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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곳 숨은 이야기-부석사
'문 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천년을 살아 숨 쉬는 고찰 부석사. 그 고찰에 숨은 이야기를 아시나요?' 보이지 않는 20부처(佛)의 이야기. 부석사를 방문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신의 '부석사'란 친필 현판을 바꾼 이유. 그 방문에 맞춰 소나무를 잘라 가로수로 심었던 웃지 못할 사연.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절을 창건한 신라 의상조사(義湘祖師)와 선묘(善妙) 아가씨에 얽힌 사랑 이야기, 석룡으로 변한 선묘 아가씨 이야기 등등 숱한 사연과 국보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부석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위치한 부석사는 1천300년 넘는 세월을 그렇게 사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세월을 지켜보고 있다.

■안양루(安養樓)의 숨은 부처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앞의 안양루(安養樓)에 서면 아스라이 펼쳐진 소백산 연봉들이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온다.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는 느낌.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인 안양루의 공포(拱包: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 같은 데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 사이로 형체도 모양도 찾을 수 없는 부처가 있다.

바로 공포불(拱包佛)이다.

말 그대로 포와 포 사이의 공간에 나타는 불상의 형상을 띤 부처다.

김경수(47·여) 영주시 문화유산해설사는 "안양(安養)은 극락(極樂)세계를 일컫는 말로 무량수전에 오르기 전 안양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누각에 불심이 깊은 사람만 볼 수 있는 공포불이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보통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날 다시 찾는다.

마음을 비우면 보인다고 한다.

마음 때문일까.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 마음을 비운 채 안양루 누각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중도리와 상도리 사이에 조립된 십자형 공포 사이 공간을 눈여겨보면 된다.

그러면 앉은 불상 모양의 부처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공포불은 전후로 12불, 좌·우로 8불이 자리해 모두 20불이다.

■뒤바뀐 '부석사' 현판과 즉석 소나무 가로수안양루의 처마 끝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부석사'란 한문 현판이 붙어 있다.

1956년 부석사 방문 때 썼다는 친필 휘호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현장에서 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서울로 돌아간 뒤 다시 현판을 내려보내 바꾸도록 했고 지금까지 그대로 걸려 있다.

당시 영주군교육청에 근무한 김재만(72)옹은 "당시에는 교육청에서 종교 업무를 관리한 탓에 행사를 직접 주관, 벼루와 먹을 준비했다"며 "이 전 대통령은 범종각에서 현판 글씨를 썼고 며칠 뒤 경무대에서 연락이 와 글씨가 오른쪽으로 처졌다며 다시 내려보낸 것이 현재의 현판"이라 증언했다.

그는 또 "이 전 대통령이 처음 쓴 친필을 사무실 서랍 뒤에 보관했는데 없어졌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 일행의 방문을 맞은 공무원들이 대통령이 지나갈 도로 가에 급히 소나무를 베어 와 꽂았던 일도 알려지지 않은 일화. 한 전직 공무원은 "대통령 일행은 기차를 타고 와 풍기역에 내린 뒤 소수서원을 거쳐 부석사에 도착했는데 안동철도국이 소수서원 옆 도로를 보수하면서 포플러나무가 없는 곳에 인근 야산에 있던 소나무를 베어 꽂아 놓았었다"고 회고했다.

■1천300년 잠에서 깨어난 석룡부석사는 해뜨기 전 안개가 차오르면 봉황산 봉우리만 둥둥 떠다니는 육지 속의 섬으로 변해 바닷속 용궁과 같고 그 속에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부석사 자료집에도 40척(약 12m)이나 되는 석룡이 본존불에서 석등까지 연결돼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 2001년 부석사 주위에 대한 레이더 탐사 결과 길이 13m의 석룡이 발견돼 세인을 놀라게 했다.

부석사 기록은 거의 정확했다.

자연 암반을 가공한 듯한 용의 등줄기는 도드라져 솟아 있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지는 꼬리 형상이 전체적으로는 조금 휜 형태의 용의 모습으로 드러났기 때문. 이에 앞서 1996년에도 마당정비 사업 중 땅 밑 석룡을 찾아냈는데, 꼬리는 석등 지하 깊숙이 두고 머리는 부처가 있는 본존불로 향하고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형상이었다.

송준태(45) 영주시 지방학예연구사는 "석룡은 두 동강 난 모습으로 발견됐다"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부석사를 찾아와 조선의 정기를 끊는다고 석룡의 등줄기를 두 동강 냈다"고 전했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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