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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KTX와 비둘기호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 이고/흰 보라 수수 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중략) 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 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곽재구, ‘사평역에서’ 중) 1982년 겨울과 봄 사이 꽃샘추위가 한창일 무렵 난 대구발 용산 착 비둘기호에 몸을 싣고 있었다.

‘비둘기호’를 기억하시는지 …. 흔히 완행열차라 불리던, 고색창연한 이름을 가진 그 비둘기 호를. 저녁 9시쯤 대구를 출발하면, 동틀 무렵이 돼서야 용산역 시린 바닥에 언 몸 세울 수 있게 해 주던, 그 느리고 느린 열차, 비둘기호를….곽재구 선생의 시에서처럼, 밤 열차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새 도 없이 그리움에 젖어들며 나와 내 문우(文友)들은 만해 백일장 참여를 향한 열정 하나로 뭉쳐, 추위와 배고픔 따위는 뒤로한 채 열차의 덜컹임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던 터였다.

L과 또 다른 L, K와 R, 불빛처럼 흔들리던 C, 한 무리로 일렁이 던 그들의 모습은 9시간 내내 이어지던 ‘가요반세기’에 묻혀 잠들지 못한 밤이 되고, 쿨룩이며 미소지으며 우리를 바라보던 열차 안 소박한 승객들의 긴 밤도 그렇게 낱장의 추억이 되어 쌓 여 갔었다.

생각해보니 그 긴긴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왁자 지껄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 뿐 아니라 비둘기호에 동승한 그 시절 승객들의 여유로움 때문이 었지 싶다.

기차의 속도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기차여행이 주는, 작고 따뜻한 정서들에 눈과 귀 기울이고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보듬 는 마음의 교류가 거기엔 있었던 것이다.

열차 통로에 신문지 깔 고 앉거나, 노동으로 얼룩진 이웃의 시큼한 발 냄새 쯤은 너끈히 참아주고, 더하여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의 고성방가에 손장단을 맞춰 주는 공동체적 삶 비둘기호엔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는 첫사 랑 같은 추억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때는 다시 2004년 11월, 난 KTX에 몸을 실었다.

동대구에서 출발 한 기차는 1시간40여분을 달리더니 서울역에 도착했다.

책을 꺼 내 몇 장을 읽었을까? 어여 내리란다.

참으로 놀라운 속도의 발 전이다.

20여년 사이, 비둘기호는 먼 기억 속의 이름이 되고, 비 둘기호를 함께 탔던 그 친구들도 잊혀가는 아련함이 되었다.

모 니터에 290㎞/h 혹은 300㎞/h를 넘나드는 고속열차의 속도가 찍힌 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심장박동 수도 늘어만 간다.

도심에 살며 매 일같이 속도에 등 떼밀려 사는 나조차, 변화무쌍한 고속열차의 속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미고속화 구간이 완전히 고속화하면 이 속도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속도, 그 속도 속에 갇혀 버리거나 지워져 버린 과거를 떠올려 본다.

삶은 달걀 몇 개, 사과 몇 조각을 건네며 함께하던 굽은 손들, 몇은 졸고 몇은 밤새 얘기꽃을 피우던 느린 열차 칸에, 몸 과 마음 그리고 젖은 꿈까지도 내맡겼던 아스라한 기억들…. 말 로는 차마 표현해낼 수 없는 마음의 길이 서로에게 닿던 순간들 …, 이젠 기대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리를 채 펼 수 없는 고속열차 안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 과 사는 얘기 도란도란 나누기엔 기차가 너무 빠르다.

그저 속도 를 음미하며 속도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효율성에 찬사나 보내면 되는 것이다.

좀더 빠르게, 좀더 효율적으로.하지만 이런 자본의 논리는 이내 자연을 힘들게 하고 사람을 무 표정하게 만들지 않던가? 길게는 오늘부터 설을 쇠기 위한 대장정이 시작될 것이고, 분명 고속철도도 당당하게 한 몫을 맡게 될 것이다.

비둘기호와 통일 호가 사라진 자리에 속도의 힘으로 우뚝 올라선 고속철도. 현대 적 이미지의 역사가 뿜어내는 거대한 수송의 능력 뒤안에, 우리 가 치러야 할 상실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을 반대하며 단식중이었던 지율 스님은 생 사의 갈림길에까지 갔었다.

천성산의 도롱뇽과 태고의 생물이 숨 쉬는 늪도 사라진다면 가슴 뜯으며 통곡할 일이겠으나, 느리디 느린 열차에 고단한 일상과, 후줄근해진 인생을 싣고 살아가면서 도 끝내 한 줌 희망의 빛을 놓치지 않았던 인생길이 거기에 있었 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길의 과거를 곧추세워 속도만을 앞세 우는 현재를 후려치는 죽비로 삼을 일이다.

1982년 그 해 겨울, 대구역에서 출발했던 비둘기호는 내 가슴 속 에서 아직도 덜컹거리며, 느리게 좀더 느리게 살라 하는데….[[김혜원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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