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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도 사는 길

1. 화두(話頭)

한 수행승에게 사슴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를 숨겨주었다. 뒤이어 포수가 달려와서 사슴을 못 보았냐고 묻는다. 수행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핵심은 지계(持戒)가 아니라 지혜(智慧)의 문제다. 사슴의 목숨만 목숨인가. 포수의 처자식도 먹고 살아야지. 수행자는 먹고 먹히는 욕망의 사슬에서 해탈의 길을 찾겠지만, 그에게도 최저생계가 보장되어야 한다. ‘누구나’ 최소한 먹고 살 길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빵’이 크면 못 먹는 사람이 없어진다고 경제 정책은 빵을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개인기업, 집단, 국가들이 서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돈과 권력을 키우고 지키고자 약자와 약소국을 내리누른다.

그 결과는 변명할 여지없이 빈익빈, 부익부가 현실로 나타나 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도 그랬다. 북한도 그렇게 되고 있다. 지난 2월 연길, 두만강 조-중 접경지역을 돌아보면서, 연변지역의 열악한 농촌 현실은 북한의 밑바닥 생활과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당사자가 고스란히 겪는 가난의 고통에 이념과 국가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2. 두만강아
 

   
두만강을 건너다닐 수 있는 중국-조선 교두(橋頭)는 그리 많지 않다. 중국 남평과 북한의 무산, 삼합과 회령, 도문과 남양, 훈춘의 권하와 라선의 원정리에 국경을 넘는 주요 구안(口岸, 출입경행정과 세관업무를 보는 곳)이 있다. 그런데 꽁꽁 얼어 있는 두만강은 북-중 고속도로와 같았다. 지난 2월 19일 화룡 시가지를 지나 산길을 넘어 숭선을 향해 가던 중에, 강 얼음 위로 선명하게 남은 경운기 바퀴자국을 볼 수 있었다. 또 북한 쪽으로 얼음길을 따라 소달구지가 원목을 끌고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이 풀리면 헤엄쳐 몰래 건널 테고… 두만강 접경지대는 ‘휴전선’ 같은 장벽이 아니라 이웃집 울바자와도 같은 경계가 있을 뿐이었다. 또, 법적으로는 친척방문, 관광, 사업 등을 위해 ‘출입경통행증’을 가지고 30일 정도 상호방문이 가능했다. 대대로 변경무역, 밀무역, 보따리장사가 빈번하게 이뤄졌던 대로 지금도 국경은 여러 갈래로 열려있었다.

북한 사람들에게 ‘강타기’라는 말이 있는데, 북-중 국경의 강을 몰래 건너는 일을 일컫는다. 최근에 한 사람은 중국돈 1500원을 주고 길안내를 받아 중국 연길로 와서 한 달 남짓 돈벌이를 하며 있었다. 그가 다시 돌아가려면 1000원이 든다고 했다. 이렇게 적잖은 돈을 들여 중국으로 나오는 까닭은 장사밑천을 만들려고 모험하는 경우가 많다. 식량을 구하려고 대량 탈북하던 때와 다른 상황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이나 남한 친척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무 연고 없이 나와서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중국에도 600-700원을 못 받는 노동자나 실직자가 수두룩한 형편이니, 강타기를 하여 목적한 돈을 벌기는커녕 비법자로 걸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못사는 인민들에게 강은 강일뿐인가.

3. 국적도 국경도 초월한 개

   

남평에서 점심을 먹고 1시간 남짓 달리다가 수력발전 댐을 보았다. 여기서 전선이 북한쪽으로 넘어갔다. 발전소는 화룡에 속한 백금 근처에 있고, 전기를 받는 곳은 북한의 계상리와 계하리 사이의 어느 지역일 것이다.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지만, 그 발전소는 1970년대에 김일성 주석이 주은래 수상에게 요청하여 합작으로 건설한 것이라 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모르지만, 아무튼 중국의 전기가 북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전선이 지나는 북한 쪽 강위에서 개 한 마리가 우리 일행을 지켜보다가 쪼르르 중국 쪽으로 건너왔다.

   
“야, 저 개는 북한 개냐, 중국 개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개에게 국적이 있습니까?” 하고, 조주 스님의 공안처럼 던져본다면, 한반도도 중국 동북지역도 ‘인간의 땅’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최근에 중국의 ‘동북진흥 프로젝트’를 파헤쳐보자는 기사가 넘치고 있는데, 이것이 북-중 동반 성장을 꾀하는 일인지, 북한 경제의 중국 예속화를 의미하는지 궁금해 한다. 그것은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킨 ‘역사 동북공정’과 비슷한 일로서, 북한을 동북 3성에 더하여 중국의 제4성으로 편입시키려고 경제 분야에서 추진하는 ‘경제 동북공정’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강역싸움으로 보는 시각을 돌려, 인간의 땅 위에 사는 인간의 노력을 이끌어내는 전망은 없겠는가? 북-중 밀월을 우려하는 시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우리 전망은 무엇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강타기를 하는 북한 기층 주민들이나 동북의 가난한 농민들이나, ‘누구나 최소한 먹고 살 길’을 여는 희망에 바탕을 두고 북한과 동북3성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지금 생각해 보면, 두만강 위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전기 이상의 무엇이 흐르고 있을 것 같다.

   

4. 포수의 전업(轉業)?

포수가 총을 내려놓아도 굶어죽지 않는 길이 있다고 일깨워 준다면? 이보다 먼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떨고 있는 사슴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그래도 그 눈에 총구를 겨눠 쏜다면? 

결국, 내 스스로 ‘보는 문제’로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한 내에 남북 관계를 놓고 보수와 진보로 갈등하는 현상을 보면, 서로 자기가 신봉하는 진리를 증명하기 위한 주장인지, 진정으로 현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덜고자 지혜로운 방편을 내놓는 일인지 알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이 자존심 대결이라도 하듯이 서로 버티는 통에, 틈바구니의 인민들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일의 대소경중을 헤아리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인간의 문제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북한인권 문제를 볼 때, 생명권이 없으면 인권이 없고, 식량권이 없으면 생명권이 없고, 따라서 먹는 문제 해결 없이 인권이 설 수 없다는 일차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개혁 없이 식량문제가 안 풀린다고도 하겠지만, 이것은 질질 끄는 협상테이블 위에서 싸움일 뿐, 주민들은 지금 당장 먹어야 산다. 

최근에, 머리를 좀 써서 산 사람한테 소토지에서 강냉이 1톤 정도 생산하여 다시 뒤집어 불린 이야기를 들었다. 그 강냉이로 아내는 집에서 밀주를 빚어 판다. 부산물인 술깡지(술찌끼) 나오는 것으로는 돼지를 먹이는데, 술기운에 잠을 많이 자기 때문에 쌀겨보다 살이 더 잘 오른단다. 퇴근길에 뜯어오는 풀, 농장에서 사온 쌀겨를 보태서 먹인 돼지로 2-3만원을 번다. 술로 만들 강냉이는 1키로가 쌀 1키로가 되는데, 이 쌀을 다시 판다. 기름을 사서 농사에 재투자를 한다. 농촌에 기름이 부족하므로, 잘 아는 협동농장위원장에게 모내기철에 주어서, 10월 말에 현물로 받아낸다. 봄에 10만원이 가을이면 20만원이 된다. 이렇게 힘껏 굴려서 2004년 봄에 식량 1년분을 여유로 가지고 나머지가 40만원 정도 되더란다. 이것을 그는 ‘돼지털오리 세서 만든 돈’이라고 표현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을 드라마같이 말해 주었다.

그가 주변사람들에게 인심을 후하게 쓰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비법(非法)에 걸리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를 통해서 북한에서 어쩔 수 없이 비법으로 사는 보통사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보다 자원을 총동원하여 자력갱생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컸다. 그만큼 이념과 정치체제보다 사는 문제 자체가 더 절박하고 소중한 것이다.

사는 문제 때문에 편법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점은 개인만 아니라 각급 단체, 기업소는 말할 것 없고 국가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와 같은 체제의 위기와 혼란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연착륙하도록 평화와 화해의 길을 고민해야 하는 마당에,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이어 미국은 달러 위폐 문제까지 전면에 내세워 북한의 목을 죄는 금융제제를 하고 있다. 목을 죄면 팔다리까지 못쓰게 될 것은 뻔하고, 북한 인민들 생활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모든 경계를 넘어, 인간이 함께 살길이 있다는 비전을 찾으려는 ‘평화적 접근’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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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산 최정순 2006-04-19 19:27:03

    사슴이 사는 길 에는 인간과 신들도 함께 살아가지요...
    사슴.사냥꾼.도축업자.술꾼.환경론자.동물애호가협회...
    그래도
    함께 사는 일 이야말로 참되게 사는 일이 분명 합니다.   삭제

    • 마성 2006-04-13 11:18:59

      모처럼 노 선생님의 글을 접했습니다. 아주 깊이 고민한 글이라 사료됩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어떻해야 하는가를 제시한 매우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도 빈곤이야말로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갈파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급선무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정치도 있고 이념도 있는 것입니다. 노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자주 올려주십시오. 그리고 14일 서울에 올라갑니다. 동국대에서 개최되는 한국불교학회 학술발표 이후 저녁 소모임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삭제

      • 남원근 2006-04-12 21:55:00

        참 좋은 글을 보았다고 느끼려면 글발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 깊은 이해와 따스한 시선이 참 좋습니다.
        지난번에 노선생님 뵙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었는데, 돌 갓지난 애 보느라 참석하질 못했습니다. 초대해주신 분께도 무척 미안했는데, 선생님 글을 보니 그때 뵐 걸 싶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삭제

        • 청운 2006-04-12 21:08:25

          좋은 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글 앞머리에서 지계가 아니라 지혜를, 그리고 말미에서 국경이나 이념의 분별보다 범부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중요하다고 언급하신 것을 보고 깊은 동질감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불자들의 지향과 마음가짐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사랑한다면 한없이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비로운 마음은 상대와 내가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자비는 만복의 시작이요, 깨달음의 씨앗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사람의 훈기, 불자의 향기를 다시한번 느끼게 됩니다.   삭제

          • 향산 2006-04-12 17:48:28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쓰셨군요.
            노선생님 글을 읽으면, '시인 - 문학박사 - 통일 연구가'의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는 곳에 눈을 뜨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줄 아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만강을 건너 오가는 개 한 마리를 순간 포착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
            시인 문학가의 섬세한 감성이 없이는 불가능하겠지요.   삭제

            • 박창규 2006-04-12 00:33:28

              "최근에 중국의 ‘동북진흥 프로젝트’를 파헤쳐 보자는 기사가 넘치고 있는데,
              이것이 북-중 동반 성장을 꾀하는 일인지, 북한 경제의 중국 예속화를 의미하는지 궁금해 한다. " 로 결론을 지으면 혼돈과 혼란이 생깁니다.

              분명하게 " 북한 경제의 중국 예속화를 의미하고 있다' 로, 개인간의 화해도 불가능 한것이 현실인데 국가간의 동반 성장이 가능한 일이나 될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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