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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는 그리스인이 없었다

경기대학교·한국사

어떤 지역에 한번 가보았다고 해서 그 지역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다보니 그러한 기막힌 사연에 억매이고 말았다. 바로 2년전에 다녀 온 그리스가 그러한 경우이다. 이번에 ‘나의 그리스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하고 보니 어딘가 낯설은 느낌이드는 것은 왠 까닭일까? 그러나 그런대로 나름대로의 잘못된 상식이나 왜곡된 지식들을 되새김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위안을 하면서 그리스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리스는 그리스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이다. 마치 외국인들이 루리를 '코리아', '꼬레', '꼬레아' 등으 로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헬라스(hellas)라고 한다. 엘라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을 칭했던 ‘헬레네스’에서 유래한다. 헬레네스는 프로메테우스와 클뤼메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딸인 퓌라 사리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헬렌의 아버지 데우칼리온과 어머니 퓌라는 제우스가 사악해진 인간을 벌하러 홍수를 일으키자 프로메테우스의 충고에 따라 배를 만들어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들이었다고 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이 신화의 주인공들 가운데 그리스인들은 바로 헬렌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그리스인이고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래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아카이아인’라고 하였다. 지금은 코린트 만 남쪽에 있는 그리스의 한 주 이름이지만 미케네시대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전역을 아카이아라고 불렀다. 그런데 기원전 200년 경 로마가 그리스 도시들을 정복한 뒤 ‘노예’란 의미의 ‘그리크’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 그리스라는 국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 뒤 그리스를 지배하게된 터키에서도 경멸의 뜻을 담아 그리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16-7세기 스페인 미술의 거장으로 알려진 크레타 출신의 화가 엘 그레코도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인이라는 별명이 이름으로 된 것이다. 그레코는 자신의 몸속에 그리스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고, 그런 그를 사람들은 엘 그레코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스란 말이 대그리스라는 뜻의‘마그나 그라이키아’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로마인들이 남부 이탈리아에 널리 퍼져 살던 그리스의 보이오티아 출신 사람들을‘그라이키아인’이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그리스 사람들이 살던 지역까지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자신들을 비하하는 뜻이 담긴 국명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코리아’에서 고구려 계승의 의미를 찾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컨대 나는 하다고 코린트인, 아테네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도시국가의 전통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세계사적 영웅인 알렉산드로스의 자취는 아테네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우리가 광개토왕, 이순신 장군 하면 전국 어디에서나 존경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서가 다르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등 아테네인의 도시이자 국가다.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스는 데살로니키나 마케도니아에서 그 흔적을 찾아야 한다. 어찌보면 지독하게 편협한 지역주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한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고도 할 수 있겠다. 하긴 일본에서도 자신들의 나라가 일본이 아니라 히로시마, 구마모도와 같이 지역 공동체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와는 차이가 있는 역사적 인식이라고 할만하다.

그래서인지 그리스의 공식국명은 '엘리니키 디모크라티아(Elliniki Dimokratia)'이다. 엘렌(헬렌) 민주공화국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를 헬라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지만, 국제적인 국명이 그리스이니 그렇게 부르게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에는 그리스인이 없었다. 오직 헬라인만이 있었던 것이다.

여행에 대하여 갖게 되는 우리의 의미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현지에서 그들의 삶의 모습을 직접 체험하면서 함께 의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학습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나의 그리스여행’은 어쩌면 영원히 바뀌지 않을 수도 있었던 나의 왜곡되고 편협한 세계사에 대한 시각을 근본부터 달리 생각하게 한 뜻 깊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출처=시민모임 두레 소식지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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