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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서 꿈꾸는 한반도

출렁거리는 인파 속 열두 살 소녀,
엄마를 마중 나왔다.
젖떼기보다 독한 사이판 노동자로 10년
그 모정보다 질긴 기다림 비벼 산
카네이션 꽃다발이
도리어 애처로워

맨주먹에 돈을 만드는
연금술의 관문,
여긴 언제나
피보다 진한 꿈이 뒹군다.
      -연길 공항에서


1. 연길공항, 돈벌이와 유학의 꿈
 
  2월 9일부터 3월 5일까지 연길을 중심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그 사이 여러 번 연길 공항을 갔는데 항상 만원이었다. 한 학생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부모, 이모, 사촌, 친구, 후배까지 나와서 환송하였다. 이처럼 배웅하거나 마중하는 사람들까지 넘쳐나서 공항 안은 시장보다 더 북적거렸다.

  한 조선족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상기된 표정으로 조화로 된 카네이션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걸었다. 2살 때 엄마가 사이판으로 돈벌이를 떠나서는 7살 때 잠시 귀국했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 된단다. 단 몇 시간 기다림이 더 애타는지 12살 소녀는 안절부절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 장면은 연변사람들 삶의 속사정처럼 느껴졌다. 연길공항에 묻어나는 간절한 욕망의 향방은 어디인가? 연변은 외국으로 나간 여성들이 눈물나게 번 돈으로 은행돈이 넘친다는데 변변한 생산 공장이 없었다. 그러니 연변조선족자치주정 구역의 중심인 연길은 기형적 소비도시가 되었다. 중산층의 월급이 2000위안 정도인데, 한국식 머리 파마값이 200위안, 청소기가 500-1000위안이었다. 한국상품 전문점인 성보백화점이 상징하듯, 소비의 모델은‘한국’이었다. 대장금 식당, 설운도 노래방, 서울식 사우나… 지금은 한류 열풍의 영향도 크지만 그보다 일찍이 한국인의 관광지로 열린 탓도 있었다.

  반면 헐값인 농산물은 농민들 생활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지난 3월 5일에 북경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농촌, 농민, 농업의 3농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뤘다. 농촌 인프라 건설, 9년제 의무교육 실시 등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을 위해 중앙 재정으로 3397억 위안(약 45조원)을 투입하기로 했고, 또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했던 농업세를 2006년부터 완전 폐지했다.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9억 농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돈을 벌고 공부하기 위해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는데, 동북 지역의 한 축이 되는 낙후한 연변에 ‘신농촌’ 희망이 언제 꽃필까? 예금고가 늘어나고 학력은 올라가지만, 연변지역 인재는 북경 등 대도시나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투자 가치는 떨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연변은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중 두만강접경지역을 끼고 있기 때문에 북한지역 발전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연길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정 구역의 의미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2. 연변, 북한 주민의 욕망의 실현 공간

  나는 연길에서 주로 조선족 가정집에 머물면서 지역 사정을 비교적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족의 집이나 자영업소에서 500위안이면 되는 위성방송 시설로 한국방송 시청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광범위하게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었다.

 단동에서 심양까지 3시간 걸리는 고속버스를 탔을 때는 문근영 주연의 <어린 신부>와 <댄서의 순정>을 중국말로 더빙한 비디오로 연달아 보여주었다. 연길은 그와 같은 한류 영향은 말할 것 없고, 남한사회와 실시간으로 정보유통이 되는 공간이었다. 한 조선족 처녀는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완전히 서울 멋쟁이 패션 감각을 익혀서 멋을 부리고 있었다.

 

   
동시에 연변지역은 북한과도 교류가 많았다. 남한방송과 문화가 완전히 열려 있으니, 공식ㆍ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조-중 접촉은 ‘남한풍’의 학습효과를 불러오는 중간다리가 되었다. 나는 자동차를 빌려서 2월 18일은 훈춘을 거처 방천까지 내려가서는 다시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도문, 개산툰까지 둘러보았다. 그 다음날은 숭선에서 삼합까지 접경지역을 보았다. 회령 건너편인 삼합은 해관 안까지 다시 가는 기회도 있었다. 두만강 지역을 거의 다 본 셈인데, 대부분 강폭이 별로 넓지 않고, 겨울에는 얼기 때문에 걸어서 월경이 가능한 곳이었다. 훈춘의 방천 쪽으로 접한 러시아와 중국의 경계는 철조망으로 되어 있지만, 북한과는 강 자체가 경계였다.

‘국경’을 무시한다면, 삼합에서 본 ‘회녕 노래방’이란 간판처럼 양쪽은 한 마을을 이루고 살 지역이다. 숭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얼어붙은 강 위로 난 선명한 경운기 바퀴 자국을 보았던 바처럼, 두만강유역은 역사적으로도 밀무역, 보따리장수, 무역거래가 일상적이었다. 그만큼 양국의 실질적인 교류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북한 시장에 중국의 공산품과 농산물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말이 실감났다. 나는 남-북의 휴전선 경계를 역설적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함남 도당 체육국 소속의 태권도협회 주석이 연변-함경도 대회를 주선해 줄 것을 요구했단다. 그것을 계기로 10여명이 공식적으로 중국에 올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돈벌이 계기가 마련된다. 북한의 관리나 주민이 중국을 방문하는 경우 사회비판 의식이 싹트고, 개방을 위한 대안을 찾기도 한다. 이를 테면 부부장급의 관리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상주비자를 내주고 무역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것과 같은 몇 가지 개방요구를 관철하는 방법으로, 중국측(조선족) 대방이 서면으로 이를 요구하는 것처럼 중앙당에 편지를 올려줄 것을 부탁하는 일이 있었단다.

  일제강점기에 간도 등지로 조선족이 이주했고, 60년대는 중국 조선족이 북한으로 이주하여, 친인척이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중 구안(세관)들을 통해 친척들의 상호방문이 이뤄지고 있었다. 요즈음은 북한사람이 출입경 통행증을 만들어 많이 나오고 있었다.

 최악의 식량난 때 중국 친척들이 발 벗고 나서서 북한을 도왔지만, 지금은 열의가 식어 방문자 스스로 돈벌이가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보따리장사가 이뤄지는데, 연변은 북한주민에게 ‘공식을 빙자한’ 사적 욕망의 실현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연변 경제와 문화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이농, 국제결혼, 외국인 노동자로 송출되는 문제를 비롯해 연변의 인구가 급격히 변동하고 있다. 이에 따른 가정의 해체와 남한의존성도 문제 중의 하나이다.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연변이 건전하게 발전할 때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매개 지대가 됨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3. 조-중 관계의 활성화 현장에서 구경꾼이 되어

  2월 12일-14일은 심양, 단동을 갔다. 단동에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쓸쓸한 신의주 쪽을 살펴보았다. 단동은 신의주개방을 앞두고 준비된 도시나 다름없었다. 평양-신의주까지 열차로 5-6시간 걸리는데, 여기에 국제 열차로 두 ‘바구니’(객차, 輛)를 달아서 매일 150-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중국으로 나온다고 했다. 이 열차를 이용해 평양사람들이 단동, 심양, 북경, 연길 등지로 나오고, 중국에서도 많이 들어갔다. 또 자동차들은 외길 교량을 이용해 번갈아서 나오고 들어가는데, 물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여기에 새 다리가 놓인다니 그만큼 통행량이 늘어날 것이다. 

  단동은 신의주지역의 새로운 전망과 함께 활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 대북 무역업자는 신의주 개방을 전제한 항만 확장이 되고 있고 단동 내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남순 이후, 과거 신의주행정특구와는 다른 의미의 개방이 올해 안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국제특구와 국내특구를 분리해 개방할 것이라 전했다.

  중국의 동북쪽으로는 방천 옆 권하 구안이 중요한 해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은 중국이 북한의 원정리-라선시을 통해 동해로 나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라선시의 항만 이용권을 확보하고, 중국이 투자하여 원정리-라선시의 도로를 새로 포장한다고 했다. 단동항과 북한 라선항은 중국동북지역의 국제 물류 통로가 되기에, 이곳의 활기는 이 지역의 경제성장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이 무산광산에 투자하여, 현재 화룡시에 속한 남평에는 ‘연변천지선광유한회사’가 선광작업을 하고 있었다. 화룡시의 1억2-3천만 위안 수입에서 절반 이상이 무산광산 관련 수익이란다. 정확한 수치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철광산업이 기초산업임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동북지역 개발의 발판 역할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교통이 어떻게 발전하느냐가 개발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니, 신의주와 라선 지역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서 이처럼 헐값으로 지하자원과 인프라가 중국쪽으로 넘어가고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현실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지만, 이런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 것인가?

4. 연변과 한반도를 소통시킨다면

  연변에서 개인들의 삶의 모습과 동북지역의 중국 정책을 겹쳐 보면서 아직 미개발상태이지만 태동하고 있는 어떤 꿈들을 생각했다. 동북지역과 북한의 동반 개발은 먼 길일까?

 

   
도-농 격차와 사회양극화 현상의 극복을 위해 신농촌 건설의 비전을 제시한 전인대도 그렇지만, 천진에서 주은래기념관을 돌아보며 느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중국의 정치적 리더십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중국을 사실상 자본주의화한 사회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농업세 완전 폐지와 같이 사회주의제도를 개선,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고, 이런 방향은 북한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체제를 고집하는 통일방식은 남북 사이에 큰 갈등을 낳을 것이다. 그보다 먼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소통하는 ‘마을’과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한반도-동북아는 금방 상호의존적 공동발전지역으로 될 수 있지 않을까. 남한도 중국도 서로 열린 길을 얻지 않을까. 두만강개발을 위한 UNDP가 유명무실한 상태이지만, 보다 낮은 차원의 인적ㆍ물적 차원의 교류부터 착실히 진행된다면, 이것이 큰 구도의 개발을 위한 초석이 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북한 내 새로운 가치관과 의식이 형성하는 데 연변지역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깊이 주목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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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산 2006-05-27 02:13:42

    맞습니다...인적ㆍ물적 차원의 교류부터 착실히 진행이 되어야 상생,상승이 가능하지요!....   삭제

    • 통일염원 2006-05-12 23:27:03

      노귀남님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동시에 우려를 함께한다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통일과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이 과연 현실의 배고픔과 실용성보다 앞설 수 있을까. 또 정말 민족이라는 통일이라는 것에 얼마나 절실함을 우리는 함께 하고 있을까...
      열강의 틈바구니에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 한반도.
      우리의 피보다 우리의 열정보다 열강의 이익은 더 현실적이고 힘이 있다.   삭제

      • 향산 2006-05-09 15:53:54

        얼마 전 KBS TV의 특집 프로그램에 이어 지난 일요일 밤에는 MBC에서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노선생님이 하신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중국, 특히 요령성과 길림성의 교포 사회가 남북의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돈독이 오르기 시작한 이들이 사적인 이해에만 몰두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애써야 될 일이겠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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