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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율에 근거해 승(僧)-비승 갈라놓기 

   
최근 민족사에서 나온 책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사사키 시즈카 지음, 원영 옮김) 는 석가모니가 살았던 당시의 교단과 수행자들의 모습, 그러니까 불교의 원형(原型)을 복원한 작업이다. 이 작업을 위해 저자 사사키 시즈카(일본 하나조노대학 교수)는 율(律)에 의지했다. 율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이 갖는 현재적 의미는 크다.

이 책의 의도는 불교라고 통칭되는 것들을 불교인 것과 불교 아닌 것들로 구분 짓는 데 있다. 더 구체적으로 승단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가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의 불교, 원형의 승단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저자도 이런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다양한 불교집단 속에서 석가모니 이후의 교단 형태를 잇고 있는 진정한 교단은 어떠한 것인가.…그 교단이 정말로 석가모니가 만든 불교교단의 후예인지, 아니면 현대 불교의 다양성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서 만들어낸 사이비 교단인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석가모니 교단의 참 모습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20-21p.)

이 책은 빨리어 율장을 자료로 석가모니시대 및 그 후 수백 년간에 걸쳐 인도불교교단의 현실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승단 생활의 이념과 당시의 모습을 ‘불교 승단의 성립과 구성’ ‘율장’ ‘출가의식’ ‘차법(遮法)’ ‘승단의 시설’ ‘일상생활’ ‘승단과 일반사회와의 관계’ ‘승단의 교육제도’ ‘불교 승단과 여성’ 등으로 나눠 제시하고 있다.

석가모니시대 승단은 네 가지 생활원리(四依)에 의해 운영됐다. 버려진 해진 천을 모아 꿰매 만든 옷을 입는 분소의(糞掃衣), 탁발해서 얻은 음식으로 생활하는 걸식(乞食), 나무 아래에서 생활하는 수하주(樹下住), 소의 변으로 만든 약을 쓰는 진기약(陳棄藥)이 그것이다.

당시 승단은 또 일반사회와는 운영원리가 다른 ‘섬’ 같은 존재였지만, 물질적 기반을 사회에 의지함으로써 유지되었다. 율도 사회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제정되었다. “율 규칙은 결정코 비구 개인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 불교집단이 일반사회와의 사이에서 마찰을 빚지 않고 평온하게 수행의 장을 유지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305p.)

현재를 사는 승단이 2500년 전의 석가모니시대의 생활원리대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율의 제정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제정되었듯, 오늘의 사회가 요구하는 불교와 승단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며, 그 해답을 찾는 도구는 수행자들의 삶과 승단을 유지해주고 수행자의 삶을 규율했던 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의식이다.

특히 저자의 다음과 진술에 동의한다거나 또는 불편해한다면 이 책을 일독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설령 승단이 자활집단이 되었어도 율만 착실하게 지키고 있으면, 사회 상식에서 일탈할 위험은 없다. 하지만 그 같은 상황에서 일단 율 규제가 풀어지게 되면 석가모니의 이상과는 닮았어도 결코 닮지 않은 기묘한 종교집단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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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뭣고 2007-06-11 14:36:57

    머리를 깍고. 법복을 입고의, 율을 지키고의, 기준이 아니라,
    집을 떠났나 못떠났나의 관점에서 기준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합니다.
    진정한 출가정신이지요.   삭제

    • rkafhtk 2007-06-08 14:27:29

      조계종은 합자회사


      부처님 재세시의 승가의 율에 비추어 보면,
      오늘의 조계종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1962년에 출범한 조계종의 창종주는 국가재건최고회의요, 산파는 불교재산관리법이며, 그 아륻이 바로 조계종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새로운 법을 제정한 후, 불교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교역직(승려)을 선발하여 당해 사찰의 관할 군수가 인준했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교역직을 행정관서의 장인 군수가 인준함으로써 불교재산의 망실을 막고자 했다. 왜정시대와 다름 없었다.
      따라서 오늘의 조계종은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한 불교재산관리자들(교역직 승려)이 모여서 만든 교단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조계종의 종명을 보면, 조계종이 얼마나 허상의 교단인지 분명하게 나타난다.
      조계(曹溪)는 초기선종의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주석했던 산의 명칭이다.
      무엇 때문에 당나라의 산명(山名)을 빌어다가 한국불교 교단의 명칭으로 삼았는지 알 수 없다.
      한국에는 그만한 명산이 없다는 뜻인가?
      그야말로 사대주의의 본보기가 아닌가?

      그리고, 조계산의 혜능(慧能:638~713)은 그의 사형인 신수(神秀:606~706)의 문하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혜능은 작문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천하의 대문장인 신수의 앞에 나서지도 못했다.
      신수는 측천무후의 초청으로 장안에 들어가 황족을 대상으로 법문을 할 정도의 거인이었다.
      그러한 신수에 비하면 혜능은 하잘것 없는 절집의 머슴이었다.

      조계종은 그 많고 많은 선사들 가운데 무식한 혜능을 들춰 업었다.
      7세기경, 당조(唐朝)의 혜능을 들춰 업고 보니, 신라 시대의 원효스님이나 의상스님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당나라의 혜능이 살았던 산명을 등에 업고, 고려 말기의 태고보우를 또 등에 업었다.
      이거야말로 뒤죽박죽이다.
      뜻도 없고, 이념도 없고, 지표도 없다.

      조계, 태고보우, 국가재건최고회의, 불재법에 의한 불교재산관리자로서의 교역자 그리고 문교부 당국자(시에는 문교부가 불교재산관리를 담당)들이 뒤엉켜서 교단을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오늘의 조계종은 되는 일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안 되는 일도 없다. 이념이 없는 세속주의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돈 놓고, 돈 먹기다.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다.
      이제는, 다음에 온 자가 먼저 먹은 선배의 배를 쪼개려고 든다.
      그러다보니,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수법은 악날해지고, 인심은 흉흉해 진다.

      이렇게 되면, 합명회사나 주식회사만도 못하다.   삭제

      • 글쎄.. 2007-06-07 00:02:33

        주식회사 조계종의 교역직 직원으로 취업하여
        종회의원이나 본사주지로 승진하거나
        사설사암 주지나 회주가 되기위해
        기를쓰고 경쟁하는걸로 변질되었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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