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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침략에 협력한 조동종의 참회문을 보면서...-우리는 무엇을 참회해야 하는가
  • 유정길_에코붓다 공동대표
  • 승인 2011.06.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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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했던 이치노헤 쇼코(一戶彰晃)스님은 조동종 승려로서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영합하고, 전쟁을 독려해왔던 종단의 역사를 조사하고 밝혀 '조동종의 전쟁'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다이토 사토시 (大東 仁) 스님도 진종 대곡파의 전쟁부역 진상을 밝히고 매년 그 내용을 알리는 평화전시회를 개최한다는 말을 듣고는 이 스님들이 종단내에서 영향력이 없는 소수집단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스님은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종단중심은 아닐지라도 주변부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두 스님이 속한 종단이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일본불교에서 조동종과 진종대곡파의 교세

   
▲ 조동종이 발표한 '참회와 사죄의 글'을 기초한 아리마 지츠조스님. 일본에서 가장 활동적인 해외개발구호단체인 SVA를 만들었고 강제징용자 유골반환운동, 북한의 인도적 지원활동 등을 이끌다 200년 64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일본의 불교사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필자는 ‘조동종’이 궁금해졌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인권, 평화, 환경'을 중요한 종단의 기치로 걸고 있었고 관련된 사회활동 비중이 적지 않았다. ‘일본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주변부 종단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일본 문화청에서 발간한 2009년 판 '종교연감'을 살펴보았다.

이 책에서는 일본불교 교세를 정토종계열(1천9백만)과 일련종계열(1천5백만), 선종계열(1천백만), 진언종계열(9천3백만), 천태종계열(3백만) 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중에서 단일 종단으로 가장 큰 곳은 어딜까? 바로 조동종이었다.
사찰수는 14,604개이며, 총 22,675분의 승려, 신도수는 대략 9백만이라고 한다. 그러면 진종 대곡파는 어떨까? '진종 본원사파'와 '정토종' 다음 규모로 8,766개의 사찰에 19,360명의 승려, 5,533,146명의 신도를 갖고 있는 종단이다. 개별종단으로는 조동종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특히 이번 일본 동북부재난지역인 미야기와 이와테, 후쿠시마현 사찰의 70%인 약 2,500개가 조동종 사찰이다.

   조동종의 참회와 사죄의 글

이미 앞에 소개한 진종대곡파의 부전결의(不戰決議)는 1995년에 발표된 것이다. 그런데 조동종의 자료들을 조사하다가 그보다 앞선 1992년에 발표한 참사문(讖謝文)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국가가 자행한 침략과 전쟁에 조동종이 행한 전력을 드러내면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민들에게 참회하고 사죄한 글이었다.

그런데 조동종의 참회문은 그동안 일본정부가 보여 온 사과와 달랐다. 일본정부의 사과는 내용도 문제지만 이후에 보여준 정치적 행동으로 인해 진심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조동종의 참회는 달랐다.
조동종의 참회문에는 '사죄 또는 죄'라는 용어가 9번, '잘못'은 8번, '전쟁책임 혹은 책임'이라는 용어가 7번, '참회 및 반성'은 4번, '맹세'라는 단어는 2번이 나온다. 내용도 3쪽이 넘는데다 참회도 매우 구체적이다.
과거 종단이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무시했던 행태와 조동종출신 스님이 자행한 잘못은 종단의 책임임을 분명히 했고, 참회 방식으로 잘못 기록된 역사서를 모두 수거 폐기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피해를 받은 수많은 아시아민중들의 인권과 고통을 공감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고, 이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연기적 존재로 공생하는 평화를 이룰 것을 다짐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과, 이후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어떠한 사상이나 세력에도 참여하지 않고 단호히 거부할 것을 맹세하였다. 참사문에는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자백하고 발로참회하며, 당사자에게 깊이 사죄를 하는 포살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음을 느꼈다.

필자는 조동종의 참사문이 발표된 지 20년후에야 알만큼 일본불교에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했다. 또한 일본의 어느 곳 보다 불교인 조동종이 깊은 마음을 담은 참회를 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다시 우리를 돌아본다.
나는, 조계종은, 한국불교는, 무엇을 누구에게 어떠한 참회를 해야할까?

   ‘참사문’ 발표까지 1년여에 거쳐 열렸던 지난한 토론

필자는 과연 이런 수준의 참회문을 조동종 책임자 이름으로 공식발표하면서 얼마나 내적인 공감과 동의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참사문’을 기초한 분은 당시 50대 중반이셨던 '아리마 지츠조 (有馬 実成)스님이었고 조동종에서 약 1년여에 토론을 했다는 것이었다.

조동종은 ‘참사문’을 발표한 뒤에 실천의 일환으로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과 중국인들의 유골을 대대적으로 발굴하고 봉환하는 활동을 해왔다. 조동종스님들의 명함에는 '인권, 평화, 환경'이라는 표어가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인권활동은 단연 주목되는 부분이다. ‘조동종인권옹호추진본부’는 가장 차별 받는 '부락민'들의 인권뿐 만 아니라 재일조선인인권 등을 위한 활동을 해왔고 야스쿠니의 공식참배 관련법 제정 반대, 티베트 문제, 이라크 전쟁, 핵실험 반대 등으로 종단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계속성과 축적성 있는 교류가 평화를 지속한다.

   
▲ 일본불교 최대 종단인 조동종은 일본저녁에 약 1만5천개의 사찰을 산하에 두고 있는 선종계열의 종단이다.사진의 조동종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화면으로 인권,평화,환경을 종단포교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조동종은 일본에서 가장 큰 종단으로서 참사문 발표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고 해서 조계종의 모든 스님이나 신도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조동종 역시 일치된 생각을 지속적으로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러한 의식을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시킬 수 있을까?
지속적이며 내용 있는 교류가 그 해답이다. 이를 통해 서로 구체적인 상대의 존재를 느끼도록 하는 것, 다시말해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할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러한 입장을 갖고 있는 분들이 종단에서 역할과 위상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11 일본동북지역 대재난’이 발생했을 때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불교계는 자비의 큰 마음으로 모금에 동참했다. 또한 7월초에는 조계종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하여 여러 중진스님들이 조동종을 방문하여 기금과 물품을 전달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천도의식을 행한다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의미있고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람이 있다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일불교의 관계가 종단 상층부의 의례적인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축적성과 계속성'이 보장된 관계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아시아지역은 유일하게 세계적 추세를 역행해 군사적 긴장이 높고 가장 빠른 속도로 군비증강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지역 국가 모두가 불교 인연이 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평화를 위한 불교의 역할은 그 어느 때 보다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는 김호성교수의 이야기는 그래서 깊은 울림이 있다.

“참회하기 전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역시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논리입니다. 이를 깨달음으로써 그러한 생각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참회하라고 강요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비폭력은 아니거든요. 참회하지 않아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 우익 보수주의자들과 다른 입론(입각지)를 갖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을 일깨우는 작업까지 그만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민족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이익을 포함하여 인류 문명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호성,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 정우서적, 153쪽.) (끝)

참사문(懺謝文)
참회(懺悔)와 사죄(謝罪)의 글

우리 조동종은 메이지 정권 이후 태평양전쟁의 종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에서 해외 개교(開敎)라는 미명하에 당시 정치권력의 아시아 지배 야망에 가담, 영합하여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습니다.

또한 탈아입구(脫亞入歐)하에, 아시아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멸시하고 일본의 국체와 불교에 대한 우월감으로 일본의 문화를 강요하고, 민족의 긍지와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해왔습니다. 게다가 불교의 교리에도 어긋나는 행위를 석가모니 세존과 삼국전등(三國傳燈)의 역대 조사의 이름으로 행해 왔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해외전도(海外傳道)의 역사 위에 저질러 온 중대한 죄(過ち : 잘못,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아시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心からなる) 사죄(謝罪)를 행하고 참회(懺悔)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껏 해외전도를 종사해 온 사람들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일본의 해외 침략에 갈채를 보내고, 그것을 정당화해 온 종문(宗門)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조동종이 1980년에 출판한 책인 <조동종 해외개교 전도의 역사(曹洞宗 海外開敎 傳道史)>가 과거의 죄에 대해 반성이 결여된 상태로 발간되었고, 게다가 책의 본문에는 과거의 잘못을 긍정할 뿐 아니라 때로는 미화하거나 찬탄하며, 피해를 당한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도 배려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말한 것, 게다가 과거의 망령과 같은, 그리고 근대 일본의 오욕이라고 해야 할 황국사관을 긍정하는 듯한 시각으로 집필 출판되었던 것을 수치로 생각합니다.

또한 동시에 이러한 서적이 태평양전쟁 후 35년이 경과한 뒤에 출판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문이 메이지 시대 이후, 어떤 때는 국가에 아첨, 영합하고,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국가 정책(國策)에 가담하여 전쟁에 협력하면서 아시아 민중에게 도탄과 고통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없었고, 그 책임조차도 느끼지 못해 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카 (E.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으나, 유감스럽게 우리 종문은 이러한 대화 노력을 게을리 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를 묻고,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면서 자신의 좌표축을 규명하려는 자세를 갖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1945년 패전 직후에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할 ‘전쟁 책임’에 대한 자기 비판을 게을리 한 것입니다.

조동종이 늦었다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그 태만함을 사죄하고 전쟁 협력의 사실을 인정하며 사죄합니다.

우리는 ‘전쟁 책임’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아시아 사람들의 고통 위에 서서 1985년 2월 이후 <조동종 해외개교 전도역사> 책의 문구 하나하나에 대해 철저한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 곳곳에 ‘민족 차별에 의한 차별적 표현’, ‘국책인 황민화 정책에 가담한 사실에 반성이 없는 표현’이 보이고, 이 책이 역사의 기록으로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집필된 것일 뿐 아니라, 억압받은 사람들의 인권의 관점이 결여되었으며, 인권옹호를 추진하려는 우리 종문의 입장과 서로 모순되는 것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이 책을 회수하여 폐기처분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책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차별적 표현을 지적했지만, 그 지적은 이 책의 오류를 지탄(指彈)하는 것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반성을 게을리 하고, 전쟁책임을 회피해 온 우리 종문과 전 종문 사람들에게 향해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불교는​​ 모든 인간이 불제자(佛子)로서 평등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타인에게 훼손(毁損)을 당해서는 안 되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석존의 법맥을 지켜나가는 것(嗣受)을 신앙의 귀추(歸趨)로 하는 우리 종문이, 아시아의 다른 민족을 침략하는 전쟁을 성전으로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특히 조선·한반도에서 일본은 황후 암살이라는 폭거(暴挙)를 저지르고, 조선을 속국화하여 결국 한일합방으로 한 국가와 민족을 말살(抹殺)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조선민족의 일본 동화를 도모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때,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이 어딘가 귀속되기를 원합니다. 가족, 언어, 민족, 국가, 국토, 문화, 신앙 등 자신이 귀속되는 곳의 정체성이 보장될 때, 사람은 안식을 느끼게 됩니다. 정체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황민화 정책은 조선 민족의 국가를 빼앗고, 언어를 빼앗고, 창씨개명이라는 민족문화에 뿌리를 둔 개인의 이름까지도 빼앗아 버렸습니다.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의 종교는 그 만행을 종교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종문은 중국 등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민중의 선무공작(宣撫工作)을 담당하고, 그 중에는 솔선하여 특무기관에 접촉, 스파이 활동을 벌인 승려도 있었습니다. 불교를 국가 정책이라는 세속법에 예속시키고, 더욱이 다른 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빼앗아 버리는 이중의 잘못을 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맹세합니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을.

사람은 누구라도 타인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박해받는 일은 용인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둘도 없는 존재로서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사람과 민족도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로서 타인의 침해를 거부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개별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과 국가도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통신과 교통기술이 진보하고 지구는 좁아져 정치와 경제가 국제화된 오늘, 지구는 하나의 공동체임이 분명해졌습니다. 불교가 말한 모든 존재가 ‘연기’된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도, 국가도, 민족도, 그것이 ‘연기’적 존재로서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 존재한다면, 타인을 침해하는 것은, 곧 자기 존재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다른 존재와의 공생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타인과의 공존이야말로 자신이 생존하는 근거인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다스리며,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고, 타인과 더불어 함께 배우며 사는 삶이야말로 불교의 평화사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러한 관점을 놓치고, 불교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의 사상, 어느 하나의 신앙이, 비록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비록 어느 정도 완벽한 이론으로 무장하여 등장한다고 해도, 그것이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타인과의 공생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상을 거부하는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은, 그것들을 넘어 훨씬 더 엄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맹세합니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을. 그리고 과거 일본의 압정(壓政)에 시달렸던 아시아인들에게 깊이 사죄하며, 권력에 가담하여 가해자의 편에 서서 개교(開敎)에 임했던 조동종의 해외 전도의 잘못을 마음 깊이 사죄합니다.

1992년 11월 20일
曹洞宗 宗務總長
大竹明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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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자 2011-07-02 11:41:32

    종교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왜소화되는 현대사회.
    첨단문명의 선구자 역할이 현대 종교에 원하는 것이 아닌것은 자명한 현실.
    발달 성장 개발 첨단 이라는 단어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문제.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변해도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길은 하나라는 것을 종교는 끊임없이
    바뀐 시대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불교의 참회와 사죄는 그런 종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삭제

    • 흠... 2011-06-30 21:17:27

      한국의 3대 종단 중에는 애국을 종단의 기치로 내세우는 곳도 있죠.
      애국이 나쁜 것은 아니죠. 독재자들의 통치 구호를 따라한 것이 문제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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