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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을유년/60년전 한반도엔 '희망의 물결'1285년 일연, 삼국유사 완성
[서울신문]을유년(乙酉年)은 ‘희망의 해’다.

60년 전 35년간의 일제 강점을 털어내고 광복을 맞은 것이 서력(西曆) 이후 서른두번째의 을유년이었고, 오늘 맞은 새해는 바로 서른세번째 을유년이다.

60년 전 을유년에 온 나라 구석구석 넘실댔던 기쁨과 희망의 물결만 생각해도 새해 아침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전에 지나간 서른한번의 을유년을 돌이켜보건대, 우리 선조들도 비교적 평화로운 한해를 보냈던 것으로 보아 새해는 커다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시작해봄직하다.

세계적으로도 2차대전 종결 및 니케아종교회의 등 희망적인 해가 많았다.

을유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주요 사건을 시대별로 살펴본다.

●325년 로마제국 니케아종교회의기독교는 로마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출발했다.

예수는 스스로 ‘하느님의 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온 메시아를 자처하며 세력을 키웠으나 초기의 은 생애동안 성공했을 뿐 곧 혁명가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후 예수의 추종자들은 갖은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의 몇몇 도시들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신앙관용령(밀라노칙령)을 선포한 데 이어,325년 니케아에서 모든 교회 대표자들이 모인 최초의 전 기독교 회의를 열어 모든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로마제국 전역에 교회조직이 발달했다.

●1225년 최우, 정방 설치고려 무신정권 수장이었던 최우가 고려 고종때 자신의 집에 ‘정방’이란 관청을 설치했다.

무신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았지만 국가의 행정실무를 무신만으로 처리할 수 없어 정방을 두고 젊은 문사들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 이곳에선 문무백관의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는데, 인사 명부와 함께 고과를 매겨 왕에게 올리면 왕은 그것을 결재할 뿐이었다.

이를 통해 최씨 정권은 문무백관을 실제로 장악할 수 있었다.

최씨 정권 몰락후 정방은 궁중으로 옮겨져 국가기관이 되었다.

●1285년 일연, 삼국유사 완성충렬왕 11년,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일연은 1277년 이후 청도 운문사에 머물 때 삼국유사를 편찬하기 시작해 5권2책으로 완성했다.

삼국유사는 왕명으로 편찬한 기전체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달리 자유로운 형식으로 단군신화에서 후삼국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삼국사기에 실려 있지 않은 귀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일연은 나름대로 철저히 사실을 고증해 책을 편찬했다고 한다.

●1645년 소현세자 죽음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병자호란때 볼모로 청에 끌려갔다.

청에 9년간 머물며 청과 조선 외교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귀국할 때 천문·수학·천주교 서적 등을 갖고 왔다.

귀국하자 반청파들은 그를 친청적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가져온 서양서적도 불태워버렸다.

인조 23년 4월 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만에 ‘오랑캐의 것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

’고 주장하다가 화가 난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앓다가 나흘만에 죽었다.

이때 시신이 검게 변해 있었고, 피를 쏟고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독살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후 소현세자 빈도 인조를 저주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듬해 사약을 받았으며, 세 아들도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막내만 살아남았다.

●1885년 거문도사건 발생갑신정변(1884년) 이후 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조선에선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여 청·일 양 세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러시아도 겨울에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조선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의 남방 진출을 막는다는 구실로 그해 3월 선제공격을 감행, 거문도를 점령했다.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를 잇는 바닷길의 중간에 있어서 러시아 동양함대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결국 조선을 제외한 러시아·청·영 3국이 교섭을 벌여 러시아는 조선의 어떠한 영토도 점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1887년 2월 영국함대는 철수했다.

그해 8월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최초의 근대식 중고등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했으며, 한성전보국이 개국(서울∼인천간 전신 개통)했고 대원군이 청에서 귀국했다.

●1885년 인도국민회의 결성영국에 의한 식민정부에 의해 교육받은 인도인들이 구성했다.

후일 간디의 지도아래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영국과 전국적으로 싸우며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5년 일본 항복, 한국 광복 8월15일 일본 왕의 항복선언과 함께 2차대전이 종결되고 한민족도 광복을 맞았다.

이에 앞서 5월2일엔 베를린이 연합군에 점령당했고,5월8일 독일이 항복했다.

9월2일 맥아더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책을 발표했으며,9월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선언됐다.

9월7일엔 미 극동사령부가 군정을 선포하고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결성됐다.

11월10일 미군정이 인민공화국을 비난했다는 것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매일신보’가 정간됐다가 11월25일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속간되었다.

조선일보(11.23), 동아일보(12.21)도 복간됐다.

12월30일 송진우가 피살되고,31일부터 신탁통치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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