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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으로 본 북한의 변화

 

예방적 변화

한웅빈의 「두번째 상봉」(<조선문학>, 1999.9.)은 붕괴, 또는 점진적 고사(枯死)라고 보는 체제 진단은 ‘나뭇잎 하나를 놓고도 나무전체가 말라죽어간다는 식으로 떠들어대기를 좋아하는 서방세계’의 시각 탓이라 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렵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변함없이 하나의 궤도를 따라 흘러가고있는  우리 생활, 우리의 생활…
길 맞은켠에서는 가로등불빛과 궤도전차, 자동차 전조등불빛 속에서 “올해를 강성대국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는 구호가 숨쉬듯 힘있게 두드러진다. …(생략)…
복도에서는 매 집의 문들을 빠짐없이 두드리며 알리는 “진료소에 빨리 가서 예방주사를 맞으세요 ! ㅡ” 하는 목소리가 멀어지며 끊임없이 들려온다."

소련,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많은 것을 잃었지만, 북한은 모든 것을 지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예방주사를 맞듯이 항체를 만들어 자본주의 모기에 물려도 끄떡없이 체제를 지키는 일이 지상과업이다. 생활에 일어나는 변이(變異)들이 체제변형을 가져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아무튼 삶에 변화가 있다는 말인데, 그 양상들을 몇 가지 짚어본다. 

선군혁명문학

2000년 10월 당 창건 55주년의 구호에서 북한은 ‘당을 따라 우리는 승리하였다’고, 스스로를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승리자로 규정하고서는 이를 강성대국건설에서 전변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즉, 식량난과 경제난을 정면으로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이 무렵 문학작품에서 고난의 행군시기에 대한 반영 양상이 달라졌는데, 양해모의 단편 「결석대표」(<조선문학>, 2000.10.)처럼, 대기근과 경제파탄의 현실을 비로소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주민은 생활의 안정을 나름대로 회복했고, 이를 사후적으로 승리로 규정함으로써 국가는 주민생활을 다시 체제 안으로 정착시켜 관리ㆍ지배하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선군정치노선에 입각한 새로운 문학이론의 개발에도 나타난다. ‘선군혁명문학론’이 그것이다. <천리마>(2000. 11)에서 김일성 사망 이후 창작품들을 통칭하여 ‘선군혁명문학’이라고 하였는데, 2001년 1월에는 「새 세기와 선군혁명문학」(최길상)을 통해 그 용어를 이론적으로도 정립하려 했다. 2003년 3월에는 「선군혁명문학은 주체사실주의문학발전의 높은 단계이다」(방형찬)를 통해 이론적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이런 가운데 문학에서 주된 관심은 선군사상으로 무장한 체제유지와 자력갱생을 강조한 경제회복에 놓여있다. 2002년 7.1.새경제관리체계 이후 북한은 시장경제적 요소를 ‘파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도 어디까지나 체제를 지키려는 ‘선군혁명’의 노선에 입각해 ‘예방적’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아래는 소설에 나타나는 특징적 내용들이다.

-당과 당의 외곽조직으로 망라하여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서 유지되는 북한의 ‘사회주의 대가정’은 현재 배급제 와해와 사회기반의 붕괴로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채산제 등으로 기업소나 개인이 자구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므로, 당국가 중심의 정치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주민을 관리하던 기존의 사회계층이 흔들리고 있는데, 작품에서 동요계층, 적대계층을 포섭하기 위해, 종전에는 엄격하게 부정적 으로 그렸던 인물들도 용서하고 보다 관대한 처분으로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해주고 있다.

-사회동원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선군혁명 정신을 강조하는 ‘돌격대형’의 인물 가운데, 과거에는 투철한 정치사상성을 부각했던 것과 달리 사상성이 약한 인물까지 포함하여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종전에는 자본주의적이라고 부정했던 인물도, 실리주의적으로 손익 계산을 하여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 이익을 챙기는 인물도 인정하면서 그들에게 집단주의정신을 교양하기 위해 포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자력갱생을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사회정치적 생명과 인민의 목숨

북한은 수령과 조직사상적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 할 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령결사옹위정신이 강조된다. 김상현의 실화문학 「영원한 삶의 노래—한 정치일군의 수기」(<조선문학>, 2002.11)는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생명을 더 높이 생각하게 만든다. 엄호삼은 아버지가 ‘나라 앞에 죄지은 사람’이라 자기 앞길이 막혔다 생각하고, 남의 뒤꼬리나 차지하며 살았다. 그런데 군대에 나간 셋째 아들이 당에 들었다는 소식을 받고 엄호삼은 충격과 죄의식을 가진다. 그의 아들은 군대에서 배를 탔는데, 동지를 구원하고 바다에서 희생되었다. 너절하게 살아온 애비의 가슴에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이 안겨졌다. 그는 자식들 앞에 떳떳한 아버지로 살아야겠다는 뒤늦은 자각을 한다.
엄호삼은 인생말년에 개천-태성호 물길 공사에 돌격대원으로 탄원했다. 건설혁명의 앞장에 섬으로써 인간의 참모습을 찾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했으며, 또 조직의 인정도 받았다.

작가는 그를 ‘영원한 삶’을 얻은 인물로 그리고 있지만, 기실 그는 열악한 공사장에서 안전사고로 희생된 불행한 노인이다. 그가 지은 시에서 “내 한몸 그대로 한줌 흙되여/ 물길 제방뚝에 보태진다 하라”고 했듯이, 지금 북한에서 인민의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헌신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최근 북한 작품에서 ‘사회정치적생명’을 갖지 못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복귀의 기회를 주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내세우는 사상과는 반대로 육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막다른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완되고 있는 혁명정신

박일명의 「눈보라는 후덥다」(<조선문학>, 2003.5)는 ‘백두산지구를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선경으로 꾸리기 위한 건설’ 사업에 참여한 처녀돌격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재건설 사업과 삼지연지구의 살림집 건설 사업이 실제 배경이 되면서, 견뎌내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주어진 혁명과업을 고이 자란 평양처녀도 기어이 완수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처녀돌격대 은옥은 ‘부기원으로 일하던 평양 처녀’였다. 경제난 속에 선망의 대상일 텐데, 은옥은 텔레비전에 나온 평양-남포고속도로 건설장의 청년돌격대원들을 보고 감동받아 돌격대에 자원했다. 경제적 문제가 부각되고 혁명적 투쟁정신과는 멀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은옥형의 인물 설정은 양면성을 띠게 한다. 아바이, 은숙, 사촌오빠 등 여러 사람들이 은옥에게 호의적이며 힘들어할 때 도움을 주곤 했다. 그 점에서 은옥은 혁명적 처녀돌격대가 아니라, 여러 면에서 개조되어야 할 혁명교양 대상인 셈이다.

그런 만큼 투쟁정신과 혁명성이 이완되고 있는 추세를 엿볼 수 있다. ‘백두산’이라는 혁명전통과 ‘돌격대’라는 시대적 인간전형을 겹쳐서, 현재 혁명대오에서 낙오하는 인민이 늘어가는 체제 위기 속에서 혁명의 전위를 강화하는 의도를 내보인다. 주인공이라면 대개 누구보다도 투철한 혁명정신을 구현한 인물이었던 과거와 달리, 혁명성의 강도를 낮출 수밖에 없고, 돌격대의 동원조직력도 약화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법적 교양 대상자의 사회 재편입

김혜성의 「열쇠」(<조선문학>, 2004.4)는 비사회주의 검열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는 현실과 사회주의 재교양 문제를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나’의 남편인 충국이 아버지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모두가 신념을 지키고 조국을 지킬 때’ 자신도 지키지 못한 ‘불량배’였다. 그는 ‘불도젤’의 기름을 훔쳐서 술과 바꾸는가 하면, 술친구의 텃밭을 일궈주다가 ‘불도젤’을 벼랑에 굴러 떨어지게 해서 ‘법적 제재’를 받았다. 자기밖에 모르고, 출근하기 싫으면 술과 놀음으로 시간을 보냈던 그가 ‘법적 교양’을 받고 돌아와서는 이미 헤어져 살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인 나에게 남편으로 인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내가 끝까지 그와 살아야 하는가? 아버지가 없게 될 아들애가 불쌍해서? 그런 아버지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그러다가는 성실한 모습으로 변한 남편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도리어 자책하며 괴로워하기에 이른다. ‘법적 교양’을 받고 돌아와 새 사람이 된 남편이 반갑지 않으면서도 자책감은 왜 일어나는가. 그것은 ‘용서해야 마땅하다’는 대의명분(법적 교양대상자도 수용해야 하는 사회 현실상을 말한다)과 여성의 자의식(식량난 이후 여성이 경제활동에서 실질적 생존을 감당하면서 얻어진 여성의식)과의 갈등을 뜻한다. 작품에서 아내가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말을 짓는 것은 법적 교양대상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사회재편입이 현실적으로 더 요구되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편 이 작품을 뒤집어 읽으면 여성들의 의식성장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도전을 비롯해 사회변화의 잠재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를 ‘순종의 미덕’으로 다시 덮으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예방

변창률의 「영근이삭」(<조선문학>, 2004.1.)은 기존의 농업관리체제인 협동경리 속에서도 개인이익을 병행해서 인정하고, 실리추구형 인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인공 홍화숙네의 살림살이는 보면, ‘랭동기, 색텔레비죤, 록음기, 재봉기’ 없는 게 없다. 돼지, 젖짜는 염소, 토끼, 닭, 오리, 게사니, 칠면조가 한마당 우글우글하고, 텃밭 농사로는 겨울엔 박막을 씌워서 부루, 쑥갓, 배추를 키우고 봄엔 감자를 심었다가 하지 무렵엔 고추를 옮기구 고추가을을 하고나선 마늘을 심는다. 손바닥만한 땅도 거저 놀리지 않는, 말 그대로 이악쟁이 살림이다.

작품의 결말에 홍화숙이 새 분조장에 추천되었는데, 분조관리제의 원칙과 새로운 경제관리체계의 요구에 맞게 분조를 이끌어갈 수 있는 ‘시대와 대중이 바라는 일군’을 초급일군으로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남의 등에 업혀사는 사람들의 온상이 되는 집단주의의 맹점을 씻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능력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협동경리를 운용해야 함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이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여 초급지도자로 책임을 준 점은 집단 주체보다 개별 주체가 훨씬 생산력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는 인센티브제 효과에 대해 긍정함을 보여준다. 북한에서 개혁적 변화는 이런 모습에서 싹트겠지만, 이 또한 분조장이라는 기존 ‘제도’에 수렴시키고 있음은 변화를 조종하는 예방의 끈을 놓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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