인지 알 수 없으나 암자 위 큰 바위 오른쪽에 '摩訶一代敎主釋迦牟尼佛'이란 마애명이 새겨져 있고, 그 왼쪽에는 월암 스님이 손에 정을 들고 새겼다는 '南無十六大羅漢聖衆'이란 글씨가 눈 온 한겨울에 새롭다.

…."통나무 등반로(산책로)를 따라 10분쯤 오르니 숨이 찼다.

회장 일행은 벌써 앞서갔다.

아마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꼬마 서넛이 재잘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어떤 꼬마는 지치다고 쉬어가잔다.

나는 내심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내친 김에 나도 쉬어갈 요량으로 턱까지 오른 숨을 참고 쉬었다.

그래도 매매소리와 어우러진 새소리는 정겹게 들린다.

계곡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데보다 더욱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르막길을 걸었다.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힘겹다.

오른 손으로 오른 발 허벅지, 왼손으로 왼발 허벅지를 당기면서 걸었다.

작년에는 아들과 딸이 동행했다.

그 때는 그런대로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장난이 아니다.

지난해보다 더 힘들다.

참, 물을 갖고 온다는 것을 깜빡했다.

이 정도 걸으면 물 한모금 마시면 꿀맛인데. 입안이 쓰다.

헛구역이 나온다.

입안에 고인 침이 마르고 있어 억지로 내뱉는다.

주위를 둘러봤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소나무와 낙엽수들로 울창한 숲이 장관이다.

숲 사이로 보이는 시가지가 멋지다.

한참 가노라니 어디서 많이 낯익은 분이 나를 앞질러 올랐다.

한참은 나이가 위 같은데 지친 기색도 없이 잘도 걷는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마주쳤다.

“안녕하셔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오랜 만입니다”라며 주로 영실코스를 등반하다 이번에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오랜 만에 만났으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물론 나는 죽을 맛이다.

그의 걸음에 맞춰 얘기하자니 오죽 허덕거렸겠는가. 한참 걷다가 대꾸하는 소리가 작아지자 지친 나의 기색을 눈치 챘는지 “저 먼저 갑니다.

천천히 오십시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또 다시 쉬었다.

지난해와는 달리 등산로 일부 구간에 목재를 깔아 만든 길이 만들어져 있다.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알든 모르든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안녕하셔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래도 이 인사가 힘을 준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불현 듯 4년전 지인을 동반한 석굴암 겨울 등반이 생각났다.

겨울 등반을 우습게 봤다가 얼마나 혼났는가. 올라가면서 미끄러워 몇 번을 넘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때 하산하는 사람들은 “안녕하셔요. 미끄러운데 고생많겠습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했었다.

다행히 누군가 잃어버린 징(눈 위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한 신발장비)을 주워 사용했기에 아무 탈 없이 석굴암을 갔다 올수 있었다.

고생이 되더라도 겨울 석굴암 찾기는 그런대로 묘미가 있어 해 볼만하다.

가을에는 어떤가. 갖가지 나무의 단풍과 사철란, 각종 열매 등등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앞을 봐도 오르막이다.

열이 올랐는지 머리가 지긋지긋 아프기 시작했다.

부인이 같이 오지 않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려가면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였다.

물론 부인은 “그거 봐라, 평상시에 운동을 하라니까 게을러 하지 않더니 그렇지 않느냐, 이제는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구박을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가면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대로 복사돼 재생됐다)“이제 올라가셔요? 우리가 늦었네요.” 회원 가족이었다.

부부와 7살 정도 보이는 남자 어린이다.

지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잘만 걸었다.

벌써 앞서갔다.

그러고 보니 회원 가운데 내가 꼴찌였다.

이제는 별 수 없다.

죽으나 사나 석굴암까지 가야 한다.

“마하반야바라밀다 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 바라밀다시....”반야심경을 독송하며 죽을 힘을 다해 걸었다.

작년에도 힘들 때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그러다 보니 턱까지 올랐던 숨도 다소 진정됐다.

사실 처음 불교를 접하면서 외우려고 무진장 애를 썼던 경구가 반야심경이다.

어찌나 헷갈려는지 외워도 외워도 중간에서 다시 시작하곤 했던 경구다.

‘금붕곡 석굴암’간판이 보였다.

옆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간판 양옆으로 하나씩 세워있다.

석굴암이 거의 왔다는 것을 말한다.

힘내자.급경사 내리막이다.

드디어 석굴암 근처까지 왔다.

꼬마 애들이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웠다.

드디어 다 왔다.

아니나 다를까 석굴암이 눈에 들어왔다.

꼬마가 먼저 내려가라는 뜻으로 옆으로 피한다.

“괜찮다.

먼저 조심스럽게 내려 가렴”아빠와 같이 온 아들이 내리막 끝에 세워진 석등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이상하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 생겼지. 작년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가”라고 생각하면 한 컷 촬영했다.

물부터 찾았다.

지난해에는 계곡에서 물이 흘렀다.

그 물을 벌꺽벌꺽 마셔 갈증을 풀었다.

석굴암 동쪽 바위 그늘 두 군데에서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계곡이 말랐다.

물이 전혀 흐르지 않고 있었다.

마른장마로 가뭄이 계속 됐기 때문이다.

지독한 가뭄이다.

“부처님의 가피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관세음보살” 그 때문인지 물이 가득 채워진 패트 병이 석굴암 밑에 마련된 평상위에 먹을 만큼 놓여있다.

석굴암을 찾은 사람들을 위한 물이었다.

이 물도 석굴암을 찾는 사람들이 푸른 봇짐을 지고 가져온 것이다.

그 물은 두 모금 마셨다.

살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봤다.

회원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석굴암에서 법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들어가니 천수경을 봉독하고 있었다.

법당은 회원들로 찼다.

우선 부처님 전에 삼배를 했다.

‘늦게 왔습니다.

모든 이에게 입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지은 업을 참회합니다’고 했다.

그리고는 갖고 간 찹쌀을 부처님 전에 올렸다.

임원진에서 준비하라고 사전에 알려줬었다.

그래도 찹쌀을 소중하게 갖고 가려고 일부러 가방을 둘러매었다.

물론 그 안에는 찹쌀뿐이었지만.법회 장면을 촬영하고 얼른 앞자리에 앉았다.

천수경을 따라 읽었다.

삼귀의례 순이다.

누군가 “목탁을 쳐야하는데”라고 했다.

나는 목탁을 집었다.

막상 하려니 되지 않아 포기했다.

어제 저녁에 목탁을 치는 요령을 배웠는데 현장에서 하려니 잘 안돼 부끄러웠다.

목탁을 치는 요령을 정확히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천수경을 읽으면서 옆에서 힐끔 쳐다봤다.

아주머니 서너이 백팔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올라오는 것만도 힘겨웠는데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백팔배를 하는 것이 대단했다.

사회자가 “하나 둘 셋”구령을 하자 모두가 삼귀의례를 했다.

법회가 어색했는지 회원 한분이 목탁을 치겠다고 자원했다.

그러게 해서 석굴암에서의 법회는 끝났다.

일부 회원이 백팔배를 했다.

부러웠다.

평시 불심이 돈독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년에는 나도 백팔배를 하겠습니다.

체력을 길러 남들과 같이 처음부터 법회에 참석하고 말입니다.

”라고 부처님께 약속했다.

산회가를 끝으로 산상법회가 끝났다.

“성불하십시요.”하산준비를 위해 물건을 챙겼다.

회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석굴암에서 마련한 떡을 먹었다.

석굴암에서는 떡이나 죽 등 요기할 것을 마련했다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보시하곤 한다.

작년에는 죽을 먹은 기억이 있다.

한라회에서 마련한 수박 몇 조각을 먹었다.

입안이 시원했다.

수박을 먹으며 누군가 “백팔배를 한 사람만 수박을 먹어야 될 것이 아닌가”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피었다.

물을 챙겼다.

올라올 때 물을 챙기지 못한 실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 분과(교무연수) 위원장 사모님이 패트 병에 얼린 물을 내놓기에 나는 염치불구하고 얼른 집었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자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

하기야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다고 하지 않는가. 회원들과 이야기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도 생겼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내려오던 길 중간에서 태풍에 쓰러진 고목나무가 보였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다.

얼마나 힘들고 헉헉 거렸으면 이 큰 나무가 쓰러져 있었던 것을 몰랐을까. 일행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언론사에 투고하라고 성화다.

못이기는 척 촬영했다.

나무가 워낙 크고 장소가 협소해 제대로 찍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뽑힌 뿌리와 쓰러진 상태의 나무를 나눠 찍었다.

이 정도의 나무가 쓰러질 정도라면 바람도 무척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유독 이 나무만 쓰러진 것은 왜 그랬을까?내려오는 길목에서 2~3년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악수하고 손을 흔들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만나도 따뜻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같은 고향 출신인 것으로 미뤄 모임을 갖고 석굴암을 찾은 것 같았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힘겨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부처님 만나는 발걸음이라 가벼운 것인지, 평상시 운동으로 다진 체력이라 가벼운 것인지, 이 길을 자주 다녔다든지 도통 모르겠다.

석굴암에서 부처님을 만나서 그런지 내려올 때는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나 역시 제일 늦었다.

다른 사람들은 출발했던 주차장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산상법회를 기념한 사진촬영을 준비했다.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인에게 급히 핸드폰을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그래도 왔다는 흔적을 남겨야 될 것이 아닌가. “그래도 출발지에서 기다려야지 차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으나 속으로 불났다.

할 수 없이 부인을 놔두고 사진을 찍었다.

차에 갔더니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핸드폰을 받지 않았느냐”고 짜증을 냈다.

“핸드폰이 울리지 않던데...”라며 핸드폰을 내민다.

“젠장, 금방 부처님 만나 참회했는데 도로아미타불이 됐다”며 쑥스러웠다.

뒷풀이 장소로 자리를 옮겨 우리의 구호인 ‘정진’을 하고 내년을 기약했다.

이날 저녁 머리로 열이 쏠렸는지 머리가 많이 아팠다.

두통은 아니다.

부인이 무리한 것이 아니나며 걱정스런 눈치다.

찬물에 머리의 열을 식혔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두통약을 먹고서야 아팠던 머리가 나았다.

안방과 마루를 드나들며 잠을 청했으나 설쳤다.

비몽사몽 아침에 일어나 향을 피우고 참회했다.

“자만심을 가졌던 마음을 참회합니다.

부처님 닮아가는 불자, 부처님처럼 사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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