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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임금이 결정을 다섯번 번복한 이유(금강산 불교계 언급)[금강산 기행기4] 큰 논쟁거리였던 일본 사신 '앙지'의 금강산 구경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으면서 북한은 어떤 이유로 금강산 관광을 허용했을까 하는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과 북의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고 특히 휴전선에서 금강산까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관광을 허용하여 자신들의 일부를 드러내야 했던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금강산에 오기 전에 찾아 보았던 <조선왕조실록>의 기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명나라에 대해 사대를 하고 있던 조선에서는 명 사신의 금강산 유람 요구에는 무조건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사신의 경우는 많이 달랐습니다.

일본 사신의 금강산 유람 요청에 "적국의 사신에게 우리 국토를 보여서는 안된다"며 한달 이상 논의가 계속되고, 임금이 자신의 결정을 여러 번 번복했다고 합니다.

<실록>을 통해 조선 정부의 논의 과정을 정리해 살펴 보겠습니다.

왜인에게 우리 나라 땅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성종 때 대마도주가 "앙지 화상을 특사를 삼아 향 한포를 가지고서 보내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 아뢰어 금강산 유점사에 이르러서 신을 대신하여 향을 올리게 하여 주소서"라며, 금강산의 유점사에서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해옵니다.

▲ ‘전자도서관’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앙지’로 검색한 화면. <성종실록>에는 앙지의 금강산 구경과 관련한 기사가 모두 12건이 있습니다.

ⓒ2005 백유선 성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금강산 구경을 허락하였으나 신하들 사이에서 복잡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침략의 가능성이 있는 왜인에게 우리 나라 땅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일반적인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앙지는 이미 나이가 든 승려이고 금강산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하니 보여주기는 하되, 원주, 충주 쪽으로 돌아가도록 하면 모두 험한 길이므로 도리어 우리 나라를 범할 수 없다고 여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결국 성종은 이 문제를 원로들과 다시 의논하도록 합니다.

한명회 등이 금강산 유람을 허락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성종은 다시 허락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반대 의견이 나오게 됩니다.

이때 신하들의 제기한 반대 이유는 크게 세가지였습니다.

경비가 많이 든다는 것과 눈으로 인해 재난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 특히 모든 섬의 왜인들이 앙지를 본받아 잇달아 구경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성종은 이를 또 다시 의논하도록 합니다.

벌써 여러 차례 임금의 결정이 번복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름 아니라 일본은 잠재적인 적국이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논의 결과 한번 허락했으니 번복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에서부터 눈이 쌓여 길이 막혀 어렵다고 달래 보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게 됩니다.

반대하는 신하들은 "앙지가 가는 도중에 만약 도둑을 만나 해를 당하거나 혹시 눈에 깔려 죽는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임금은 "앙지가 비록 해를 당한다 하더라도 어찌 잘못이 우리에게 있겠는가? 만약 앙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분을 품을 것이니, 유감을 품고 변란을 선동하고 일을 낼 것 같다"며 금강산에 보내자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지금 길이 멀고 통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다시 달래서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산과 계곡의 도로는 경솔하게 적국의 사람들에게 알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반대합니다.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소란을 피울까 걱정하는 임금에게 그래도 국토를 보여주는 것은 안 된다는 내용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경하다가 눈 속에서 죽더라도 유감이 없겠습니다결국은 눈이 깊이 쌓였고 길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앙지에게 전하고, 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기로 합니다.

그런 뜻을 임금의 글로 전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네가 도주(대마도주)의 청을 매우 간절하게 말하였기 때문에 금강산을 구경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강원도의 지역은 산길이 매우 험하며 겨울에는 눈이 산봉우리와 언덕같이 쌓여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때로 실종되기도 하며 갑자기 길에서 죽기도 하므로 네가 그곳으로 가는 데 대해서 삼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길에서 불행하게 이와 같은 환란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실제로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금강산은 구경이 쉽지 않습니다.

눈이 온 지 10여일이 지났으나 여전히 녹지 않고 있는 구룡연 가는 길의 눈. 관광객을 위해 눈을 치우고 길을 뚫어 놓았습니다.

ⓒ2005 백유선 글을 전하고 앙지의 의사를 물으니, "칠십이 된 노승이 어찌 감히 대국에 다시 오겠습니까? 금강산을 구경하다가 눈 속에서 죽더라도 유감이 없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같이 온 왜인들도 "비록 우리 스승과 한 구덩이에 같이 죽더라도 가서 구경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앙지의 뜻이 이러하니 결국은 금강산 구경을 허락하게 됩니다.

조선 조정에서의 논의가 무려 한달 이상을 끈 이후에야 겨우 허락하게 된 것이죠. 비록 늙은 승려이기는 하나 적국의 사신에게 국토를 보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과 만약 무슨 변고를 당했을 때의 책임 문제 등이 이토록 긴 논의를 불러오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직접 임금이 글을 내려 위험을 미리 경고함으로써 추후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안심이 안 되었는지, 유점사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므로 보일 수 없으니 표훈사와 정양사 등의 절만 보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성종도 그렇게 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또다시 생각이 바뀐 성종은 앙지가 성심으로 구경하기를 청하면 유점사를 보여주라고 합니다.

임금의 생각이 이처럼 우유부단하게 보일 정도로 여러 번 바뀔 정도였다면 이 문제가 큰 문제였음은 틀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종 때에도 왜인들에게는 금강산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 일본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놓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을 위한 발걸음, 금강산 관광▲ 온정리의 정몽헌 추모비 ⓒ2005 백유선 조선 전기 일본의 침략적 위협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도 이토록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적으로부터 국토를 지키려는 노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 정부로서는 어쩌면 매우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남북은 군사적인 대치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의 금강산 관광 허용은 대단한 결정이었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금강산에서의 여러 가지 여행상의 제약도 나름대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고배율의 카메라를 금한다거나 이동 중에 촬영을 못하게 하는 등의 그들의 조치를 비난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 도올 김용옥이 글을 쓴 정몽헌 추모비에는 ‘세계사의 모든 갈등을 불사르며 남북화해의 새로운 마당을 열었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2005 백유선 그렇다면 엄연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고, 특히 폐쇄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 왜 이를 허용했을까요? 아무리 촬영을 금지한다고는 하나 육안을 통해 모든 것을 보여 주는 위험을 감수하고, 게다가 자본주의 물결이 금강산에 젖어들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추측컨대 남측의 금강산 관광 욕구와 외화벌이에 한푼이라도 아쉬운 북측의 이해관계, 게다가 통일을 위한 발걸음이라는 대의명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느 정치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과감하게 추진한 고 정주영, 정몽헌 부자의 노력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를 허용한 북한의 태도는 대범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말이죠. 실제로 북측의 군인들과는 달리 여행 중에 만난 북한 사람들은 꽤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함을 보였습니다.

오히려 경직된 것은 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계속됩니다)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네번째입니다.

백유선(loz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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