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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은 참 무거울 것입니다20년만에 기도 떠나는 보살을 따라...
효당이 상원사 적멸보궁을 찾은 것은 꼭 13개월만이다.


속리산에 21년을 살며 법주사 종무원 생활을 했던 덕림거사를 오랜 인연으로 의형님으로 여겨 효당이 어려울때마다 찾아가 의탁하는데 그 옆지기인 형수가 21년만에 처음으로 홀로 기도를 위해 적멸보궁을 참배하기 위해 떠난 길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갔다.


속리산에서 20년을 살며 처음으로 홀로 떠난 길은 처음부터 고행이었다.


건강하지 않은 몸이기에, 의형님의 걱정속에 월요일 새벽 5시 30분 출발하여 오대산에 도착할때까지 차멀미로 3번을 멈춰 상원사 도착한 시간이 11시, 두시간이상 더 소요된 시간이었다.


가족을 위해 특히 몸에 병을 가진 둘째 아들을 위한 기도를 위해 무리해서 나선 형수는 자신의 몸보다는 가족을 위해 나선 것이다.


그 참배길을 찬찬히 지켜보자.



오대산 상원사는 신라인들이 가장 추앙하던 산이었다.


신라 진평왕시절 도교의 방위신앙을 받아들여 동서남북과 중앙에 사찰을 지어 계절별로 참배하던 신라인들은 오대산을 금강산보다 더 성지로 여겼다.

(삼국유사 참조)
지금은 비록 중대 사자암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옛 오대산이 불교성지인 것처럼 곧 그 이름에 걸맞는 사찰들이 복원될 것이라 믿는다.


오대산을 오를 인연이 있어서인지 지난 10월에 동국대 정병조교수님께 들은 신라불교사 중 오대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동방 아촉불과 서방 아미타불,남방 석가모니불과 북방 미륵불 그리고 중앙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
그래서 오대산 중대사자암에는 비로전이 있다.


하나씩 되새겨 보며 적멸보궁을 참배하자



잔설이 아직 녹지않은 적멸보궁 가는 길에 10kg들이 쌀포대와 왕대초를 짊어진 보살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며 올라간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
둘째 아들을 위한 모정으로 힘겨운 걸음이지만 보살은 한걸음 한걸음을 내딪었다.





ⓒ2004 曉堂 이동익

11월의 하순 평일이지만 적멸보궁을 찾은 불자들의 기도는 여여했다.


좁은 법당에 들어서지 못한 불자들은 11월의 한기속에도 법당밖에 자리를 펴고 108참배를 이어갔다.





조선 초기 법당으로 추정되는 적멸보궁 법당은 특이하게도 안밖의 이중구조 법당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현판에는 '세존진신탑묘'라 새겨져 있고...
백일기도 기간이라 하루 4분 기도가 이어져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신라 자장스님이 모셔왔다는 진신사리는 이 어디쯤 모셔져 있는 것일까?
기와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으려고 놓아둔 패트병(그림자속)에는 낙수가 반쯤 모여 있었다.


4분정근을 함께 하며 기도하는 불자들이 꽤 여럿 보였다.





아픈 둘째아들의 건강을 위해 백일기도 청을 들이며 신권 한묶음을 내놓은 보살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뒤돌아내려 왔다.


중대 사자암은 2005년 11월을 목표로 불사를 계속 진행중이다.


내가 보기엔 작년에 볼때나 지금이나 큰 진척이 없어 보이지만 더 어수선해 보이는 것이 기본공사를 끝내고 정리중인 것처럼 보였다.


중장비를 헬기로 옮기고 임시 가설한 레일위로 공사도구를 끊이지 않고 옮기는 것이 내후년엔 참배객들이 조금 더 원만하게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원사 금당인 문수전도 썩은 부재들을 바꾸는 불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원사 선방도 외곽 공사가 끝나 동안거에 방부들일 스님들을 기다리고...
월정사 주지스님의 오대산을 더욱 대중과 함께 하는 불교성지로 만들고자 하는 원력이 느껴지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2004 曉堂 이동익

상원사의 문수전 앞 화주보살의 손에 새가 앉아 놀고 있었다.


실내에서 새와 노는 모습을 찍자, 밖으로 나와 주위의 새들과 노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즐거워하였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사람이나 새들이나 서로 해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오대산의 모습이다.





어디일까?...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의 해우소(^^)모습이다.


조화가 아닌 생화와 나무들이 아늑한 모습을 연출하고 휴게소의 서비스도 내가 본 휴게소 중 가장 뛰어난 수준인 것 같아 찍어 보았다.


재작년에 재보수한 문박휴게소의 모습은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같아 홍보용으로...^^(문막휴게소와의 어떤 사적인 인연은 없음^^)

다음날의 일정때문에 서둘러 하산하였지만 대전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 30분...
속리산 형수도 비슷한 시간에 속리산에 도착하였을게다.


올라갈때의 힘겨움은 적멸보궁에서 내려올때 모든 것을 방하착한 듯 힘이 넘처 보였고 생기가 있었기에 홀가분히 올수가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
산사를 찾는 이들의 무거운 멍애들이 기도를 통해 홀가분해져, 내려간다면 그 많은 멍애들이 산사에 쌓여 있을텐데...
그렇다면 산사는 참 무겁겠다.

..(?)
난 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걸까^^ ...
효당도 보궁에서 일배일배 올리며 모든 일이 여여하기를 기도했듯 우리네 일상도 더 이상의 어려움이 없이 여여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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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사에서 2018-08-16 07:37:21

    효당님이나 세상모두는
    원래 여여함을 믿으신다면
    산사는 더이상
    무겁지 않을텐데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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