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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못함이 나에게 자유를 줬다[편완식의 新풍류기행]물처럼 바람처럼 지리산 약초꾼 이용일씨
지리산 노고단 아래 그가 산다.

섬진강 따라 구례 가는 길을 달려 다다른 문수사 입구. 오르고 오르건만 노고단은 여전히 저만치다.

다가설수록 물러서며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깊은 산의 수줍음이랄까, 어둠이 금세 계면쩍은 듯 산자락을 감싸안는다.

불빛이 홀로 외로운 곳, 약초꾼 이용일(41)씨의 거처다.

산자락의 아름답고 작은 집이란 뜻에서 미미헌(嵋微軒)이라 했다.

이다지도 높으니 ‘하늘 아래 첫 집’이라 해도 어울릴 듯싶다.

높은 사람 되려고 높은 곳에 집을 지었다는 그의 말이 더욱 걸작이다.

산야초 잎을 따기 위해 그는 오늘 하루 종일 산을 탔다.

이제 막 집에 돌아와 산야초 잎을 큰 솥에 덖는 작업을 하던 차에 불청객을 맞았다.

산약초 차를 만들기엔 요즘이 최적기란다.

새싹에 식물의 기운이 집약돼 가장 약효가 좋다.

그날 따온 잎은 그날 덖어야 고유의 차맛을 낼 수 있다.

일일이 한잎 한잎 손으로 따고 만져야 돼 그는 ‘손이 불쌍한 일’이라 했다.

매년 이즈음 한 주간은 달밤 별빛을 머금으며 밤 깊도록 산야초 차를 만드느라 바쁘다.

신장에 좋다는 으름덩굴잎차도 그 중 하나다.

산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들은 그의 초라한 행색에 뭐하는 사람이냐 묻는다.

약초꾼이라 하면 아픈 사람 얘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놓는다.

그럴 땐 아무 조건 없이 약초 한 움큼을 안긴다.

병이 나아 수소문 끝에 찾아와 용돈을 주고 가는 이들도 있다.

그가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대 후반. 전남 광주 근교 농가의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 농사일을 돕게 된다.

머슴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다.

주인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새경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분한 마음을 달래려 산을 넘고 넘어 걸었다.

산이 모든 것을 받아주고 삭여 주었다.

누구도 차별치 않는 어머니의 따듯한 품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그대로 반기니 산처럼 좋은 것이 없었다.

산약초꾼들을 만나 따라다니면서 산을 배웠다.

배 아프고 무릎에 통증이 있을 때 이런저런 약초를 달여 먹으면서 약초의 효능도 알게 된다.

용돈이 필요하면 장에 내다팔기도 했다.

간간이 막노동과 장돌뱅이로 필요한 돈을 벌었다.

산에서 먹고사는 법을 그렇게 터득해 나갔다.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그는 산에서 깨달았다.

돈은 그냥 돈일 뿐 필요한 곳에 적절이 쓰이면 그만이고, 약초는 약초로서 제각기 맞는 병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 욕심에 돈이 목적이 되고 약초가 만병통치약이 된다는 얘기다.

산은 그저 산이요 물은 그저 물일 뿐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스님의 법어가 되어 귀에 박힌다.

못 배운 것을 가장 성공한 것 중에 하나로 꼽는 그는 세상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웃지만, 자신은 세상을 보고 웃는다고 말한다.

못 배우길 잘했다는 그는 많이 배우고 잘 배웠다면 배운 값을 해야 하고 배운 짓을 해야 하니 자유롭지 못하단다.

세상의 배우고 잘난 이들의 행태에 대한 사자후 같기도 하다.

배우지 못해 오히려 자유롭다는 그는 자연만큼 경험 많은 큰스승은 없다는 생각이다.

수업료가 비싼 것이 좀 흠이란다.

그동안 설악산과 오대산, 그리고 태백산에서 오두막을 짓고 10년을 보냈다.

지리산 생할 10년을 합치면 20년 세월을 산과 함께한 것이다.

전국의 산이란 산은 그의 발길이 스치니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 골짝 저 골짝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들어가 보고, 산세가 웅장하면 가보고 싶어 발길을 옮겼다.

이제 와서 보니 산야가 그렇게 그를 불렀다.

한땐 중이 되려 했다.

큰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앉은 그 자리가 최고’라 해서 그대로 산을 떠돌았다.

발품 끝에 산마다 약초의 성질이 다른 것도 알게 됐다.

지리산은 음기가 강해 당귀 등 뿌리약초가 순하고 약성이 특히 강하다.

설악산은 양기가 왕성해 버섯 종류가 좋다.

뿌리약초는 가을에 채취를 한다.

처서가 지나야 모든 기운이 뿌리에 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의 척박했던 삶처럼 봄은 늦게 찾아오고 가을이 이른 북향의 산자락에서 캐는 약초의 효능이 탁월하다.

야생 약초 뿌리들은 모질게 커 털이 많고 날카로운 것이 특징이다.

산야초 차를 만들 땐 그는 술담배마저 멀리한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몸이 맑은 상태에서 차를 다뤄야 맑은 차 맛을 얻을 수 있다.

머리카락이 빠져 차에 행여 섞일세라 삭발까지 한다.

스님들의 수도하는 자세다.

비누나 화장품도 안 쓴다.

차가 냄새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음식 냄새도 피하기 위해 거처 옆에 차를 만들고 마시는 공간인 다실을 따로 만들 정도로 마음을 다한다.

산야초 차는 주변의 가까운 벗들과 나눠 먹는다.

정성을 나누는 것이다.

약초를 먹고 건강을 회복한 인연들이 조금씩 도와줘 집과 다실도 짓게 되었다.

다실엔 간 해독에 특효라는 허깨나무 열매인 지구자를 비롯해 술 스트레스에 효능이 있는 칡꽃 차, 기관지 천식에 좋은 돌배, 이 밖에도 200여가지 약초로 만든 차와 효소들이 불단처럼 쌓여 있다.

그 중심에 작은 불상 하나가 놓여 있다.

그야말로 ‘약초법당’이다.

부처는 못 되도 부처를 모셔 부처처럼 살려는 뜻이 담겼다.

그는 여전히 독신이다.

생각이 같은 마땅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단다.

배우자 선택을 위해 사람의 가치를 상품처럼 따지는 세태가 그는 싫다.

모두가 싫어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한다면 그것은 남들을 위한 봉사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자연과 벗 삼을 수 있는 배필을 찾고 있다.

산생활에선 밥 한 숱가락 남겨 새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돼지고기도 새가 체할까 봐 잘개 썰어주는 마음 씀씀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가 간혹 늦잠을 자는 날이면 새들은 왜 밥을 안 주냐고 창밖에서 지저귀며 난리법석이다.

새가 게으름피울 수 없도록 해주는 친구가 됐다.

세상사람들은 산생활이 답답하다 할지 모르나 야생의 자유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사람이 고독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보면 큰 행복이다.

보상이 되는 다른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달랑 배낭 하나 메고 산을 누비는 자의 자유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

된장 하나면 지천의 약초가 찬거리다.

비 오고 안개 끼면 몇날 며칠을 산속에 갖히기도 한다.

비를 피해 바위 밑에서 정좌하면 돌부처가 따로 없다.

약초 캐다 산중에서 밤을 보내다 보면 너무 적막하고 고요해 새 울음 소리마저 그리울 때가 있다.

새울움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갈 땐 긴 이별의 의미가 가슴패기를 때린다.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삶과의 이별이란 게 저런 것이 아닐까 어렴풋하게 짐작해 본다.

독버섯을 먹고 산속에서 이틀간 탈진해 쓰러져 있으면서 죽음을 가까이해보기도 했다.

물 마시고 토하면서 간신히 기력을 차리면서 산다는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뱀에 물려 5시간 거리를 2시간에 달려 내려오며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외길이 예닐곱 갈래로 보이는 가운데 산에서 겨우 내려와선 혀가 굳어 말을 못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살고 싶지 않았다.

철들자 죽는다고 죽음 앞에 서는 순간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 것을. 그 순간에도 뱀에 물려 죽는다는 남부끄러운 생각이 제일 두려웠다.

이 순간 막연했던 죽음 이후의 세계가 감지됐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를 문 뱀을 자루에 담아 내려 왔다.

병원비 걱정에 팔아서 보탤 요량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단다.

산에 사는 야성의 발로다.

그는 이제 산에 묻혀가고 있다.

그가 바로 자연이다.

4월 말의 지리산. 산벚꽃과 돌배꽃이 꽃망울을 한창 터뜨리고 있다.

그는 말한다.

좋은 물과 공기, 그리고 좋은 음식과 생각이 건강을 만든다고. 아무리 영약이라도 이런 조건이 없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탁한 음식과 공기, 그리고 생각에서 몸이 병들게 된다고.지리산에서 밤을 지새우고 내려오는 길을 산작약꽃과 산사과꽃이 멍울진 모습으로 반긴다.

신록이 초록 옷을 입고 저만치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고 있다.

뒤돌아다 보니 멀리서 그가 손인사를 보낸다.

아침 햇살 속에 선 그는 어느 산사의 큰스님 얼굴이다.

wansik@segye.com 2005.04.28 (목)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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