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신행/복지
이덕남 장군과 바우덕이를 아세요?안성의 서운산과 청룡사에서 찾아보는 옛날이야기들
2월 11일(목),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 벌써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몇 명씩 눈에 띈다.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에 있는 청룡사를 둘러보고 서운산을 등산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였기 때문에 청룡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었다.

▲ 이덕남 장군 묘역 ⓒ2005 이승철 청룡저수지를 지나 청룡사로 가는 길 오른편에 “청룡사주차장”이라는 안내문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다리 건너편에는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내판 안내문에는 2월 1일부터 5월까지 산불방지를 위하여 “입산금지”라는 것이었다.

오늘 산행은 낭패구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 청룡사를 둘러보기 위해 조금 더 올라가 절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초소에 찾아가 문의하니 입산통제 방침이 변경되어 통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벌써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있었다.

▲ 좌선사 고갯길에서 바라본 서운산 정상 ⓒ2005 이승철 좌선사 쪽으로 오르는 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어서 등산하는 맛이 나지 않지만 주변 경치를 살펴보며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렇지, 여기가 바로 안성맞춤의 고장 안성 땅이지,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30여분을 걸어 은적암 입구를 지나 좁은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발바닥의 감촉이 푹신한 느낌이다.

등산을 해보면 대부분의 산들이 바위나 자갈길인데 이 산의 특징은 바위나 돌이 별로 눈에 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등산로가 대부분 흙길이어서 촉감이 좋은 것이다.

능선의 경사도 완만하고 산 전체가 부드러운 선으로 이어져 여성스러운 산이다.

설 연휴가 끝난 후여서 그런지 등산객은 별로 많지 않고,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있는 헬기장에서는 얼어붙은 청룡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 헬기장에서 바라본 청룡저수지 ⓒ2005 이승철 느긋하게 걸어 또 40분, 그러니까 주차장을 출발하여 한 시간 십분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해발 547.4m.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그래도 안성지방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흙산이지만 정상에는 그래도 제법 큼직한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에 올라서니 안성시가지 쪽 평야뿐만 아니라 사방의 시야가 넓게 펼쳐져 전망이 일품이다.

가까이 충북 진천 쪽과 멀리 천안 차령 쪽으로는 크고 작은 산들이 이어져 작은 산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 서운산 정상 표지판 ⓒ2005 이승철 정상에는 경기도 기념물 81호인 “서운산성”의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 서운산성은 임진왜란 때 우찬성이었던 홍자수 대감과 그의 서자인 홍계남 장군, 그리고 생질인 이덕남 장군이 이곳에서 삼천여 명의 의병과 함께 북진하는 왜군을 막아 싸워 이긴 전략적 요충지라고 한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옛 성터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발길을 돌려 좌선사로 향하는 능선 길을 택했다.

여전히 산세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흙길이다.

길 주변에는 진달래나무가 많아 꽃피는 봄철이면 화려한 꽃동산을 이룰 것 같다.

좌선사로 넘어가는 고개까지 걸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성벽의 흔적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 산 정상에 있는 바위(위에 올라서면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2005 이승철 돌이 귀한 산이어서 지형을 이용한 토성을 쌓아 왜군을 잘 막아 싸웠지만, 역시 토성이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나무들이 자라 성벽의 형체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것이리라. 아쉬운 마음으로 하산하여 청룡사로 향했다.

청룡사 앞 개울가에는 오래된 고목 한 그루와 돌무더기가 이채롭다.

“서운산청룡사”라는 현판이 붙은 정문을 들어서니 맞은편에 대웅전이 서 있는데 대웅전은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한 나무를 별로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세운 모습이 여느 절에서 볼 수 없는 매우 이색적인 모습이다.

▲ 정상에서 바라본 안성 평야와 시가지 일부 ⓒ2005 이승철 대웅전 앞에는 귀퉁이도 떨어져나가고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작은 3층 석탑이 괘불걸이 돌 지주와 함께 서 있다.

좌우편으로는 요사채가 자리 잡고 있는 특이한 배열인데 이것도 청룡사만의 특징일 것이다.

이 청룡사는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하는데, 불교사적으로보다 민속사적으로 더 유명한 절이다.

한 때는 남사당패의 본거지이기도 하여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사찰로 유명한데 안성이 남사당의 본고장이라면 이 청룡사는 그 남사당패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청룡사 정문 앞의 고목과 돌무더기 ⓒ2005 이승철 옛날 남사당패들은 이 청룡사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절에서 발급해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과 전국의 저자거리를 떠돌며 기예를 팔아 먹고사는 천민집단이었다.

백여 년 전 안성에는 개다리패, 심선옥패, 오명선패, 안성복만이패, 이원보패, 안성원육덕패 같은 남사당패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우덕이”패였다고 전한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유일한 여성꼭두쇠였는데 미모가 뛰어나서 많은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미모 뿐만 아니라 소리가락 솜씨도 일품이었으며 특히 바람에 휘날리는 듯 하는 줄타기 솜씨가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 청룡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2005 이승철 그녀의 기예솜씨는 장안에까지 알려져 경복궁 중건 때는 왕과 대신들 앞에서 기예를 펼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뛰어난 솜씨에 감탄한 대원군이 정3품관에게 주어지는 옥관자(망건 좌우에 다는 옥장식품)를 하사했다고 하니 신분사회인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파격적인 대우였다.

양귀비 뺨치는 뛰어난 미모와 출중한 기예솜씨로 바우덕이패의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인기가 최고였는데 지금도 바우덕이 노래 한 자락이 전해지고 있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를 가네 ▲ 5톤 무게의 구리종 ⓒ2005 이승철 그런데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그 바우덕이는 오래 살지 못하고 23세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42세의 역시 남사당패였는데 그녀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날마다 근처의 바위에 올라가 나팔을 불고 황소울음을 울어 청룡리 주변에는 나팔바위, 울바위, 떵뚱바위 같은 바위 이름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청룡사 경내에서 조선 현종 때 만들었다는 5톤 무게의 구리종을 둘러보고 귀경길에 올랐다.

청룡저수지는 그동안의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고 길가에는 한 시절 저자거리 서민들의 한바탕 구경거리로, 또 뭇 남성들의 뜨거운 눈길을 받았던 한 여인의 묘를 안내하는 안내판이 낯선 길손의 호기심어린 눈길을 받고 있었다.

▲ 이덕남 장군 사당 ⓒ2005 이승철 안성으로 나오는 길 옆 미양면에 있는 남향받이 작은 언덕 자락에는 왜군을 맞아 용감히 싸워 큰 전공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이덕남 장군 내외의 묘와 사당이 밝은 햇빛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승철(seung812) 기자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불교정보센터의 다른기사 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