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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와 만남 / 노귀남네팔에서 보내는 편지

그럭저럭 살아온 나를 해부한다. 해부도는 티베트불교이다. 한국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노력하고 있는 터지만, 나는 티베트 불교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네팔에 와서 중암스님을 만나면서 인연 닿은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중암스님은 티베트불교를 공부하고 번역을 시작한 지 오래 되었는데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스님은 티베트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자(死者)의 서(書)>를 직접 번역했고, <까말라씰라의 수습차제 연구>(불교시대사, 2006)를 냈다. 달라이 라마와 인연이 깊은 청전스님은 총카파의 저술 <람림체모>를 <깨달음에 이르는 길, 람림>(지영사, 2005)이라 해서 번역했다.

이런 책들을 아직 소화하지 못한 채, 티베트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면서,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분별이 일어나는 나를 본다.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는 <람림체모>의 번역서에 대한 추천사에서 분별심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평화와 행복을 잠식하는 ‘자아에 관한 오해’ 및 ‘자기중심적 태도’에 시달려왔고, 부처님은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의 상태로 나아가는 방법을 명쾌하게 가르쳤다고 했다. 이 짧은 말씀에서 자기 시달림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로 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드러난다.

무지와 오해와 에고의 집착은 불통을 낳는다. 인간 사이의 벽, 자아와 타자의 막힘이 ‘말이 안 되는’ 비난과 욕이 된다. 욕이 차고 기가 막히는 부끄러움이 결국은 염리심(厭離心)이자 평화의 갈망이 되리! 
가장 인간적인 문제들로 절박할 때 궁극의 길을 찾게 된다는 생각을 했다.

티베트 불교는 티쏭데짼 왕이 쌈예사를 건립(775-787년)함으로써 탄탄한 기초가 섰다. 인도의 두 스승 쌴따락시따(寂護)와 빠드마쌈바바(蓮花生)가 큰 역할을 했는데, 그들이 인도로 돌아가려고 하자, 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영원히 티베트에 머물도록 청하는 시문을 지어 올렸다.

          일월과 같이 한 쌍이신 두 존자는 살피옵소서.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부왕을 사별한
          붉은 얼굴의 나라의 왕은 교만하지 않으며,
          열다섯에 국정과 대군을 통솔하고
          대소사를 대신들에게 맡기고,
          열일곱에 숭불의 서원을 일으켜서
          보디싸따(寂護)를 모시라는 점성가의 말에 따라
          복분이 엷지 않은 탓에 친교사가 왕림하였으며,
          지신제를 지냈으나 흉신이 방해하자
          빠드마쌈바바(蓮花生)을 모시라는 권유에 의해서
          연분이 적지 않은 탓에 아사리께서 친림하셨다.
          쌈예사는 천신들의 작품인 듯
          나는 그 큰 은덕을 영원히 잊지 못하네.
          나 티쏭데짼 왕이 이 세상에 존재할 때까지
          두 존자께서는 떠나지 마시고 머무옵소서.
          佛身의 상징인 가람은 건립하였으나
          佛語의 상징인 교법은 수립하지 못하였으니
          顯密의 교법을 널리 설하여 주소서.
          무명의 어둠을 씻고 티베트의 새 길을 여는
          현밀의 법등을 크게 밝혀 주소서.

이 간절한 청을 두 존자가 받아들여 티베트인 출가자 교단이 만들어졌다. 이 글의 앞뒤를 읽으면서 그 서원이 세세생생 이어졌던 설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닭치는 어머니의 아들 4형제가 자룽카쑈르대탑(현재 카트만두의 보드나트의 황금대탑)을 건립한 뒤 변방의 설원 땅 티베트를 교화하기 위해 각자 국왕, 율사, 진언사, 대신으로 태어나는 서원을 했는데, 그들이 바로 티쏭데짼 왕, 쌴따락시따, 빠드마쌈바바, 바쌜낭이었다.
쌴따락시따를 티베트에 모신 신하가 바쌜낭이고, 그 전에 이런 인연을 만든 사람은 쌍씨이다. 쌍씨는 중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갔던 사신으로 성도 정중사에서 신라의 왕자였던 김무상 화상(680-756)을 만나서 티베트불교의 건립 방안에 대한 지침을 받아 돌아왔다.
무상 화상의 예언에 따라 때를 기다리고, 스승들을 모실 수 있었기 때문에 잔인한 희생제를 하는 토착종교 뵌교가 정치와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펴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무명을 씻고 현밀의 법등을 밝히고자 한 간절한 서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던가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이, 탄트라 밀교를 오해했다. 특히 겔룩파를 연 총카파는 현교에 철저히 바탕을 둔 계율을 엄격히 하면서 밀교의 수행법을 가르쳤다.

이런 맥락을 개관하면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공성의 터득과 함께 깨달음 즉 보리심의 각성에 따른 이타적 갈망을 개발하는 것이다. 늘 들어왔던 반야와 자비지만, 그 길을 향한 훈련 없이, 나는 변명과 장애와 번뇌에 막혀 니르바나의 길과 멀리 떨어져 헤매고 있다. 더 분명하게는 내가 그 길에서 멀리 있기에, 불통의 고통 속에서 욕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티베트의 불상에서 흔히 보는 다끼니와의 합체존의 상징은 불통, 불화의 욕에서 평화를 희원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로부터 해탈을 말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심동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인간사 일상에서 코드가 딱 맞는 경우는 거의 없고, 외따로 에고의 길로 고집불통으로 간다. 이 불통, 자타 분리에서 오는 갈등, 그것이 욕이며, 그 슬픔을 넘어서는 것, 그래서 합체존은 해탈의 완성을 상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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