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학술
"정화로 출발해 분규로 변질"마성스님 '동산대종사와 불교정화운동' 세미나서 주장

"비법비율 판쳐도 자정능력 상실"
"용성 동산스님 뜻 되살려 정화 이어가야"

1954년부터 1962년 조계종 출범까지 이어진 불교정화운동은 '정화'가 아닌 '타협'으로 마무리됐으며, 5.16 군사정권의 강제에 의해 통합종단을 이룬 것은 정화의 실패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마성스님(팔리문헌연구소 소장, 동국대 강사)은 5월 8일 동산스님 42주기를 맞아 열린 부산 범어사 설법전에서 열린 '동산 대종사와 불교정화운동'세미나에서 1950~60년대 불교정화에 대한 '자책과 재해석'을 쏟아냈다.

논문 전문 내려받기 클릭!

마성스님은 <백용성의 승단정화 이념과 활동>이란 논문을 통해 "1954년 5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문제에 대한 담화로부터 '승단정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됐다"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근현대한국불교의 승단정화 운동은 처음 정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며, 그로 인해 야기된 부작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용성 스님이 한국불교의 정화를 위해 건백서를 제출하고 1947년 봉암사 결사를 계기로 승단정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으나, 정권에 의해 정화가 아닌 갈등과 반목의 양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논문은 "근현대한국불교사에서 승단을 정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그 출발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1962년 통합종단까지 정화가 마무리되었다면 점차적으로 승단을 정화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나 이에 불복하고 유처승려를 중심으로 한 집단이 떨어져 나가 별도로 '태고종'이라는 종파를 설립함으로써 사실상 '정화'가 아닌 '분규'로 전개되어 버렸다"고 주장했다.

마성스님은 "이 사건은 근현대한국불교사에서 가장 아픈 상처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규정했다.

백용성 스님과 그 뒤를 이은 동산스님의 정화에 대한 의지와 실천이 승단과 불교의 정화운동으로 확산되었으나 결국에는 5.16 군사정부가 강제적으로 통합을 강요해 '정화'가 아닌 '타협'으로 봉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한국불교의 승단정화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후 비구측과 대처측의 합의에 의해 '비상재건종회'를 구성하여 통합종단을 이루었다. 이것은 처음 대처한 자를 승단에서 축출하는 것이 정화의 목적이었다면, 대처측과 같은 지분의 종회를 구성했다는 것은 '정화'가 아니라 '타협'이었던 것이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군사정권의 개입을 들었다.

"이것은 5.16 군사정부가 거의 강제적으로 통합을 강요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합종단도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했을 뿐 내부적으로는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었다. 결국 통합종단의 대처측이 1970년 태고종을 창종함으로써 표면상의 분규는 일단락되었다. 여기까지를 정화의 시기로 본다면, 처음에는 정화로 출발했지만 결국에서 분규로 종결된 것이다."

마성스님은 "교단사적인 측면에서 보는 정화는 붓다가 제정한 계율을 어기고 승단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자를 승단 밖으로 추출해 냄으로써 청정한 승가를 다시 회복하는 것"임에도 "불행하게도 현대한국불교사에서 있었던 승단정화 운동은 그 출발은 타당하였으나, '태고종'이라는 별도의 종파로 분열함으로 말미암아, '정화'에서 '분규'로 변질되었던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성스님은 불교정화 이후 현대 한국불교의 문제점으로 두드러져 휴유증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예로 종파의 난립을 들었다. 마성스님은 "오늘날 한국불교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인 종파 난립은 이러한 분규의 후유증"이라며 "이제 한국의 불교도 중에서 한국에 몇 개의 종파가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자고 나면 새로운 종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일사일종(一寺一宗)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같은 휴유증을 불교계 내부에서 치유할 힘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라고 보고 있다. 과거의 정화가 미봉책으로 일단락되었다면, 새로운 불교정화가 필요한 시점인데, 한국불교는 그 추진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승단정화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승단정화는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불교 승단을 재정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준의 법에 따라 공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다. 자체적으로는 난립되어 있는 종파를 통폐합시킬 권한을 가진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비구승단도 내부적으로 자체 정화를 실시할 수 있는 자정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화를 주도할 청정한 세력이 부족하고, 만일 그들이 주도하여 정화를 추진한다고 할지라도 이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문은 비법비율이 판치는 한국불교 승단 전체에 대한 안타까움의 토로로 마무리했다.

"불교계 자체 내에서 자정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정화를 주도할 특정 세력이 없는 한, 한국불교 승단 전체에 대한 정화는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물질주의가 승단 깊숙이 파고들어 비법, 비율이 판을 치고 있어도 그 누구도 나서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한국불교 승단은 붓다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수행공동체 승가의 본래 모습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이러한 승단 내부의 부패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까. 이날 범어사에서 열린 세미나의 주제는  동산스님의 불교정화 정신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계승할까였다.

'승려의 취처가 한국불교를 파멸의 길로 내모는 원인'이라 지적하고 건백서를 조선총독부에 두차례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취처의 풍토가 불교 전반에 만연하자 청정승단 유지를 선언하며 대각교를 세운 용성스님, 용성스님의 제자로 청정선풍의 불씨를 되살리고자 정진했던 동산스님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 아닐까. 요컨데, 정화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신혁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Purificator 2007-05-14 17:37:56

    정화라고 하고 말은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부처님 법과 부처님 율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다 잘 압니다.
    빨리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외부 세력, 그것도 정치 권력 뿐만 아니라 폭력배 심지어 거지왕 김춘삼의 힘까지
    빌렸던 것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史實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화를 주도했던 분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은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남겨진 교훈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 은사 스님, 우리 노스님이 한 일이니까 무조건 옳았다"고 하면서
    정화의 이유가 되었던 대처[은처] 문제가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는 데 대해서는,
    아니 더욱 악화된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서야
    정화 주역의 후손들이 큰 절을 차지하는 데에 쓰이는 것 말고는
    정화라는 말이 무색할 뿐이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이다.
    앞으로도 '정화를 빌미로 한 분규'의 가능성은 항상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모처럼 용기를 내서 一喝을 한 마성스님께 감사 박수를 보내드린다.

    불교사를 하는 학자들도
    적당한 말솜씨로 정화 주역들을 찬양하여
    후손에게서 연구비 받는 재미에 빠지지 말고
    용기를 내 진실한 역사 연구를 하길 당부한다.   삭제

    • rladlstn 2007-05-14 12:15:15

      통합종단은 國家再建최고會議의 작품


      박정희 육군소장은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을 일으켰다.
      군사혁명 주역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결성했다.
      군인들이 만든 국가재건최의는 입법,사법,행정을 통합한 무소불위의 초법적인 국가기구였다.

      국가재건최고회는 1962년에 불교재산을 국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이 법이 소위 <불교재산관리법>이다.
      불교재산관리법을 제정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명실상부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불교재산의 망실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적법한 불교재산을 적법하게 지키기 위해서, 혁명세력에 의한 국가 재건 차원에서 특별한 기구와 조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불교재산을 불교재산관리법에 의존해서 적법하게 보존 유지할 자격을 갖춘 기구와 관리인이 필요했다.
      이 때에 등장가 기구가 <통합종단>이다. 따라서 1962년에 출범한 <통합종단>은 종교적인 이념이나 신의를 기반으로한 자육적이며 생명력 있는 기구라고 볼 수 없다.
      통합종단은 타율적인 강권(정부의 강력한 권한)에 의해서 불교재산의 망실을 막기 위한 타율적인 교단으로 출범했기 때문이다.

      1962년 통합종단이 결성되는 과정을 자제하게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들어난다.
      불교재산관리법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했으며,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한 불교재산관리자는 통합종단의 추천을 받은 인사(비구와 대처를 구별하지 않음)로 하되 정부의 감독과 관리하에 두도록 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062년에 출범한 <통합종단>의 창립주최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이고, 그 목적은 불교재산의 망실 예방에 있다.
      불교의 교리 전파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통합종단은 비구승이나 대처승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통합종단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만든 기구로서, 문자그대로 불교재산관리에 그 목적이 있다.

      마성스님의 주장은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통합종단(이름하여 조계종)은 불교정화운동이나 불교개혁운동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불교정화운동이나 불교개혁운동의 주최는 불교교단의 수행자들이었다.
      통합종단의 주최는 국가재건최고회의였다.
      주최가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불교정화운동과 연관성이 없다.
      비구와 대처의 타협도 아니다.
      국가 권력기구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다.
      다만 그 일이 불교재산관리법이라고 하는 적법한 절차법의 준용이라고 하는 허울을 썼을 뿐이다.   삭제

      • dufflsaka 2007-05-12 08:31:37

        조계종은 불교재산관리자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

        1962년에 만들어진 교단은 종교적인 이념이나 자주적 의지를 상실한 교단으로 탈바꿈했다.
        왜냐하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한 불교재산관리법에 의존해서 교단이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 교단의 성격은 불교정화운동은 물론이며 백용성스님이나 하동산스님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정부당국의 힘에 의해서 통합종단이 탄생된 후, 정부로부터 후원을 받게된 통합종단 주역들과 정부당국은 불교재산관리자를 모집했다.
        교단의 행정책임자가 주지 발령을 내면, 실질적 불교재산관리권자인 행정소임자가 인가를 해 주었다.

        예를 들어서 A라는 사람이 해인사 주지직을 따내려면, 일차적으로 교단의 대표자를 찾아가서 주지 임명장을 얻는다.
        교단 대표자로부터 해인사 주지 임명장을 받아 든 A는 해인사 불교재산을 관장하고 있는 합천군수를 찾아가서 해인사의 불교재산관리를 맡겠다는 청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합천군수는 교단에서 발급해준 해인사 주지 임명장과 A가 작성한 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 결격사유가 없는 자에 한해서 재산관리자로 상부 기관에 품신을 하게 된다.
        열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후 합천군수로부터 해인사 재산관리자로 선정이 되었다는 전갈을 받게 되면, 그때서야 해인사 주지로 진산식을 갖는다.

        해인사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사찰의 주지직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처서 실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처 구성된 교단이 조계종이다.
        따라서 오늘의 조계종은 겉만 조계종이지 안은 빈 껍질이다.
        이와 같은 교단에 무슨 정통성이 존재할 것이며, 무슨 불교적인 이념이 있을 것인가.

        솔직하게 말한다면 문화관광부, 문화재관리청, 건설부, 국립공원관리공단, 교단에서 선임한 불교재산관리자(주지직을 맡은 승려)들이 뜻을 모아 세운 합자회사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하나의 단체일 뿐이다.

        오늘 현재도 선암사의 불교재산관리권은 승주군수에게 있다.
        봉원사의 재산도 역시 관할 구청장의 손에 있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조계종과 태고종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고사찰이기 때문이다.   삭제

        • yeollnmam 2007-05-11 22:38:36

          정화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정화는 무슨 정화!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비구승과 대처승이 망라된 50인의 승려를 가려뽑은 후 이들 승려를 중심으로 중앙종회를 구성한 다음, 종헌과 종법을 제정했다. 그런 연후에 이 중앙종회에서 제정된 종헌 조업에 의거해서 통합종단이라는 이상한 교단을 탄생시켰다. 따라서 1962년에 탄생된 교단은 1954년이후 진행된 불교정화운동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더더구나 비구승과 대처승과의 타협의 산물도 아니다.

          1962년에 탄생된 통합교단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작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삭제

          • 어이할까? 2007-05-11 06:03:38

            부처님 가르침에 맞지 않는 대처승들을 몰아내고자 한 정화의지까지는 좋았지만,
            힘과 힘으로서 맞대결하고자 깡패들을 불러들여 개혁정화를 한 과보로 오늘날
            조계종은 비참한 과보를 받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거의 모든 권력과 이권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는 깡패승려들이 뒷판에 앉아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가장 큰 종단과 모범적인 종단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와 비불교적인 행태가 끝어지지 않고 있는 오늘날의 조계종현실이 바로
            그 과보니...

            결국 부처님의 인과응보의 가르침을 인용하지 않더라고 서양의 속담처럼 칼로 일어선자는 칼로 망한다라는 말대로 깡패로 일어난 조계종 깡패승려들 때문에 망해가고 있다. 더 이상 자정능력도 상실했고 어떻게 해 볼수가 없다.

            마치 과거 친일파들이 오늘날까지 각기 각소의 큰 권력과 이권의 자리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오늘날 올바른 승려와 불제자들이 걸어가야할 길은 무얼까? 결국 자신이 위치한 분상에서 그저 묵묵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을 해 나가면서 무엇이 바른 가르침인가 인연따라 오는 불자님들 스님들에게 전법을 해나가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삭제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