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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는 절집 망해사
배지영(okbjy) 기자 ▲ 망해사 종루 ⓒ2005 배지영 망해사의 존재를 안 건 얼추 10년 전쯤이다.

같이 일하던 선배는 들릴락 말락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런 날, 망해사 가면 좋은데….” “가고 싶으면 가아.”“가고 싶다고 맘대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야.” 처음에는 망해사가 아주 먼 곳인 줄 알았다.

아이 둘이 있고, 며느리가 차린 밥상을 기다리는 시부모님이 있고, 흰 모시옷을 즐겨 입는 남편이 있으면, 아무리 가까운 곳도 다 먼 곳이 돼버린다는 것을 몰랐다.

이름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집 망해사. 식구 셋이서, 아이와 둘이서, 후배나 친구들과 함께, 가끔은 혼자서 망해사에 간다.

파도가 절집 마당 아래 절벽까지 부딪혀오는 날이 있고, 빈 갯벌에 새만 내려앉아 있는 날이 있다.

재채기 나오기 전에 코끝이 간질간질하는 것처럼 뜬금없이 망해사가 생각나는 날도 있다.

식목일 날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망해사에 갔다.

김제 심포항 조금 못 미처 있다.

군산에서는 차로 40분 거리다.

한식날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병풍을 치고 차례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쑥 캐는 사람도 있었고, 소나무 그늘 아래서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솔방울을 발로 차며 까불면서 갔다.

올라가면 갈림길이 있다.

왼쪽으로 가면 전망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망해사가 나온다.

전망대 옆에는 바다를 보고 있는 무덤이 있다.

햇볕이 잘 들고 따뜻해서 그 뒤에 꼭 앉아보게 된다.

옛이야기에서 소금 장수들이 길 가다가 해 떨어지면 왜 무덤 옆에서 잠드는지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 전망대 아래 무덤, 햇볕이 좋다 ⓒ2005 배지영 ▲ 전망대에서 본 심포항 ⓒ2005 배지영 전망대는 안 올라가도 좋다.

그런데 아이는 올라오라고 재촉을 했다.

계단만 보면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고 싶어지는 아이의 꿍꿍이를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올랐다.

전망대 위에 서면 심포항의 고깃배까지도 잘 보인다.

바람도 햇볕도 부드러워서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다.

눈 뜨니까 세상이 눈부셨다.

망해사로 갔다.

군부대를 지나쳐 가야 하는데 군인들이 꽃을 심고 있었다.

얼마 전 경찰하는 후배랑 왔을 때에 그 애가 알려준 걸로 남편한테 잘난 척 하고 싶어졌다.

“형, 왜 군인들이 주황색 추리닝 입는지 알어?”“모르는데?”“탈영하면 저 색깔이 되게 튄대.”“바보들. 군인이 탈영만 생각하나? 맘먹으면 군복 입고 하면 되지.”아이는 절집 마당에서 땅바닥에 붙어서 핀 개불알꽃을 찍었다.

절집 뒤에서 청설모 두 마리가 까불고 다니는 것을 보고 좋아서 제자리 뛰기를 했다.

산에 갈 때마다 나보고 다람쥐 좀 잡아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막상 눈앞에 보이는 청설모를 잡아달라는 말은 안 했다.

▲ 일제 강점기 때 지어져서 일본식인 청조헌 ⓒ2005 배지영 ▲ 청조헌과 낙서전 사이의 법당 ⓒ2005 배지영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 때 창건했다고는 하는데 그 때의 절집은 땅이 꺼져서 바다 속으로 잠겨버렸다고 한다.

그 뒤로 1000년쯤 지나 조선 인조 때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새로 지었다.

바다를 마주 보면서 서 있는데 ㄱ자 모양으로 돼 있다.

낙서전 마루에 앉아보고 싶지만 대나무 울타리에는 스님들이 공부 중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써 있다.

글자를 모르는 강아지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낙서전 마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원래는 낙서전 마루에 있다가 새로 지은 종루로 옮겨진 범종은 절집 마당 맨 앞에서 바다를 보고 있다.

그 뒤로 낙서전, 법당, 청조헌이 단정한 일자로 서 있을 뿐이다.

남해나 동해 바다처럼 파랗지 않은 바다, 생활력이 느껴지는 푸르딩딩한 바다를, 절집은 망해사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낙서전, 들어가서 마루에 한 번 앉아보고 싶다 ⓒ2005 배지영 차 세워놓은 곳까지 내려올 때는 대나무 토막을 발로 차면서 왔다.

대나무는 곧고 평평한데 끝은 매듭이 볼록하게 튀어 나와 있어서 발로 차면 땅바닥에서 구르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나무로 된 실로폰 칠 때처럼 둥글면서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강원도에 큰 불이 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차를 세우고 텔레비전 화면으로 낙산사가 불타는 것을 보았다.

울컥, 했다.

망해사의 존재를 알려 준 선배는 몸에 암 세포가 퍼져서 강원도로 갔었다.

날마다 솔숲을 산책하고 날마다 기분 좋아지고 날마다 건강해지는 것 같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선배는 몸이 아주, 아주 쪼그매져서 세상을 떠났다.

집에 오니까 현관 센서 등이 켜졌다가 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났을 때도 아무도 없는 현관에 센서 등은 켜져 있었다.

선배가 망해사에 왔다가 나를 알아보고 따라왔나? 조금 무서웠다.

나도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안 무서운 척 했지만 선배의 혼잣말이 생각났다.

“이런 날, 망해사 가면 좋은데”의 ‘이런 날’은 어땠었나? 이슬비가 내리던 날인 것도 같고, 벚꽃 잎이 흩날리던 날인 것도 같고, 눈이 온 날인 것도 같고, 바람이 쓸쓸하게 불던 날인 것도 같다.

어쩌면 선배는 아무 특별함도 없는 그저 그런 날에도 망해사라는 머나먼 절집 앞으로 불쑥 달려가는 자유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현관 센서 등은 혼자서는 꺼지지 않았다.

관리 사무실 아저씨가 전기제품이란 오래 쓰면 고장 나는 법이라고 새 걸로 바꿔줬다.

그러면 그렇지, 선배가 우리 집까지 올 리는 없지. 아들들이 학교 다니는 길도 살펴주면서 망해사쯤은 아무 때나 드나들겠지. 그리고 좀 더 먼 곳, 사진으로만 보면서 아득해했던 곳을 “재밌다, 야” 하면서 다닐 테지. ▲ 법당 쪽에서 보는 종루 ⓒ2005 배지영 2005/04/08 오전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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