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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로 가는 길 [천상고원] 제작기
출처 : 필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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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 한선희 기자

김응수 감독이 티벳 남부 히말라야 고원지대를 여행하며 찍은 <천상고원>은 제작과정과 영화의 형식 모두 실험적인 작품이다. 허구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이 영화는 단 네 명의 스탭이 여행객을 가장해 게릴라 전법으로 찍었다. 과거 여행의 추억에서 우연히 시작해 고통의 길을 지나 삶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 많았던 김응수 감독의 사연을 들어보자.

한 여성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천상고원>의 도입부는 다소 관념적이고 몽환적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여성은 한때 연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K라는 남자에게 이별을 고한 뒤 먼 길을 떠난다. 꿈꾸듯 절망적인 그녀의 내레이션 위로 보이는 것은 카메라를 따라 천천히 유려하게 흐르는 길이다. 새벽녘 아스라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 길은 마치 축축한 이끼 같은 암록색 기운으로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피워놓은 듯한 희뿌연 안개가 다소 인위적인 느낌으로 이 길에 환상성을 더한다. 의도적으로 신비스럽고 차분하게 시작하는 <천상고원>은 이제 우리가 끝없이 펼쳐지는 어떤 ‘길’의 표정을 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자아의 성장이나 통과의례 따위를 보장하는 안락한 자족의 길은 아니다. 해발 5천 미터 히말라야의 고원을 넘는 길, 극도의 고통을 겪은 뒤 체험하게 되는 해탈과 회생의 경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허구와 다큐멘터리의 혼합, 사진이 맺어준 인연

<천상고원>은 김응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다.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1996)로 데뷔한 그는 이제 10년차 영화감독이 돼 있다. 데뷔작에서 이념의 시대를 통과한 뒤 모스크바에 체류하게 된 이들의 갈등을 그렸던 그는 이후 종잡을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보여왔다. HD영화 <욕망>(2002)에서는 불륜에 빠진 세 남녀의 위태로운 욕망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이어지는 <달려라 장미>(2006)에서는 결혼과 권태와 이혼이라는 남녀관계의 일상적인 메커니즘을 해부하는 황당한 코미디를 시도했다. 세 영화들의 간극이 너무 넓다는 지적에 대해 김응수 감독은 (2006년 2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왜 일관된 작품 톤을 끌고 가지 못하는가 하는 후회를 좀 했다”고 말하는 한편, 한국영화계를 “외형과 범주화 작업에 대단히 집착하는 곳”이라고 꼬집었다. 그것은 어떤 정형화된 작품세계에 머물지 않고 마음이 흐르는 대로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시도하겠다는 창작의지를 반영한 말이기도 했다.

김응수 감독이 엉뚱한 코미디 <달려라 장미> 이후에 갑자기 히말라야로 날아가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혼합된 <천상고원>을 만든 이유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로 화려하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찾아가기 위해 택하는 형식이라는, 무식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근데 철이 들면서 점차 영화의 틀을 한정시키고 관객들에게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대신 내가 영화를 대면하는 방식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니까 <천상고원>에서 난데없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도입한 것은, 영화 매체에 대한 고민과 자각에서 비롯된 셈이다. 김응수 감독은 지금까지 필모그래피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버리는 방법”을 택해왔고, 그것을 스스로 장점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봐주느냐보다는 지금 내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순간에 내가 사회와 맞부딪치는 문제들을 어떤 영화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라는 과제와 모험에 도전하는 게 더 재미있다.”

하지만 <천상고원>은 완전한 미지의 상태에서 무모하게 덤벼든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김응수 감독이 히말라야 땅을 처음으로 밟은 것은 2002년 7월. <욕망>을 끝내고, 월드컵의 열기도 가신 뒤,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 인도로 훌쩍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당시 나는 삶에 모험심이 없어진 것 같아서, 거친 곳으로 나 자신을 던져야겠다,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와 새로운 모험심이 생기지 않을까 했다. 이렇게 살아가지고는 깃발 따라 다니는 패키지 여행이나 다니게 되지 않을까, 그게 나에게는 경계해야 할 삶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인도는 생각보다 너무 더웠다. 그냥 집으로 돌아올까 궁리하던 그는 일단 북쪽으로 가면 시원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조건 차를 얻어 타고 북으로 향했다. 그때 차에 함께 탔던 익명의 사람들은 다들 같은 목적지를 이야기하며 수군거렸다. 그곳은 바로 인도 북부와 티베트의 남부가 만나는 고원지대인 라다크(Ladakh)였다. 김응수 감독은 “그렇다면 나도 한번”이라는 심정으로 라다크로 향하는 멀고도 높은 길에 발을 들였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그저 운명처럼, 우연하게 마음이 가는 대로 택한 행선지였다.

라다크. 행정구역상으로는 인도 잠무카슈미르 주(州)에 속하는, 히말라야 산맥의 북서단부에 위치한, 험악한 산세와 높은 고원으로 이뤄진 지역이다. 한때는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동서양을 오가는 이들이 머물다가는 번화한 곳이기도 했다. 종교적으로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권 아래 놓인 이 지역의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별 욕심이 없으며 자족적인 공동체를 이뤄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스웨덴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녹색평론사)라는 책은 라다크인들의 인성과 생활방식, 즉 자연에 순응하며 검소하고 건강하게 이웃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현대 물질문명의 폐단과 대안적인 삶의 유형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을 계기로 서방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라다크는 이제 모험심 강한 관광객들이 인도 델리에서 출발해 히말라야를 넘어 찾아가는 인기 여행지가 되었다.

하지만 라다크로 향하는 여정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김응수 감독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온 육체와 영혼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체험을 했다. 산소가 부족한 고원지역에 유난히 예민한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고산병 증세에 시달린 것이다. 눈앞에는 천혜의 절경이 장관을 이루며 펼쳐졌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연신 구토를 하며 “머릿속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마구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몇 날 며칠 계속됐다. 라다크의 수도 레(Leh)에 도착한 뒤 김응수 감독은 도저히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병원에서 일주일가량 쉬며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그때 <천상고원>의 모티브가 된 또 다른 계기를 만났다.

그것은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여행 당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던 그는 수소문으로 중고 필름카메라를 하나 구했다. 그리고는 시장, 학교, 버스정류장, 사원, 마을, 들판 등등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라다크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동아시아 남자에게 무심한 듯 친절하게 응해줬다. 그중에는 사진을 처음으로 찍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찍은 사진은 나중에 꼭 보내달라는 이들도 있었다. 김응수 감독은 고마운 그들에게 현상한 사진을 보내줄 요량으로 주소를 받아두었다. 그때 찍은 사진은 거의 필름으로만 열대여섯 통.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필름을 집안 어느 구석에 던져놓고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달려라 장미>를 끝내고 난 뒤, 집 정리를 하다가 그 필름들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뒤늦게 현상한 사진을 본 뒤 김응수 감독은 결심했다. 다시 한 번 라다크로 가서 사진 속 주인공들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길에 관한 영화, 극한의 고통에 이르다

시나리오는 세 장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사라졌고 그 사람이 사라진 이유를 찾기 위해 그가 간 길을 찾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관계에 대한 집착 같은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극적으로 드라마를 맞춰놓고 연기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 석 장도, 그냥 비행기를 탄다, 내려서 버스를 타고 간다, 하룻밤을 잔다, 그런 식이었다.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웃음)” 김응수 감독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애초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걸친 영화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던 만큼, 작위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천상고원>의 즉흥성은 시나리오뿐 아니라 제작과정 전체에 걸쳐 있었다. 스탭은 단 네 명뿐이었다. 연출과 주인공 K 역의 김응수 감독, 촬영의 박기웅 촬영감독, 조연출 겸 조연 태훈 역의 배우 이재원, 그리고 동시녹음을 맡은 김원 기사가 전부였다. “일단 라다크에 가보고 싶은 사람을 모으고, 지프에 탈 수 있는 인원을 정해두고 최소한으로 스탭을 꾸렸다. 돈도 돈이지만 기동성이 있어야 하는데, 스탭이 많아지면 차를 나눠서 타야 하고 불필요하게 번거로운 작업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장치나 부가적인 액세서리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현지 코디네이터를 두지도 않았다. “현지 외국인이 코디네이터가 될 텐데 일을 하는 방식이나 문화적인 차이 등 번거로운 일이 많을 것 같았다. 힘들더라도 내가 제작진행을 다 하고, 네 명이 똘똘 뭉쳐서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2005년 8월. 가장 경제적인 규모로 꾸려진 <천상고원>의 게릴라 제작진 네 명은 한 달 여정으로 인도를 향해 떠났다. 김응수 감독은 예전 여행의 궤적을 따르되, 쉬엄쉬엄 현지에 적응하고 천천히 히말라야를 넘어간다는 계획이었다. “우리의 전략은 관광객들로 위장하는 거였다.(웃음) 복잡해지는 걸 피해가는 거다. 괜히 폼 잡는다고 문제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장비도 카메라와 붐 마이크뿐이었다. 카메라 역시 기동성을 최대한 고려해 소니의 HVR-Z1을 택했다. “<욕망>에서 썼던 것 같은 HD카메라를 가져갈 수는 없었다. 기술적으로 화질을 고려하면 HD카메라로 찍어야겠지만, 기동성이 더 중요했다. 정식 출시가 되기도 전에 소니에 찾아가서 받은 카메라였는데, 중량이나 크기가 작은 편이라 이런 상황에서는 편리했다.” 촬영은 별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물으면 답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왔니?’ ‘응. 한국 지부에서 왔어’ ‘니네 뭐 찍니?’ ‘우린 여행객이야’ 이런 식이었다. 가다가 군부대 같은 게 보이면 멍청한 관광객인 척했다. ‘어 쏘리, 찍으면 안 돼? 노 카메라?’ 이러면서 샥 찍었다.(웃음)”

<천상고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연인을 찾아 떠난 K가 정체불명의 여행객 태훈과 만나 함께 고원을 넘으며 겪는 소소한 일을 담는다. 영화의 첫 장면은 현재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작은 마을인 다람살라에서 새벽에 찍었다. 그리고 티베트와 인도인들이 뒤섞여 있는 다소 번화한 시내의 풍경이 나타난다. 초반부 인도인들의 전통혼례 잔치풍경도 현장에서 발견하고 즉석에서 찍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이제 영화는 본격적으로 인적이 드문 황량한 벌판과 험준한 산세를 보여준다. 극중 K와 태훈은 현지 운전수가 모는 덜컹거리는 지프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먼발치를 응시하거나 간간이 대화를 나눈다. 허허벌판 초원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유목민적인 천막에서 밤을 보내기도 한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합쳐진 듯 장엄한 풍광과 자그마한 사람들을 줄곧 한 프레임 안에 잡아낸다.

<천상고원>의 또 다른 주인공은 길 그 자체다. 카메라는 라다크로 향하는 길의 다채롭게 변화하는 지세(地勢)를 집요하게 잡아낸다. 지프의 바퀴 즈음에 위치한 카메라는 뒤로 지나가는 길의 굉장한 속도감과 더불어 눈앞에 정지한 듯 펼쳐진 웅장한 자연을 동시에 포착한다. “그건 박기웅 감독이 목숨 걸고 찍었다.(웃음) 몸을 차창 밖으로 반쯤 내밀고 카메라를 밑으로 떨어뜨려 한 손으로 잡은 채 차는 전속력으로 달리도록 했다. 압도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싶은 풍경들이 눈에 보였다. 그 풍경이라는 게 험하면서도 평온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 병적인 상태와 건강한 상태, 이 구분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모순되는 감정을 가지고 조작하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론 촬영 당시에는 지금 영화에 편집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찍었다. 그러나 김응수 감독은 편집과정에서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이 지형들이 어떻게 말을 해나가는가, 길과 자연이 어떤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보다 더 이국적이고 아름답고 감각적인 쇼트는 많이 찍었다. 하지만 원칙에 벗어나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쇼트는 배제했다.”

해발 5천 미터 정도 되는 지점, “나무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극중 K는 실제로 구토를 하기 시작한다. 현장에서는 모든 스탭들이 고산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특히 K 역을 맡은 김응수 감독이 노란 위액을 다 쏟아내는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한다. 동행자인 태훈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받아 K에게 건네며 속을 달래준다. 이 지독한 구토는, 마치 과거의 삶에 대한 잡념과 증오와 집착과 원망 따위를 모두 깨끗하게 비워내는 듯한 정화의 효과를 선사한다. “고통스럽지만 시원했다. 실제로 내 몸의 지저분한 것들을 다 토해내서 깨끗해지는, 새로운 햇빛과 공기를 마시면서 처음부터 다시 회생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구토의 고통이 절정에 이른 지점에서, 극중 K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전환점이 상징하는 바는 명백하다. 결국 과거의 연인을 찾아 떠난 <천상고원>의 길은 자아와 대면하는 여정인 것이다.

순리를 따라 무심하게 사는 지혜

김응수 감독은 “영화를 찍는 과정이란 정말 운명적이고 우연적인 게 많다”고 말했다. 촬영과정 자체가 고행이었기 때문에 과연 영화가 제대로 완성될 수 있을지 여러 번 회의가 들었지만, 우연히도 여러 가지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극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가령 영화 초반부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히말라야로 향하는 대목에서 매우 인상적인 대중음악이 한 곡 흘러나온다. 김응수 감독은 여행 도중 어느 지프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이 곡을 꼭 영화에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운전기사에게 녹음된 테이프를 받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프를 옮겨 타면서 다른 이들에게 멜로디를 계속 들려주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시내에 나와서도 온갖 레코드 가게를 다니면서 수소문했지만 헛걸음만 계속했다. 그러다가 모든 여정을 마치고 떠나오기 직전 마지막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시장통에서 채소를 파는 청년이 카세트에 틀어놓은 바로 그 음악을 듣게 되었다. 청년이 알려준 가게에서 천신만고 끝에 얻은 그 음악은 티벳 최고의 인기가수인 ‘푸르부 남걀(Phurbu T. Namgyal)’이 부르는 ‘With You’라는 곡. 카세트테이프 재킷에 쓰여 있는 이메일을 통해 그 가수에게 연락을 취해 음악의 사용권을 얻어냈다고.

어쩌면 <천상고원>을 만들게 된 모든 계기와 과정이 우연이자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영화의 후반부는 K가 레에 도착해 사진 속의 인물들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행의 애초 목적은 증발되고 전혀 다른 상황이 등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여행을 떠나기 전 여러 고민들이 있었다. 영화는 잘 될까, 나는 이제 퇴출당하는 걸까, 영화를 못 찍게 된다면 뭘 하지, 등등. 하지만 여행길에서 사람이 순수한 알맹이만 남고 그런 잡념은 사라지게 되더라.” 그러니 뒷부분의 이야기는 과거와 느슨하게 연결돼 있으면서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김응수 감독이 3년 전에 카메라에 담았던 그 사람들을 찾아가 사진을 돌려주는 과정은 그 자체로 완결적이다. 오밀조밀하게 지어진 독특한 가옥이 늘어서 있는 마을, 장난꾸러기들이 왁자하게 몰려드는 학교, 생활과 구도를 자연스럽게 병행하는 승려들이 살고 있는 절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실제상황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김응수 감독은 라다크 사람들의 특이한 인성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난 그들이 극적으로 좋아할 줄 알았다. 우리는 남들이 보는 시선에 익숙해 있으므로 제스처나 과장에 익숙하잖나. 한데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진을 줘도 덤덤, 안 줘도 덤덤, 호들갑이 없다. 나름의 방식 안에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단히 윤택하고 자부심 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왜 그런지는 여행에서 돌아와 <오래된 미래>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김응수 감독이 <천상고원>의 여정에서 깨닫게 된 삶의 지혜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영화 매체에 대한 열린 태도로 마음이 닿는 대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창작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그것은 관객인 우리가 ‘라다크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이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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