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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셋

중국에서 본 것 중에 뒤돌아보게 하는 몇 장면이 있다.

   
장면 1. 2004년 6월 송화호(松花湖)를 갔다. 일행과 승합차를 타고 가는 도중, 웬 차가 우리 버스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와 가로 막으며 뭐라고 했다. 무슨 교통법규를 위반해서 멈추라는 지시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차는 송화호에서 자기네 유람선을 타라고 선전을 하는 것이란다. 유람선 하나를 빌려 타는데 중국돈 100원이라는데, 그것을 위해 그야말로 목숨을 떼어놓은 것처럼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왔다.

장면 2. 2006년 8월 한국의 명동거리와 같은 북경의 왕푸징(王府井) 거리를 갔다.

   
황실 전용 우물이 있었던 것에서 이름이 붙은 이곳은 명대(明代)와 청대(靑代)를 거치며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 현대의 백화점거리로 성장하게 되었다. 나는 짧은 시간에 돌아봐야 하는 상황이라 물건을 사는 것보다 풍물을 사진으로 담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백화점 쇼 윈도우에 가방을 찬 한 여성이 올라서 있고, 그 앞에 조그마한 상자들을 가득 쌓아놓고 사람들이 와글와글 붙어서 뭔가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이상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전시물’을 디카에 여러 장 담고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시계,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가 상자 속에 들어있었다. 그걸 열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사람들이 쇼 윈도우에 전시 아닌 전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장면 3. 2006년 11월 백두산을 가는 도중에 화룡시장 앞 미식성에서 아침을 먹었다. 먹자골목이 한 건물 안에 들어선 곳인데, 시간을 절약하여 아침을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일행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먹는데, 눈에 들어오는 식사는 개고기 장국 1원과 만두 5원이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만두를 시켰는데, 속이 익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했더니 별 문제 없다며 먹으란다. 께름칙하여서 다시 익혀달라고 하였더니, 끊는 물에 다시 넣었다가 건져 주었다. 역시 속이 서걱서걱 씹혀서 만두를 더 이상 먹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이 날 나는 결국 속이 탈이 나서 죽을 고생을 했고, 천지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위장에 문제가 생겼다.

이 세 장면을 함께 떠올려 보면, 하나의 코드로 연출된다.
장면 1에서, 그때 나는 원래 살던 주변의 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겠다는 생각과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가는 그 정신에 속으로 눈물이 났고, 중국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보는 것 같아 감탄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다시 생각하면 오직 ‘돈’만 쫓고 있는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장면 2에서는, 남대문 시장에 가면 ‘골라, 골라, 천원, 천원’이라 호객하여 파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놀라운 일은 소비자까지 상품화하여 진열대에 올려놓은 점이다. 그 발상에는 목적을 위해 내달릴 뿐 과정에서 지켜야 할 아무런 한도가 없다.

세 번째 경험에서 나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 전부 남는다 쳐도 우리 돈으로 650원을 위해서 ‘사람은 내 몰라라’고 하는 태도는 무섭기까지 하다. 그 식당을 찾아가 문제를 지적하고 일깨워져야 한다고 말했더니, 이야기를 들은 중국 친구는 ‘죽지 않았는데 뭔 문제냐’고 되레 큰소리 칠 것이라며, 나에게 참으라고 했다. 

중국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와 도농의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의식은‘견물생심’의 즉자적 인식에 머물러 인간적인 가치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은지, 그런 의심을 하게 했다. 중국 한 방송에서조차 어린이를 등장시켜, 여자 사회자는 꽝이 되거나 큰 상금이 걸린 표지판 번호를 알아맞히는 일을 하도록 했다. 방청객석에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은 희비가 엇갈리는 등장아이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거나 아쉬운 비명을 질러댔다. 아이에게 행운을 찾는 점쟁이가 되라 바라는 것인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든 프로인지 기가 찼다.

내가 본 모습은 물론 중국의 한 단면이지만, 우리 시대 고민을 생각하게 했다. 이런 일들이 우리 모습 속에는 없겠는가.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의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는 목숨을 뒷전에 돌려놓게 만드는 비정함이 있다. 어쩌면 21세기 경쟁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나 전장에 나간 투사처럼 공격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압록강, 두만강의 접경지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이 그런 첨예한 경쟁의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제대로 내다보아야 한다. 이 지역의 현실적 문제는 고도로 발전한 후기산업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최저생활도 보장 못 받는 기층의 빈곤 문제이다. 연변자치주의 중심지인 연길과 조-중 접경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보면서 나는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가 지역 개발과 빈곤의 해결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국제적 이해관계와 지역차별을 극복해야 하는 총체적인 전망 아래 동북아 문제를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중단되어 있지만 1990년대 들어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도로 제기된 두만강 지역 개발은 이 공간이 필연적으로 국제적 이해와 겹치는 곳임을 말해 준다. 그와 같은 상호의존성을 국가주의적 이기주의로 풀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인류공동의 과제를 지역적으로 풀어가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 지역에서 북한의 경우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한 경제난을 중국을 ‘비빌 언덕’으로 삼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지난 10월 말 단동 지역을 둘러보았을 때, 해관을 통해 북한으로 가는 물건들 중에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의 짐인 듯한 박스가 눈길을 끌었다. 생수, 과일, 감자 등 필요한 식당재료를 다 중국에서 사가는 것이었다.

 11월에 도문해관을 가보았는데, 북한으로 넘어가는 물건들 대부분이 헌옷가지, 중고 텔레비전 등이었다. 남양시장에서 거래되는 새것도 중국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나 싸구려 물품이 대부분이란다. 평양에서 낙원식당을 차린 호주국적의 한인의 말에 따르면, 단동에서 시장을 봐다 음식점을 경영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북한 시장의 90%이상 중국 상품이라는 사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처럼 의존의 도를 넘어 종속화의 모순을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는 민족적 이해관계로 하는 말이 아니다. 중국 동북지역의 개발 필요성에 따라 그보다 더 낙후한 북한을 착취하는 종속화의 모순을 배금주의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에 비판과 반성의 시각이 필요하다. 현재 진행시키고 있는 동북공정에 따른 역사 왜곡이나 ‘백두산’의 이름을 완전히 지우고 장백산 일대를 개발하여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의도도 같은 입장의 반성을 요구한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와 문화와 가치를 무시하고 인접 국가들과 분쟁도 불사하겠다는 자국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간다면, 21세기는 20세기보다 훨씬 지독한 열전과 냉전의 시대가 될 것이다. ‘경제동물’로 비치는 것이나 영토확보에 집착하는 시각은 세계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없다.

서두에서 말한 몇 장면의 경험이 보여주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빈곤의 문제를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인간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휴전선 아래 갇힌 남한에 머물지 않고, 남북을 포함한 열린 세계를 만들어 가는 평화공존의 문화철학을 주요 담론으로 생산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미래사회와종교성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2007년 1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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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 2007-02-20 05:33:49

    중국을 좋아하는 사람들 많던데....
    특히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 친중파 아닌가?
    일본에 대해서는 입에 침튀기면서 말하지만 중국에 대해선 침묵
    수천년간 우리민족을 괴롭혔지만
    반미나 반일은 있어도 반중은 없던데
    중국여행도 자주 하잖아   삭제

    • 나요 2007-02-10 06:04:24

      감사합니다

      가보지 못한곳 공짜로 모든것 알게되니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 모도다 열심히 읽고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진솔한 내용들이 마음에 닿았읍니다

      앞으로도 좋은내용 또 많이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합장   삭제

      • 독자 2007-02-07 11:10:48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중국의 배금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심하게 우려를 안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니 북한이 그 희생양이 될 것 같아 더 걱정이 커집니다. 배를 곯지 않고 인격이 존중받는 북한 사회를 만나려면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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