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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마애삼존불과 할미바위의 낙조
▲ 서산 마애삼존불상 ⓒ2005 서산시 자료사진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30여분이면 닿는 서산. 그곳에는 고색창연한 문화가 산골짝 곳곳에 온전히 남아 오늘에 전한다.

서산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태안 안면도.그곳엔 뭍을 연모해 억겁을 두고 땅으로 달려드는 끝간데 없이 펼쳐진 가이없는 바다가 있다.

거기엔 생동하는 젊음과 낭만이 넘친다.

서산, 태안 관광을 하려면 서산 마애삼존불 - 보원사지-개심사-해미읍성-천수만-안면도 연륙교- 백사장-꽃지로 가는 길이 제대로 된 것일게다.

원래 서산과 태안은 하나였다.

먼저,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을 빠져나와 골짜기를 타고 길게 이어진 산속호수(고풍 저수지)의 옆구리를 타고 10여분 정도 달리면 골짜기의 돌무더기 위에서 목을 지키듯 눈을 부라리고 있는 돌 미륵을 만난다.

골짜기 안에는 서산마애삼존불(국보84호)과 100여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천년 사찰 보원사터가 있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은 어디 한곳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작품이나 최근들어 바위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균열을 나타내는 백화현상이 나타나 문화재청 등이 붕괴를 막고 영구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마애불은 여전한 미소로 중생을 제도하고 있다.

마애불을 지나 1km 정도 더 골짜기로 들어서면 거기 백제의 숨결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보원사터가 나온다.

지금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일체의 행위가 금지된 채 묵정밭으로 변해버린 넓은 옛 절터는 정확히 언제 세워졌다가 어느 시기에 쇠락해 풀밭으로 변했는지 알지 못한다.

▲ 보원사 터 ⓒ2005 안서순 일설에 의하면 보원사는 고려 때부터 호국불교의 본산으로 고려때 원나라 간섭기와 조선시대 들어 임진왜란 때 승병들을 키워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서고는 했다가 마침내 왜적들에 의해 수백칸이 넘는 절집이 몽땅 불에 타 하루아침에 없어졌다고 한다.

골짜기 초입의 미륵불을 받치고 있는 돌무더기는 당시 몽고군과 왜병들에 맞서 석전을 할 때 사용하던 돌더미라고 전한다.

폐사의 허전함을 안고 다시 길을 되짚어 나오다가 '해미'방면으로 길을 잡고 5분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개심사 가는 길이 나타난다.

박정권 하에서 총리를 지낸 김모씨가 이왕직 소유이던 근방 땅을 사들여 '삼화목장'을 만들기 전까지인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개심사 가는 길은 양쪽으로 소나무 숲이었으나 지금은 나무 한그루 없는 벌판을 옆에 두고 가는 허허로운 길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지난해 개심사 입구에 세워놓은 일주문은 소박하고 아담한 절집과는 어울리지 않아 산중 절집도 세월과 무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허위허위 돌계단과 비탈진 흙길을 올라 절집마당에 올라서면 서운한 감정이 모두 없어진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4년(654년) 혜감국사가 창건했고 고려 충정왕 2년(1350년) 처능대사가 중수해 내려 오다가 조선 성종 6년(1475년) 산불로 소실된 뒤 성종15년(1484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그 미려한 모습이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명부전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됐고 충남 4대사찰 중 하나다.

▲ 해미읍성 ⓒ2005 안서순 다시 해미방면으로 길을 잡아 나가면 둔중한 자태를 보이는 해미읍성(사적116호)을 만난다.

평지에 쌓은 석성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는 이 성은 구한말 천주교도들이 잡혀와 떼죽음을 당한 곳으로 천주교에서는 성지로 꼽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복원공사가 되지 않아 성내는 빈 풀밭이지만 서산시는 2010년까지 122억원을 들여 옛모습을 찾는 공사를 벌일 계획이다.

서산에서 태안 안안도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서산시 인지면과 부석면을 거쳐 천수만 현대 간척지 배수갑문을 지나 연륙교를 건너 가는 쪽하고 서산-태안 간 국도를 타고 태안읍 외곽도로를 따라 남면을 지나 안면도로 들어서는 길이다.

▲ 안면도 연륙교 ⓒ2005 태안군청 자료사진 안면도는 사면이 바다로 원래 오지 섬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1990년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편도 1차선의 비좁은 비포장도로로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 쌓이면 도로 곳곳이 유실되고 막히기 일쑤여서 공무원들이 가장 꺼려하는 출장지였고 '서울 갈래, 안면도 갈래'하면 서울 간다고 했을 정도로 인기없는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그랬는데 '상전벽해'라 했던가. 연 30여만명이 넘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안면도는 전국에서도 손꼽을 만큼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바람 아래''백사장''꽃지'등 유명 해수욕장만 30여개가 넘는다.

섬 사면 모두 고운 모래로 만들어진 해수욕장이다.

섬을 이어주는 안면도 연륙교를 넘어서면 바다가 드러나 보이고 해안을 따라 나있는 길로 달리면 어느새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팍 트이는 시원함을 경험하게 된다.

▲ 태안 안면도 신두리 사구 ⓒ2005 태안군청 자료사진 그러나 1990년 중반부터 불어닥친 개발 바람은 섬 곳곳을 몰라보게 변모시키고 있지만 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환경단체와 개발업자 간 보존과 개발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신두리 사구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게 있다.

바다다.

오지마을이었을 때나 장터를 방불케 할만큼 사람들이 멀미날 정도로 밀려오는 지금이나 꽃지앞바다 할미 할애비 바위 위로 지는 낙조는 한결같다.

붉은색으로 뒤덮힌 하늘과 바다는 한순간 하나가 되어 너울거린다.

보다 지쳐 감격에 겨워 울음이 터져 나올 만큼 황홀한 낙조가 지면 진한 여운을 품은 젊은 연인들이 하나 둘 일어나 모래가 끝도 없이 깔려있는 백사장으로 나가 하얀 포말을 이고 달려드는 바다와 마주한다.

▲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 할미 할애비 바위 낙조 ⓒ2005 태안군청 자료사진 시린 겨울바다는 깔끔해서 좋다.

바다는 바람이 거세면 거센대로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수백 수천 가지 모습을 연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바다에 빠져드는지도 모른다.

/안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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