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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일불교교류, 이면(裏面)까지 내려가자
  • 김호성 / 동국대 교수·일본불교사연구소 소장
  • 승인 2011.07.10 23:34
  • 댓글 2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에 대지진과 해일(쓰나미)이 덮친 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쓸려가고, 화재에 희생되었다.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죽어갔다. 약 2만 5천명이나 되는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2만 5천의 고귀한 생명은 동북아 평화를 앞당기는 ‘평화의 보살’로서 희생한 것이라, 유정길 선생은 말씀하셨다. 정말 그랬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얼마나 미워하였는지를 생각하면,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분들이 우리의 얼었던 마음을 많이 녹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도 없지 않았다. 유명한 가수로서, 독도지킴이로서도 힘써 활동해온 분의 이야기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활동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이다. 이 분은 수많은 한류스타들이 앞 다투어 기부금을 보시하는 물결 속에서도, 꿋꿋이 성금을 기부하지 않고 버텼다 한다. 그 이유는? 대지진피해 성금을 내면 그동안 그가 벌여온 독도지킴이 활동의 진정성이 의심받을까 우려해서였다는 것이다. 슬픈 일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뭔가에 눌리어져 있다. 주박(呪縛)되어 있다.

놀랍게도 해방 전에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사람들보다 해방 이후 세대가 일본에 대하여 더욱더 깊은 미움의 염(念)을 갖고 있다고 한다.(정대균 지음, 이경덕 옮김, 『한국인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강) 무서운 일이다. 경험한 세대는 그래도 일본인 가운데 선한 사람들도 있었음을, 일본인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있음을 경험했기에 전칭부정(全稱否定)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교육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우리 모두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랐다.

유정길 선생이 번역해서 보내준 「조동종의 참사문(懺謝文)」은 진정성이 느껴지는 참회문으로 생각되었다. 20년 전에 나온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것이 당시 종무총장(大竹明彦스님)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전 조동종 종도들의 마음속으로까지 넓혀지는 일이다. (조동종은 안 그럴 것으로 기대하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든가 이라크 전쟁 등 여러 문제에 대해서 불교종단 차원의 성명서가 더러 나오지만, 대개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을 일본의 어느 스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좀 더 하부단위로까지 내려가서, 일상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평이었다.

그런데 나는 2002년 일본에 있으면서 「참회 없는 용서」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 정우서적, 2011.) 일본의 참회가 있어야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라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자고 말했다. “참회하지 않더라도 용서하자. 다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만은 멈추지 말자”라는 요지였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일 아니겠는가.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마침내 쉬지 않는다”는 『법구경』의 말씀은 바로 비폭력의 핵심이다. 폭력을 비폭력으로 맞이하는 것,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 아니겠는가.

자, 어떻게 하면 우리 스스로 갖고 있는 콤플렉스(독도지킴이 운동의 진정성이 의심받을까봐, 마음에서 일어나라는 기부하라는 소리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 사례가 된다)를 극복해 가면서, 많은 일본 사람들이 아직도 갖고 있는 잘못된 역사의식을 수정할 수 있을까? 답은 교류(交流) 밖에 없다. 문제는 교류를 많이 해왔다는 것이다. 65년 국교수립 이후, 우리 불교와 일본불교 사이의 교류만 해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돌아서면 끝”이라는 점에 있다.

총지종의 화령정사(=이중석박사)가 지난해 어느 교류모임에 참여한 뒤에 쓴 기행문을 보고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처럼 한국사람은 한국 사람끼리, 일본 사람은 일본사람끼리 따로 앉아 대화도 없
이 만찬장에 앉아 있는 모습은 정말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통역을 군데군데 배치하
더라도 양국 불교도들이 의미 있는 대화도 좀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에 진정한 우의도 싹트게 될 것이다.(『총지종보』)

내가 속해 있는 불교학계 역시 마찬가지다. 학술교류를 많이 해왔다. 그러나 그 역시 일본학자는 일본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한국학자는 한국불교에 대해서 말하는 식이다. 그러고서는 “돌아서면 끝”이다. 교류한다는 상(相)은 남을는지 모르겠다. 어느 때 선배 학자에게 제언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일본불교를 말하고, 일본학자는 한국불교를 말하는 발표회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돌아오는 답 : “그럼 서로 부담스러워서 안 된다.” 그렇다.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그러나 그럴 때 헤어지고 난 뒤, 지속적으로 상호 이해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지 않겠는가.

큰 대회가 열리면 수십, 수백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기 전에 한번이라도, 단 몇 시간이라도 사전의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고 갔으면 좋겠다. 일본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일본불교에는 어떤 훌륭한 스님들이 존재해 왔는지….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고 갈 수 있도록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면, 점점 달라질 것으로 본다. 나는 “일본불교사연구소”까지 차려서, 이런 문제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힘이 너무 없다. 그저 씨앗을 뿌릴 밭을 만드느라 자갈돌을 걷어내고 있는 것뿐이다.

이번 조계종 총무원장스님의 방일은 뭔가 다를 것이라 기대하는 것 같다. 유정길 선생이 제언하는 자원봉사자 파견과 내가 제언하는 일본불교 공부,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총무원장스님의 “애프터서비스”를 간절히 기다려본다. 

   

김호성 동국대 불교대학 인도철학과 교수. 2002년 일본 '불교대학'(Bukkyo University, 교토 소재)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공부한 인연으로 일본불교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이를 통해 우리 불교와 불교학의 나아갈 길을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 란 책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불교를 통한 일본과 한국의 상호이해 증진'을 모토로 내걸고 <일본불교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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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현 2011-07-12 12:00:16

    가기 전에 우리끼리도 서로 알고 인사나누고 교류상대국인 일본이나 중국의 불교와 스님,신도에 관해 알아보고 가야합니다. 사전 지식을 얻고 자세를 알아보고 가야 제대로 느끼고 알 수 있습니다. 잘 모르면서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나 비판의식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어리석음의 탓이지요.   삭제

    • 김호성 2011-07-11 08:39:22

      인용문의 필자는 화령정사입니다. 충격을 받은 것, 필자입니다. 그러므로 "화령정사(=이중석 박사)는"을 "화령정사(=이중석박사)가"로 고쳐주세요. 죄송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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