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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한국불교의 포교-중국과 네팔의 경우를 돌아보며

느닷없이 네팔 카트만두에 와서 이 글을 쓴다.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한국의 사단법인 ‘함께하는사람들’과 결합되어 있는 ‘Bodhi Won Foundation-Nepal'의 현장에서 자원활동가로 1년 동안 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입국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았지만, 오자바람으로 해발 2000m의 나가르곳으로 일출 맞이를 갔다. 구름에 가려 해뜨기 장관은 보지 못했지만, 하늘 아래 첫동네에서 1박하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잇달아 룸비니를 3박 4일 동안 다녀왔다. 빨리 현지에 적응하고, 또 부처님 탄생지부터 보고 일을 시작해야 될 것 같아 혼자서 훌렁 떠나보았다. 마음 한편으로 숙제가 있었다. 네팔을 가까이 느껴보고 또 불자로 살아왔지만 본래 면목을 알 수 없는 내 자신도 돌아보고… 기실은 헐헐 떠나옴도 아니었다. 온갖 일들을 스스로 지고, 제값하지 못한 부끄러움도 벗고 싶은, 이런 짐도 있었다.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룸비니에서 국제사원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부처님 탄생지에서 포교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 카필라성의 유적 등 허물어지다시피한 과거 속에 부처님의 발자취를 미처 헤아리기 전에 위용을 자랑하는 듯한 각국의 대형 사원을 보았다. 과거와 현재의 극명한 대비 속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야말로 적멸이었다.

룸비니는 1896년 현장의 「대당서역기」를 토대로 독일 고고학자 휴러가 아쇼카 왕의 돌기둥을 발견한 뒤로 발굴이 계속되어, 1970년에는 룸비니 개발을 위한 국제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85년 룸비니개발공단(LDT)이 발족되어 현재 그 계획에 따라 각국 사원이 아직도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룸비니는 지평선에서 해가 뜨고 지는 대평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은 벌써 누렇게 익어있었고, 더러 수확한 빈 밭도 보였다. 아주 오랜 농촌모습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 것 같은 마을들을 볼 수 있었다. 부처님이 구도의 길을 가게 되는 첫 계기가 ‘농경제’였음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고통이자 삶의 터전인 농업이 지금여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기에 거대한 한국사원을 짓고 있는가.
10년을 넘게, 법신스님은 그 큰 집을 온 몸을 던져 짓고 있으면서도 그곳을 찾는 모든 순례자와 여행자들에게 한결 같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선지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법신스님의 원력에 고개를 숙였다.

아울러 나는 탄생지가 있는 이땅 사람들을 포함해서 한국사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부처님 탄생지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마야 템플’은 아주 담백하게 건축해서 가식이 없었다. 룸비니 동산의 축복을 일깨워주는 듯, 정원은 온갖 꽃들로 장엄하였지만, 마야 템플의 바로 옆에 있는 네팔 사원, 티벳트 사원 역시 아담하고 고요했다. 이런 성스러움에도 홀릴 일이 아니리라.

네팔 속의 룸비니를 돌아보며 순례와 포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문득 한국 기독계의 세계 선교를 떠올렸다.
한국 기독교계는 바야흐로 세계선교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기독교계는 불교국가도 말할 것 없고, 외국인의 종교 전파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권이나 중국에서도 선교활동을 금기시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에서 기독교계의 활동은 북한과 접경한 지역 특성을 활용해 한반도 미래를 대비하는 아주 중요한 포석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북-중 접경지역 조사로 중국을 돌아보며 종교계의 교류가 문화교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괄목할 만한 기독교계의 활약을 보면서, 불교계의 방일함(?)을 아쉽게 생각하고 몇몇 지인들에게나 심정을 털어놓았다. 

한국불교는 세계 포교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고, 있다하더라도 방법과 방향을 정확히 잡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최근에 중국 항주 고려사의 문제를 접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한번 짚어보고 싶었다.

불교역사를 더듬어 시공을 함께 하는 순례는 신심을 돈독하게 하는 기쁨이 있다. 룸비니에서 느낀 부처님 가르침은 먼 서역에서의, 또 가마득히 먼 옛날에 있었던 말씀이 아니었다. 더러는 관념적으로 이해했던 불교가 달리 설명이 없어도 바로 생생한 부처님의 채취로 느껴지듯이, 거기 앉아만 있어도 희열이 솟구친다. 국경을 넘어 한국 절을 만들고 싶은 첫째 이유는 그와 같은 데 있을 것이다.

항주 고려사는 북송시기 고려 왕자 대각국사 의천스님의 구법처였다. 한국 천태종에서 단양 구인사-개성 영통사-항주 고려사-천태산 국청사를 잇는 역사적 전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항주 고려사를 후원을 하였다는데, 이에 대응해 조계종단의 조계사가 고려사를 위탁경영함으로써 한-중 불교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고자 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불사가 성공했다면 절강성 절경을 찾아간 관광객들을 포교하는 일에도 한몫했을 것이다.

또 중국에서 종교활동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곧 한국 교민 100만 시대를 바라보고 별로 준비 없는 불교계에 과거 ‘신라방’ 같은 터전을 마련하는 기회도 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불사가 여의치 않게 왜 벽에 부딪힌 것일까. 사실 나는 그 내막을 정확히 모른다. 아주 근본적인 문제로 짚어보면, 우리가 절을 해외에 지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잘못 잡고 있지 않은가 한다.

과거의 흔적을 복원하거나 거기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부처님의 출가 동기를 생각한다면, 그 땅의 모순을 발견하는 일로부터 불사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팔 룸비니는 예나 지금이나 그 땅은 농업으로 먹고 살고 있는데, 대물림하는 가난은 계급, 인종, 종교, 국경 등 국내외 정치적 이해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그런 편견을 깨는 일로 가르침의 근본을 삼았다. ‘의미심장하게도’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4대 성지는 인도와 네팔 사이 국경으로 나눠져 있다. 부처님은 예나 지금이나 국경을 초월해 계신데, 인간은 그마저 이해관계로 나누고 더 차지하려고 싸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불교가 네팔로 가고자 한다면, 거기 농업적 기반과 관련한 문제들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직접적인 종교 활동과 무관할 것 같지만, 그곳과 관계를 맺는 불교문화는 그런 삶의 기반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곳 고통의 의미를 정확히 보지 않는 불교는 '사성제'를 구현할 수 없을 것이고, 십중팔구 성지순례 여행상품으로 떨어질 것이다.  

네팔에서 가난이 총체적인 사회 문제와 다름이 없듯이, 중국 속의 한국불교가 나아갈 길에서 부딪히는 문제도 역시 인간 욕망의 국제관계 속에 놓여있다. 부처님이 국경과 인종과 계급을 넘어선 평화를 구한 것처럼, 세계가 지구촌이 된 시대에 불교가 국제 포교에 나서는 이유는 끝없는 분쟁이 있는 땅을 평화롭게 하고자 함에 있다.

다시 말해 이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평화의 문화를 지구촌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데 가장 앞장서 깨어있어야 할 종교가 불교이다. 이런 각성 속에서 중국 속으로 가는 불교는 한반도가 안고 있는 갈등의 문제부터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일일이 기독계의 괄목할 만한 활동을 말하지 않겠지만, 우리 불교계도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관건이 무엇인지 눈뜨고 있어야 한다. 중국은 놀라운 힘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다른 강대국의 자국중심 편견과 다를 바 없이 중화주의에 사로잡혀 진정한 평화공존의 문화를 무시하는 면이 많다. 사실 한반도 분단 이면에는 '6자회담'이란 관계가 말해주듯이, 그 아래 기층 민중들의 고통에 아랑곳없이, 세계 강국들의 이해가 미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종교의 역할은 평화문제에 대한 밑으로부터 각성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연변에 가면 한반도의 모순을 말해주는 기형적 공존이 있다. 한국교민, 조선족, 한족, 탈북자, 북한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각각 살아가고 있다. 또한 열강들의 양보할 수 없는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여기는 생활전선의 이해에 따라 살아가기 급급한 현실을 넘어, 민족과 국가를 넘어, 그 어느 곳보다 평화공존의 문화가 절실하다. 그래서 더욱더 깨어있는 자의 지혜가 필요한 땅이다.

평화공존의 미래 문화는 국경을 초월한 교류가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와 버린 우리 현실이 요구하는 바다. 한-중 종교교류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항주 고려사 경우 역시 시야를 넓혀 국제포교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돌려 문제를 풀어봐야 할 것이다.

요컨대, 국제포교는 사원을 확보하는 일보다 평화문화사상의 원류를 일구는 일이면서, 이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요구한다. 기독교계가 국제 NGOs를 통해 자원활동으로 일구는 평화의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실천과 수행이 겸비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포교의 장을 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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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보영 2008-04-15 23:27:46

    선생님 어쩜 이리 편안해 보이세요. 네팔이 잘 맞으신가 봅니다.
    룸비니의 대성석가사는 여전한지요. 제가 다녀왔을 때는 한참 준공중이라
    스님이 직접 여기저기 직접 다니시면서 손보고 그러셨는데요.
    그 곳 평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각국의 절을 다 볼 수 있어서 재밌었던 룸비니에 다녀오셨네요. 저는 무척 그립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무척 그립습니다.   삭제

    • 이금현 2008-04-14 16:25:01

      잘 도착하셧단 소리 듣고 반가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참다운 라이프 맾을 잘 찿으시리라 믿습니다.그리고 17일이 아니고 24일 라젠 구릉 편에 부탁하신것 보냅니다.   삭제

      • 법현 2008-04-10 23:13:42

        모습이 바뀌면..내용도 바뀐다는데....세로운 모습으로 우뚝하게 다가오소서..잘 보시고 들으시고 맡으시고 말하소서///   삭제

        • 향산이병두 2008-04-09 20:12:06

          소식 반갑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앞으로도 종종 좋은 소식 전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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