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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실리주의로 가는 길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시키고, 나아가 통일조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북한을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감정까지 포함하여 생활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사회의 내면도 엿볼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북한문학은 특성상 정치 노선과 일치하는 주제를 다루는 한계가 있지만, 문학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허구(fiction)를 구사하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말하는 장점을 이용해서, 우리는 직접 말하지 않은 내용까지 뒤집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질 터, 문학이 그런 ‘벗’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북한문학을 읽으면서 남북의 벗을 만들고 통일의 지름길을 찾고자 합니다. 토론이 필요한 내용은 많은 문제제기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노귀남 /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http://blog.daum.net/knownam


북한이 실리주의로 가는 길


최치성의 「인생의 한여름에」 (<조선문학>, 2006.6.)에서는 2002년 7.1조치 이후 공장ㆍ기업소ㆍ기관 등 각 단위별로 어떻게 ‘생존 경제’를 꾸리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현재 북한은 국가가 자원과 식량을 배분하던 일이 마비된 상태에서 개별경제주체가 ‘시장’을 통해 먹고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력갱생’이나 ‘실리주의’ 구호는 단위별로 이뤄지는 생존의 경제행위를 변명하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변화된 경제활동은, 유일체계 속의 국가로부터 개인과 소집단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해주는데, 이때 국가를 위한 자력갱생, 국가를 위한 실리주의는 한갓 구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전임과 신임의 <성 무역국>주1) 국장이 등장한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어떤 방향으로  ‘실리주의’가 흐르고 있는지 보여준다.

젊어서 한때 선장을 했던 전임 국장 김유진(60대)은 미완의 업적을 남기고 직장을 떠난 사람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무역국이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반공화국책동’으로 무역과 운영에 애로가 있었고, 그 영향으로 무역국의 전체 실적이 거의 “영”상태로 떨어진 전례없는 시련을 겪었다. 그때 김유진은 자체적으로 자립하는 길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몇 해 전에 “가치있는 수출원천”을 찾아, 유리한 계약을 성사시켜 재정형편이 펴이고, 운영에도 활기가 돌고, 마침내 실적그라프가 “상승선”을 그리게 되었다. 이렇게 잘나가는 때에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젊은 세대인 손경후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신임 국장 손경후(40대)는 인민경제대학 재교육을 마감하고 있던 차에 김유진의 추천으로 신임 국장이 되었다. 뜻밖에 “과분한 임명”을 받은 손경후는 일종의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업무 인수를 받는 날, 김유진의 애장품인 모형 나무배를 국장실에 그대로 두고 가겠다고 한다. 이름 있는 목각예술가 작품인데, 닻이 없는 ‘미완성품’이다. 현실을 상징하듯, 닻이 없어 안착이 불가능한 배가 어디로 떠돌고 있는 것인가?


손경후는 실력을 가지고 높은 실적을 쌓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먼저, 국 내부의 기구를 정리하는 문제를 생각했다. 현재의 관리업무에 비해 인적 지표는 초과된 상태지만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 일에 손도 못 대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진다. 일은 <선광공업연구소>의 공학연구사 허진숙한테서 온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편지에 따르면, 득평광산에서 94% 선광공정을 거친 수만 톤의 미광이 쌓여있는데, 그것이 보기는 버럭에 지나지 않지만, 합성첨가제 <MV>를 추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합성첨가제는 적은 양으로도 물질의 결정구조를 변화시켜 질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 미광 톤당 가격과 비교할 때 한 톤에서 추출될 첨가제는 백 배 가격이 된다. 현재 이론적으로 담보된 상태에서 연구시험 중인데, 실무 책임자인 남태설에게 연구내용을 알려주고 수출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도 많은 양의 미광이 실려나가고 있고, 이것은 불과 한두 해 동안 무역국이 허리를 펴게 만든 ‘원천’이었다. 그런데 “한개 기업소가 적지 않은 리득을 얻는 대신 국가는 백배의 손실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김유진이 “내 동무를 믿고 떠나가겠네…”라고 무겁게 부탁을 한 것인가? 사실, 김유진은 자기 할 바를 다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무역국을 떠날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인계를 하면서 남겨놓았던 미완의 모형배처럼 손경후에게 실상을 밝히지 못하고 떠넘기고 온 일이 꺼림칙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에 사건이 터져버려, 자기는 결국 그 일에서 도피한 셈이었다.


이 일과 직접 관련된 처장 남태설은 손경후의 선배이다. 그는 후배인 상급 손국장에게, 책임일군이 되면 모든 문제를 염량 크게 보아야 한다, 나아갈 때 힘껏 나가되 물러설 때도 한껏 물러서야 한다, 지나친 예민성을 좀 눅잦혀야 한다는 등의 조언을 한 것도 개인의 처세술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수출원천을 찾는 데 공이 컸고, 또 득평광산의 버럭을 장악해 외국기업체와 비교적 비싼 값으로 수출계약을 성공시켰던 장본인이다. 그 결과 국의 재정과 경영위기를 넘기고, 광산에는 채굴설비를 제공했다. 이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 그는 또, 공무로 써야 할 자동차로 손경후의 가족에까지 편의를 제공한 것처럼, 생활을 살펴주는 ‘인정’이 넘쳤다. 이런 점에서도 원칙주의자 손경후와는 상반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적당히’ 서로 좋게 공생하는 타협적 처신은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주의적 인간형과 거리가 먼 것임을 말해 주는 구체적 사건이 바로 ‘미광 수출 사업’이었다. 남태설과 김유진이 추진했던 수익 사업이 정작 국가 차원에 보면 손해라는 것이다. 작품에서 제기한 문제는, 무역단위나 기업소는 이익을 내지만 국가적으로 손실이 되면 ‘실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 또 수출품 선정에서 원료가 아닌 가공품으로, 그것도 질 좋은 가공품을 연구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 등이다. 보신주의 관료에 대해 비판하고, 국가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실적주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작품은 무역국 국장의 업적, 능력에 대한 평가보다 <국가에 이익이 되는 실리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애국주의 가치관”이 더 중요함을 다루었다. 전체의 이익에 반(反)하여 개별 주체들이 당면한 이익을 좇는 현상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또 하나는 인민경제대학을 거친 손경후처럼, 시대에 맞게 실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지도급으로 세대교체 되어야 하는 문제주2)와 ‘국 내부의 기구 정리’라는 실리 관점의 화두는 기존 조직의 개선(개혁)이라는 과제를 던졌다. 이것은 놀고먹는 사람이 많은 관료조직에 대해 인민들의 높은 불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생계유지의 주역인 장사하는 여성들이 모여 우스갯말로 ‘달리는 여맹, 앉아있는 당, 서 있는 사로청’이라고 한다니,주3) 실리주의가 사실은 국가나 관료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 할 문제임을 암시하였다. 


이와 같은 주제는 이전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주민생활의 요구수준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소설에서 새로운 인물형의 등장은 ‘예방적 변화’의 시각에서 기존 질서 유지에 우선적으로 무게 중심이 실려 있었다. 이 작품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생산성’에 맞춰 내부의 기구 정리를 하겠다는 신임 국장의 ‘관젼에서 엿볼 수 있다. ‘생산성에 맞춘 기구 정리’는 남한 식으로 보면 ‘구조조정’이다. 이런 차원으로 유추할 때, 그 일은 사실상 국장의 권한 밖에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민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욕구의 반영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일 수 있다.


작가는 일단 ‘애국주의적 실리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작품 주제를 당 정책에 부합시켰다. 이것은 김유진과 남태설의 두 사람의 사업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그려졌다. 여기서 개인에 대한 비판은 본질의 ‘깃털’에 불과하며, ‘몸통’을 이루고 있는 ‘비생산적 관료조직에 대한 비판’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주제에 살짝 덧붙인 ‘기구 정리’는 몸통에 매스를 가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과잉’ 해석은 작품의 내적구조로 감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는 간부들이 국가재산을 사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는 행위가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처럼 제도적으로 부정부패가 쌓이고 있는 현실이 북한 사회의 근본 모순이 되고 있다는 진단과 비교해서 이 작품을 볼 때, 작가가 제도문제까지 언급한 것은 주민들의 높아진 사회변화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작품의 한계를 찾는다면, 그런 문제의식이 손경후라는 중간간부가 중심에 있는 점이다. 관료가 스스로 개혁하기를 바라는 일은 사실상 먼 일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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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내각의 36개 부서 중에 29개 성이 있는데, 여기서 <무역성>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은 각 단위별로 외화벌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2) 실력이 없으면 자리 얻기 어렵다며, 식당을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벌은 00 여성(30대)이 남편은 공부를 하도록 뒷바라지를 한다고 했다, 2006.9.25.

3) <북한소식지> 38호,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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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혜민 2010-01-08 12:21:08

    선생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북한 사회의 몸체를 예리하게 해부하셨습니다.
    실리주의가 나온 동기의 정책성을 문학적으로 론리하신데 대하여,개혁바람이 북한을 어떻게 조용히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해 정확히 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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