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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불교의 요람, 신어산 동림사동림사로 기도하러 오세요
▲ 신어산을 오르고 내리는 등산객들 ⓒ2005 정근영 새해 들어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추위를 딛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더 없이 맑기만 하다.

말갛게 씻은 하늘, 그 한 자락을 따라 경남 김해 신어산으로 향했다.

일요일(2일)이라 그런지 제법 사람들이 붐빈다.

은하사 주차장은 만원이고 길가에 주차한 차들이 줄을 짓고 서 있다.

‘달마야 놀자’란 영화 촬영장으로 이름이 난 은하사를 지나서 곧바로 천진암으로 향했다.

쌀쌀한 바람으로 한기가 느껴졌지만 이내 얼마가지 않아 몸에는 땀이 밴다.

야산으로 가슴에 담아둔 신어산이지만 오늘따라 제법 가파르다는 생각이 든다.

▲ 신어산의 기암괴석들, 나한의 얼굴이다.

ⓒ2005 정근영 기암괴석들이 병풍을 두른 듯하다.

은하사, 동림사, 천진암, 영구암은 그 돌병풍 속에 들어있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래서 일까. 신어산을 오른쪽 영남의 금강산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야트막한 산으로 사람들을 너무 쉽게 허락하지만 신어산은 예사로운 산이 아니다.

신어. 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역사시간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으로 배우지만 사실은 그 보다 훨씬 이전이란 주장이 있다.

그것도 다른 나라를 거쳐서가 아니라 불교 발상국에서 바닷길을 타고 직접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그는 가야국 시조임금인 김수로왕의 부인이 되었다.

그의 오빠 허보옥은 출가하여 장유란 스님이 되고. 그 장유 스님이 창건한 절이 서림사요 동림사라고 한다.

서림사란 지금의 은하사 자리에 있던 절로 불교 발상국인 서역의 융성을 기원하기 위한 절이고 동림사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융성을 기원한 절이라고 한다.

▲ 신어산의 산신령, 천진암의 산신각에서 ⓒ2005 정근영 천진암 마당에서 산골짝을 내려다보니 바로 눈앞에 은하사와 동림사가 뿌연 안개 속에 들어온다.

쳐다보는 하늘은 맑기만 한데 내려다보이는 집들은 안개(스모그) 속에 묻혀 있다.

그래 그렇지. 우리는 호주머니 속의 동전을 매만질 것이 아니라 머리 위의 저 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살아야지.천진암 대웅전은 절집의 그것이 아니다.

창고처럼 그렇게 볼품없는 그런 집이다.

천진암 산신각은 그래도 여느 절집 못지 않다.

선명한 단청색깔은 역사가 깊지 않음을 보여준다.

산신이 짚고 있는 지팡이는 황금빛으로 빛이 난다.

▲ 신어산 정상에 서다 ⓒ2005 정근영 출렁다리를 지나 신어산 정상에 섰다.

634m라면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손잡기에 알맞은 산이다.

갑자기 아빠 손잡고 산을 오르다 산에 올라가기 싫다고 소리치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신어산은 김해시민의 공원이 되어 식구들끼리 손잡고 오르는 산이다.

그러나 이렇게 또 힘들어 산을 오르기 싫어하는 아이도 있는 그런 만만하기만 한 그런 산은 아니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아이가 쉽게 오를 수 있는 그런 산은 아닌가 보다.

신어산에서 김해들을 내려다본다.

뿌연 안개 속에서 도회가 얼굴을 드러낸다.

몇 해 전만 해도 들판이었던 들녘에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작은 도읍에 지나지 않았던 김해가 날로 인구가 늘어 이제는 경남에서 몇 번 안에 드는 큰 도시로 발돋움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내뿜는 안개로 저렇게 덮인 것일까. 사람 사는 집들 위로도 맑은 하늘이 내려앉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거북아 ,거북아, 영구암이란다.

ⓒ2005 정근영 하산길이다.

기암괴석, 그 바위틈새에 들어선 절집이 영구암이다.

낙동강 하구나 다대포 몰운대에서 이 곳 신어산을 바라보면 마치 산에서 거북이가 기어 나오는 듯한 모습이란다.

그래서 가야 시대 장유화상이 창건한 이 절을 구암사로 일컫다가 언제부터인가 영구암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신어산, 시의 숲. 시는 살아있다.

ⓒ2005 정근영 영구암 석탑. 얼마나 오랜 역사를 덮어쓰고 있는 것일까. 흩어진 형체를 모아서 빨간 벽돌을 몸통으로 삼은 것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영구암 석탑 앞마당에 서면 날씨가 맑은 날은 남해 바다 위에 떠 있는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했다지만 스모그로 뒤덮인 지금은 다 빈말이 되고 만 것만 같다.

산림욕장, 시의 숲을 지나 동림사 일주문 앞에 섰다.

언제 봐도 웅장하기만 하다.

주차장까지 마중 나온 지장보살을 본다.

지장보살은 자비보살이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목숨을 바치고 예수를 믿는 이의 죄를 자신의 피로 씻어주었다.

지장보살, 그는 아무리 죄업이 무거운 중생, 무간 지옥에 떨어진 중생이라도 ‘지장보살’하고 한번만 불러 주어도 그 죄를 대신해서 자기가 지옥고를 대신 받고 죄 많은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한다고 하지 않는가.▲ 주차장까지 마중 나온 동림사 지장보살 ⓒ2005 정근영 마두 관음보살. 그는 스스로 말이 되어 짐승이 되어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전설의 뒤쪽에서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는 것은 아닐까. 성자들은 한 결같이 인류를 사랑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인간의 죄를 대신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자비가 아닌가.동림사. 장유화상이 처음 창건한 절로 파괴 된지 수백 년, 역사의 저 너머 묻혀 있던 것을 역사의 전면으로 다시 떠올린 분이 조 칠보심 보살이다.

상없는 보시로 동림사를 일구었다.

복원했다.

칠보심 보살은 여기 신어산 중턱에다 칠보 보탑을 쌓아 놓았다.

그 칠보탑이 동림사가 아닌가.▲ 동림사,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기원하며 ⓒ2005 정근영 동림사엔 화엄 큰 스님의 그림자가 길에 드리워져 있다.

돌아가신지 벌써 세 해나 흘렀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있다.

길고도 하얀 수염을 흩날리는 백발의 도인, 사진으로 뵙는 그의 얼굴은 사명당의 모습이다.

사명당은 머리를 깎은 것은 번뇌를 벗어난 것이요, 수염을 기른 것은 대장부의 기상이라고 했다던가. 수염을 드리운 한산당 화엄 큰 선사의 얼굴이 거룩해 보인다.

▲ 동림사, 동림사여 ⓒ2005 정근영 2001년 11월 10일. 먼 길 여행을 떠나면서 화엄 큰 스님은 이렇게 열반게를 읊었다.

칠십칠년 꿈속의 나그네꼭두각시 몸을 벗고 어느 곳에 가는고만일 누가 물어도 말할게 없나니신어산 영봉엔 단풍잎이 날으도다하시고는 이어서 “아이고 추워라. 감장사야! 감도 하나 못팔고 불알만 꽁꽁 얼겠네”라 하리라.▲ 동림사 일주문 ⓒ2005 정근영 신어산 단풍잎 하나 주워 꽁꽁 얼어붙은 스님의 불알을 녹여 줄까.병든 중생의 고통, 번뇌를 다 씻어 주고 싶은 자비로 불타는 조 칠보심 보살, 그는 병든 세상, 병든 사람을 향하여 외친다.

동림사로 기도하러 오세요. 을유년 새벽닭 울음소리가 귀밖에 쟁쟁한 1월 2일. 김해 신어산 동림사로 향했다.

지난번 동림사 취재를 한 뒤에 기사 쓰기를 미적거리다 너무 오래되어 다 지워버리고 다시 신어산을 찾았다.

신어산, 그 그윽한 산기슭에서 독자를 만나고 싶다.

정근영(wonda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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