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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희망이다/37. 종교·정신적 가치
불교는 숲속의 종교이다.

울창한 낙락장송(落落長松)에 파묻힌 합천 해인사, 높이 뻗은 전나무들이 진입로를 장식하고 무성한 소나무들이 주위를 둘러싼 오대산 월정사, 우람한 느티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예산 수덕사, 느티나무들로 감싸인 팔공산 동화사와 지리산 화엄사, 수많은 전설이 얽힌 장중한 은행나무가 천년을 지켜온 양평 용문사, 아름드리 졸참나무 숲이 배경을 이룬 풍기 부석사의 무량수전, 이밖에도 수려한 산들마다 어김없이 발견되는 크고 작은 산사(山寺)들…. 우리는 나무 없는 사찰(寺刹)을 결코 생각할 수가 없다.

‘붓다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한 뒤에 다시 숲속을 거닐며 명상에 잠기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붓다는 주위의 숲과 논밭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붓다는 숲속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즐겼습니다….’(틱낫한 ‘소설 붓다’) 김재일님은 ‘생명의 종교’라는 글에서 이 내용을 인용하면서 “불교가 숲의 종교인 것은 붓다의 일생이 늘 숲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붓다는 숲속에서 태어나 숲속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숲속에 집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마침내 숲속에서 열반에 들었다.

초기 불교시대에는 출가자들을 가리켜 ‘아라냐카’(aranyaka)라고 했다.

이는 ‘삼림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라고 부연하였다.

불교는 그 근원에서부터 숲속의 종교였고, 한국의 불교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어떠한가? 기독교 역시 숲과 산, 그리고 나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7일 중의 하루를 초목들을 만드는 데 사용하셨고, 특히 에덴동산을 각종 과목(果木)들로 채우셨다고 말해준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 동산의 숲속에서 나무들의 실과를 따먹으면서 살았고, 나무는 인간 생존의 필수적인 요건이 되었다.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의 역사에는 사람이 이 땅에 살아오면서 경험한 중요한 사건들 중의 다수가 산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죄가 초래한 홍수가 있은 다음에 노아의 방주가 정박하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곳은 아라랏산이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도록 한 곳은 모리아산이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신성한 율법인 십계명을 주신 곳은 시내산이었으며,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낭송한 곳은 에발산과 그리심산이었다.

선지자 엘리야가 이교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한 곳은 갈멜산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밤 새워 기도한 곳은 감람산이었다.

이밖에도 백향목 숲으로 유명하던 헤르몬산과 상수리나무 숲이 우거진 길보아산이 있고,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은 비스가산과 예수님이 세 제자와 함께 올라가셨다가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것으로 전해지는 다볼산이 있다.

구원과 영생의 상징이 깃들어 있는 시온산과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로 표현된 ‘여호와의 산’(시편 24장)도 있다.

예수님이 이른바 ‘산상설교’를 하신 ‘축복의 산’과 그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갈보리산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산이다.

이와 같이 성경 종교인 기독교는 산과 나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종교들이 숲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숲이 지니고 있는 몇가지 특징과 가치 때문일 것이다.

숲에는 각종 식물이 자라고 갖가지 동물이 서식한다.

숲은 빗물을 받아 그 품속에 간직하여 초목들과 짐승들이 살아가도록 도와주며, 여분의 물은 계곡으로 흐르게 하여 강을 이루어 들판을 적신다.

때로는 그 물을 한 곳에 모아 호수를 만들어 그 안에서 물고기들이 살게 한다.

숲은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는 생명의 산실이며, 온갖 꽃들이 피어나서 열매를 맺는 생명활동의 현장이다.

뿐만 아니라 숲은 그 청정한 공기와 충분한 수분, 그리고 풍성한 녹색으로써 사람과 짐승들에게 휴식과 회복과 치유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정신적 피폐(疲弊)를 피하고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짬을 내어 산에 오르기(登山)를 즐겨하고, 도를 닦거나 정신적 수양을 도모하는 이들은 산에 들어가서(入山) 그곳에 거하기(山居)를 계획한다.

산행(山行)은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피로감과 무료함을 치료하는 보편적인 방법이 되었으며,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회복과 정신의 휴양을 위한 필수적인 주말 스케줄이 되고 있다.

삼림욕(森林浴)은 물질문명의 폐해를 씻어내고 삶의 활기를 되찾는 방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숲은 생명의 활력을 공급하는 천연의 발전소이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리라/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길고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리라’ 김연준의 가곡 ‘청산에 살리라’는 푸른 산이 우리의 정신과 심성에 끼치는 감화와 치유의 능력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노래이다.

이와 같이 숲은 속세의 번뇌와 시름을 잊어버리게 하고, 변화무쌍(變化無雙)하고 덧없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기상으로써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다.

문화와 문명의 이름으로 개간되고 개발되어 벌건 속살을 드러내는 땅과는 달리, 천년을 두고 푸르른 청산(靑山)은 그 짙푸른 색깔과 의구(依舊)함으로 인간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자아낸다.

숲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숲은 생명의 고귀함과 자연법칙의 엄정함을 깨닫게 해주고 인간의 잔꾀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교실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지나온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점검하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숲은 우리로 하여금 천연계의 질서와 현상에 대한 경이감(驚異感)에 사로잡히게 하고, 창조세계와 창조자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런 것은 숲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요, 최상의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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