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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실직자 템플스테이' 2박3일 동행기
지난 7일 오전 11시. 충남 공주의 태화산 마곡사. 태화산 골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이곳에 30명의 남녀가 모여들었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이들이 마곡사를 찾은 것은 극심한 경제불황에 따른 실직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것. 전국 사찰중 마곡사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실직자를 위한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이들은 2박3일 동안 조용한 산사에서 세상살이에 치이고 찢어진 마음을 위로받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했다.

이들은 새벽 3시 기상, 108배, 걷기명상, 산행, 울력 등 하루 19시간의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2박3일을 따라 가봤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시간이다.

2인 1조가 돼 한사람은 눈을 가리고 한사람은 손을 잡아 그를 인도한다.

마곡사 후문까지 걸어가며 눈 가린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리 쉽지 않은 일. 걷는다.

돌부리에 걸리고, 휘청거린다.

마주잡은 손에 땀이 고인다.

그러면서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이 믿을 건 손 잡은 또 다른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 놓는다.

‘얼음같이 차가웠던 마음이 깨어지고’ 마주잡은 손에 온기가 흐른다.

#내가 있으려면! 쌀 한톨이 손에 쥐어진다.

이 쌀 한톨은 어디에서 와서 내 손위에 있을까. 햇볕과 바람, 비와 물, 거름이 듬뿍 담긴 흙, 농부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매일 먹는 자그마한 쌀 한톨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럼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나는데는 그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했을까. 부모의 육체를 빌려 피를 받고 살을 받아 이 땅에 났다.

그리고 형제자매의 사랑을 먹고, 사회에 발을 온전히 내디디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북돋움이 있었을까.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확인한다.

#구름이 흩어지듯 이제 한시간 후면 죽는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 무엇을 할 것인가. 남기고 싶은 글을 쓴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부모, 형제, 사랑하는 자식과 부인과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보, 삶의 동반자로서 정말 미안하오.’ ‘부모님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 ‘친구들,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해주오.’ ‘못난 부모였다.

너희들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먼저 가는구나.’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니 아쉽습니다.

’ 등등. 많은 회한과 아쉬움, 미안함이 유서 속에 담겨있다.

그리고 삼배후 유서를 태운다.

이제 지난 과거의 삶은 재와 함께 날아갔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서로 서로 손을 잡고 새로운 인생을 다짐한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겠습니다.

’ ‘진지한 삶을 살겠습니다.

’ ‘나를 아끼겠습니다.

’ ‘젊은 날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 저마다 각오가 새롭다.

늦은 밤 이들의 서원(誓願)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마곡사에 첫눈이 소복이 내렸다.

#나는 존귀한 사람 연화대 3개가 만들어진다.

부처님의 자리다.

모두 부처가 된다.

한명씩 연화대에 오르고 마가스님·묘운스님을 비롯, 모든 참가자들이 이들에게 삼배를 올린다.

‘당신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

슬픔과 고통을 모두 벗어버리고 행복하십시오’라며 경배의 절을 올린다.

이제껏 누구로부터 존경과 감사의 절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이들. 직장에서 내몰렸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의 순간이 떠오른다.

가슴 졸임, 원망, 부끄러움, 미안함이 눈처럼 녹아내린다.

눈물이 흐른다.

말을 잊지 못한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 “어려울 때 이 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 “진심을 다해 살겠습니다.

”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 “쓰러질 만큼 힘들 때마다….” 그리고 서로를 포옹하고 다독거린다.

마가스님의 말이 이어진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열심히 사십시오. 한바탕 멋지게 살아봅시다.

#다시 세상 속으로 무소유(템플스테이에서 얻은 별칭)=“마음이 가볍습니다.

뭔가 해낼 수 있다는 힘을 얻었습니다.

다시 시작해야겠고.” 샘=“계속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욕심이 많이 생기네요.” 풍경소리=“삶에 찌들리고 지친 마음과 육신을 잠시 내려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 구슬이=“움직일 수 있을 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게 됐다.

” 3일 동안 걸쳤던 먹빛옷을 벗었다.

모두들 숙연하면서도 환한 모습. 산문을 나선다.

마가스님이 손을 흔든다.

그리고 이들은 치열한 삶이 기다리는 세상 속으로 총총히 멀어져갔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보조국사 지눌의 경구를 가슴에 새긴 채. 〈공주 마곡사|배병문기자〉 - “실직고통 나누고 싶어 기획”…마곡사 포교국장 마가스님- “사바세계에서 상처 입고 지친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다독거려 되돌려준다는 방생(放生)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모두 힘을 내서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됐으면 합니다.

” 이번 실직자 템플스테이를 기획하고 도맡아 진행한 마곡사 포교국장 마가스님은 “3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템플스테이를 계속해 온 마가스님은 올해 처음으로 실직자 템플스테이를 기획했다.

“신도들과 얘기하던 중 실직자들의 고통을 불가에서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쳤다”면서 “이번에 일체의 비용을 마곡사에서 부담한 것도 이런 취지”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2박3일 동안 뭔가 큰 것을 얻어가기보다는 힘들었던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잠시 부려놓고 쉬는 방법을 배워가면 그것으로 되는 것 아니냐”며 “쉬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일하는 방법도 알게 되고 그러면 캄캄 절벽 앞에서도 살아날 방도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실직자에 포커스를 맞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힘들었다는 스님은 “우선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을 버리고,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일맥상통하도록 짰다”면서 “앞으로 노사대립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산업체 관련 프로그램도 개발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14일부터는 부부명상 템플스테이와 화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는 ‘자비명상’, 상담인을 위한 템플스테이도 예정돼 있다.

스님은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나가서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그들의 몫이 아니겠느냐”며 “여러분, 세상의 주인공이 되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공주 마곡사|배병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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