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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한 생각
 

글쓰기가 두려울 때가 많다. 왜 쓰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그게 내 삶과 얼마나 일치되는지, 그런 질문을 하게 되면, 참으로 어렵고 두려워진다. 최근 불교계에 벌어진 몇 가지 사건으로 마음이 무겁다.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도 없고,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죽고 사는 문제를 근본으로 삼고, 미세한 행(行)을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생각해보자.


웰빙(well-being)이니 하면서, 오래살기를 이 시대만큼 발버둥치는 때가 있었을까. 그러면서 생명의 존엄을 망각한 잔인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모순이 우리를 어떻게 무디게 하고 있는지.


지난 연말, 전북 익산시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고병원성으로 확인됨에 따라, 반경 500m 이내 오염지역에 있는 닭, 오리는 모두 ‘살(殺)처분’되었다. 언론은 감염 규모와 농가에 대한 보상액에 관심이 모아졌을 뿐, 살처분 당한 닭과 오리의 신세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몇 십만 생령(生靈)이 아우성도 없이 매몰되었는데, 인간들은 그 죽음에 침묵했다. 자기 앞으로 당장 떨어지는 손해와 위험을 보상받고 피해야 할 뿐,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지 않는다. 보자. 그것이 인간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조류독감에 인간이 위협받는데 무슨 순진한 말인가.

어처구니없게… '선의의 악행'?

인간은 무수히 죄를 짓고 합리화하고 죄를 면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굳이 채식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닿는 대로 고기도 먹는다. 내 삶의 방식, 세계관을 바꾸지 못하는데, 오늘날 인간 중심 축산 농업을 비판할 수 있는가. 그렇지만 살처분 당한 가축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그들이 경종을 울리고 있는데, 온갖 인간 소리에 묻혀 전달되지 않는다.


대량생산, 과소비. 시장경쟁에 낙오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잘 길들여진 생활을 포기하면 안 되지. 그 가운데 오래 살아남기 위해 웰빙해야 하는 개인에게 붙어있는 생명은 얼마나 초라한가. 자기 영혼을 세심하게 돌보는 존재는 없이, 버려져 있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양계장의 닭들은 먹이 홈통에 올라타 일생을 손바닥 만한 세상을 산다. 자연과 관계를 잃어버린 반쪽목숨은 이미 생사를 떠났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작 ‘인플루엔자’에 속수무책이라 목숨을 일찌감치 인간의 손에 맡겼다. 불쌍한 레디메이드 축생아…


조류 독감은 자연을 거역하고 순리를 떠난 목숨을 자연이 거두어 가는 ‘지극한 순리’를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근본 문제에 대한 반성은 없이, ‘살처분’을 대책으로 삼고 있는 악순환에 대해, 불자로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생사 문제에 맞닿아 있는 현실 모순, 죽고 죽임에 대해 직시하기 위해, 살처분 축생을 위해, 또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해, 반야심경 일독이나마 올린다.


아마 썩지도 못했을 육신을 버리고 그 영혼은 두려움을 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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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7-01-14 18:31:25

    가슴이 아릿해지는 글입니다. 살처분이란 말처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혀 끝의 쾌감을 위해 욕심을 부립니다.
    살처분당한 목숨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하게 해준 선생님의 글...
    가슴에 깊이 담아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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