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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불교, 양국간 깊은 갈등 치유 역할해야”[인터뷰] SVA 대표 치노 순코 (茅野俊幸)스님
  • 유정길 _에코붓다 공동대표
  • 승인 2011.12.2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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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노순코씨는 '산티 발런티어회 (Shanti Volunteer Association, SVA)'의 전무이사로서 대표 역할을 맡고 있다. SVA는 일본내에 48명의 실무자, 해외 5곳에 11명의 일본인 실무자와 113명의 현지인 실무자가 있어 국내외에 총 172명의 상근자를 둔 방대한 기구다.

필자가 치노순코 전무이사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화사하고 귀티나는 동안의 부드러운 인상이 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만날 수록 분명하게 하게 되었다. 자애로운 인상에다 출중한 업무능력으로 그 자신이 현재 17년을 넘게 활동해 온 SVA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 국내 대부분의 NGO, NPO네트워크, 불교 NGO기구의 주요 직책에서 그의 이름이 없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본의 사회운동과 국제협력활동, 불교운동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 우선 자신의 활동 경력과 소개를 해달라

   
▲ SVA 대표 치노 순코 (茅野俊幸)스님.'산티 발런티어회 (Shanti Volunteer Assosiation, SVA)'의 전무이사로서 대표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조동종이 재단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学) 불교학과를 나왔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스님이 되었다. 고향인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서 살면서 지역에서 사회교육활동을 했다. 평생교육센터나, 지역 도서관활동, 시민강좌 등의 활동을 했다. 그리고 대학과 지역을 연결하는 활동을 했다. 절은 현재 아버님이 주지이시고, 내가 부주지이다. 그런데 내년이면 바뀌어야 한다. 한때 나가노현의 지사인 다나카 야스호의 후원회 간사장을 3번 했다. 내가 선거참모를 했을 때는 모두 당선이 되었는데 SVA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4번째 선거에서 그는 떨어졌다. (웃음) SVA를 시작한 것은 95년 당시 33살(95년)때 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 조동종과 SVA는 어떤 관계인가

SVA와 조동종은 현재 독립적 관계이며, 조동종의 외부단체로 되어있다. 평소에는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이번처럼 긴급지원의 경우에는 서로 관계를 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SVA는 처음에 '조동종동남아시아 난민구제회의(JSRC)'라는 이름으로 조동종에서 정책적으로 만들었다. 그곳 난민켐프에서 2년간 활동한 뒤 이름을 '조동종 발런티어협회(SVA - Sotoshu)'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이후 다시 '산티 발런티어회 (SVA - Shanti)로 이름을 변경했다.

   - 조동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단히 실효성 있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인권, 평화, 환경'을 사회활동으로 주력하고 있는데, 조동종이 사회문제 대해 발언하고 참여하게 된 상황이 궁금하다.

물론 이전에도 개별적으로, 종단에 소속된 분들이 부분적인 사회활동을 했지만 본격화된 것은 1979년 조동종 총무원장이 WCRP 유엔회의에서의 부락차별발언 사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문제는 부락민 (과거 천민이었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아직도 차별을 받고 있음)들의 항의도 있었고, 실제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 사건을 공식 사과하면서 조동종은 본격적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많은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안을 봐야지 밖을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으로 모든 것을 '안'의 문제, ‘마음’의 문제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대상도 일반인이 아니라 조동종의 신도를 대상으로한 폐쇄적인 사업만을 해왔었다. 그러나 ‘부락차별발언사건’후부터 '밖’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의 인권, 환경, 평화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왜 도서지원, 모바일도서관 사업인가

   - SVA 활동에 대해 설명해 달라. 왜 도서와 서관을 지어주는 활동을 주로 하게 되었는가

처음 현장에서 어린이에게 손으로 놀 수 있는 게임(손놀이, 와홍)과 인형극 등을 했는데. 그림책을 주었더니 관심이 높았다. 그래서 이후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려고 봉고차에 500~1000권의 책을 실어 난민캠프에 갔었다. 어린이들이 직접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읽어주고 들려주는 일인데, 통역을 매개로 해서 어른들이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

그것이 반응과 평가가 좋았다. 특히 학교나 마을개발은 결국 그 나라의 종교, 관습, 문화와 맞닫는 부분이라 조심해야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접근하지만 결국 지원하는 자기나라 방식이 은연중 스며들 가능성이 있어 특히 조심했는데, 도서지원, 도서관운동은 그럴 여지가 별로 없고 난민캠프가 책읽는 분위기로 바뀌는 대단한 효과가 있었다. 책읽는 것은, 동화책이나, 어린이 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이 좋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그러한 경험이 별로 없어서 대단히 좋아했다. 그림책이나 동화, 도서는 사람들에게 상상하게 만들고, 꿈을 꾸게 만든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은연중에 자발성과 활력을 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문맹퇴치를 위해서도, 상상력을 키워주고 희망을 갖게 해주는 도서지원, 도서관활동은 난민캠프에서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이 전문가 및 스토리텔링 전문가의 어드바이스를 얻어서 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 도서·도서관 지원 사업으로 현장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현장에서 책을 읽고 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난민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배움이라는 것이 위 아래있는 것이 아니고, 수평적으로 서로 같이 배우고 같이 살아가는 공생의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을 자신들이 많이 배우게 되었다.

우리는 전문가의 의견을 많이 청취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고, 초등교육에 대한 교육기초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도서관과 그것을 지도하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주력하면서 활동했고, 물론 학교 교사양성을 위한 교육도 동시에 실시했었다.

   - 도서관 사업만이 아니라 실제 학교도 많이 건설했고, 특히 교사들 교육에 대단히 집중한 것 같다.

도서를 보내고 도서관운동이 중심이 되어 어린이들과 지역의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 목표지만, 동시에 문맹퇴치를 위해서도 많은 학교를 건설했다. 그리고 건물만이 아니라 교사들의 자질향상과 능력고양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차례 연수회를 실시했다. 물론 건물은 현지의 건설기술자를 스텝으로 두고 설계와 시공을 했고, 돌쌓는 일이나 대부분의 단순한 일은 마을사람들이 무보수 자원활동으로 참여하도록 했고 우리는 이들에게 식사만을 제공했다. 물론 마을의 기술자들에게는 기본수준의 비용을 지불했다.

   - 도서관 사업을 기조로 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그래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활동이 있지 않는가

그렇다. 현재 태국에서는 도서관운동을 실시하면서 동시에 타이의 슬럼가 어린이, 소수민족의 초등학교학생들, 미얀마 국경의 카렌족 난민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장학금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350여명 정도지원한다. 그리고 라오스에서는 소수민족을 위한 학교건설과 교육개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건설사업은 마을주민들의 자신 일이기 때문에 자원봉사로 참여한다. 그리고 건설후에는 마을이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연결시켜주는 활동도 하고 있다. 우리는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건설, 원칙에 맞지 않으면 건설사업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을자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는 이동도서관을 파견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까지도 도로정비가 안되어 있어서 이동도서관을 파견하여 운영하였다. 일정기간동안 마을에 가서 책을 빌려주고 일정시간(일주일정도)이 지난 뒤에 다시 수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당일 책을 읽게 하기도 했고, SVA직원들이 읽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 곳은 상설도서관도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곳에 학교도 짓기도 했다.

   - 일본에서 그림책을 모아 보내는데 일본어로 된 글씨를 어떻게 하는가

지금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그림책을 모아서 아프간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데, 이프간은 파슈토어나 달리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그곳의 언어를 아는 사람들에게 번역을 시켜 스티커로 붙여 읽게 한다. 2011년 현재 18,200권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아프가니스탄에 나눠주었다. 한편으로 현지에서 도서나 동화집, 그림책을 출판한다. 아프간의 경우 그림 그리는 작가가 없어서 간판을 그리는 사람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 나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칸다하르, 바미안 등지에서 2002년부터 햇수로 5년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 납치 살해사건 이후 한국인에게는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내가 있을 당시에도 일본인이 살해당한 적이 있었다. 최근 아프간의 치안 상황은 어떠한가

아프간은 아직도 치안문제도 있고 해서 일본스텝 파견을 하지 않고있다. 현재 현지스텝 11명과 초키다리 5명을 합쳐서 총 16명이 활동하고 있다. 아프간에 학교를 많이 지었다. 물론 학교건설사업은 건설회사에 위탁해서 짓고 있다. 다른나라의 경우는 7-80%는 건설회사가 하는데, 아프간에도 담장을 쌓는 일 등을 마을 사람들이 한다. 스스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도 이들에게 식사는 제공한다. 아프간사람들에게 자원활동을 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SVA활동의 궁극의 목표는 무엇인가

   - 많은 경우 지원하는 단체들의 궁극적인 지향을 자신들의 나라처럼 풍요로운 나라가 되는 것을 은연 중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원사업은 마을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우리 NGO는 틈을 만들어주는 사람(크래커)이다.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SVA 활동에 있어서 특별히 다른 원칙들이 있는가

종종 다른 단체는 짧은 시간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지인들이 걷는 속도로” 간다는 것이 방침이다. 그들의 준비되는 속도에 맞춰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지원하는 단체의 욕심과 자기의지가 개입된다. 그러면 좋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교육지원 활동은 금방 효과가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10~20년간 긴 시간을 두고 그 지역에서 활동하려고 한다.

   - SVA가 현지활동을 하는데 중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기구가 아니라 현지인이 스스로가 운영하여 자립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올해부터 3개년 목표로 지역의 기구들을 자립화하는 것이다. 또한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국경이 붙어있는 인근국가들 간에 동맹을 결성하여 서로 지원하고 상호 부조하는 협력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재난이 발생할 때 가까이 있는 그들이 서로 지원한다면 엄청난 효율적이 있다. 도서관의 경우에는 교육청과 연결하여 도서관 관리기술 등을 전해주면서 그것을 통해 난민들을 변화시키고, 결국 교육전체의 변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는 불교단체이지만, 불교를 지원하지 않는다.

   - 현재 지원하고 있는 나라인 캄보디아나 라오스, 태국은 모두 불교국가이다. 불교를 지원하는 활동은 하지 않는가. 그곳의 불교에서도 지원을 요청하지는 않는가

   
▲ 산티국제발런티어회 홈페이지 화면.
우리의 활동중에 주된 사업은 아니지만, 캄보디아의 부흥은 불교문화의 고려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현지에서 제안과 요청이 있어왔다. 불교가 바로 정신적인 구심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를 지원하는 것은 종교지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했으며,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운동, 불교사원을 통한 환경운동, 자연보호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래서 스님들과 불교리더들을 대상으로한 다양한 교육지원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나라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캄보디아의 경우 우리는 '교육 지원'사업과 또 하나는 '종교지원'사업이었다.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일과 자연을 보전하는 활동'을 불교사찰을 통해서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문화협력 차원에서 스바이리엔주에 젊은 스님들을 교육 양성하는 지원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한 난민켐프의 부소장이었던 스님이 계셨다. 그 스님은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을 복구하는데 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우리도 그곳의 문화로 볼때 그 방법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스님이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고, 일본의 불교종단인 입정교성회도 함께 우리를 통해 대장경 복구하는 불교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 캄보디아 이외의 다른 나라도 불교지원을 하는가

캄보디아는 특별한 경우였다. 우리는 불교를 바탕으로 하는 단체이다. 종교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다양성이라는 원칙으로 불교에 대해 치우쳐 지원하지 않는다. 캄보디아는 불교이기 때문에 지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지키고 환경을 지키는데 불교가 문화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지원한 것이다.

우리는 민족이나 종교를 초월하여 활동하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가 지원하는 아프간은 이슬람이고, 미얀마의 카렌족은 기독교인이 많다. 불교이기 때문에 지원한다는 방침은 갖고 있지 않다. 불교국가에서 불교에 대한 요청이 있지만, 우리는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먼저 지원한다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다. 따라서 불교라고 우선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 그곳에 한국단체들도 많이 활동하는데 그들의 활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캄보디아의 한 불교지도자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한국 기독교의 NGO들이 절에 와서 성경뿌리고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3.11 동일본대지진 지역의 실태와 SVA의 활동

   - 현재 SVA는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긴급지원을 하고 있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미야기현의 게센누마(氣仙沼)와 이와테현의 도노(遠野)시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현의 미나미소마(南相馬)에서 지역민들과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와테현의 야마다, 오후나토. 레쿠젠다카다 4곳 등지에 긴급 식량지원과 이동도서관 활동을 하고 있다.

가설주택(피난민)을 순회해서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데 가설주택은 피난소보다 더 고립되어있다. 실제 과거 피난민들의 80-90%는 가설주택에 옮겨졌다. 그러나 산속이나 높은 곳에 지었기 때문에 노인들의 경우 이동이 어려워 거동이 불편하다.

쓰나미를 당한 지역은 농업이나 어업을 하던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회사원이라면 도시에 사무실 있어서 일을 계속할 수 있지만, 자영업가 많은 이곳 사람들에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폐허에서 많은 쓰레기들이 많이 나와서 그것을 제거하는 일에 현지인들이 단기간 고용되어 정부가 임금을 주면서 하고 있는 정도이다.

   - 후쿠시마는 아직도 방사능물질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곳에서는 어떠한 활동을 하는가

이와테와 미야기 현은 희망을 말할수 있지만, 후쿠시마는 현재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다. 방사능 때문에 고향을 잃어버려 거의 난민들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 후쿠시마는 아직도 재해가 계속되고 있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후쿠시마 사람들이 즐거워할 일이 없다. 그래서 웃음을 갖게하는 일이 큰 지원이 되고 있고 그들의 정서적 위로와 격려가 중요한 활동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만담가나, 가수, 연예인, 오케스트라 등이 가서 그들을 지원하고 돕고 있다.

   - 현지에서 느끼는 방사능의 실태는 어떤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31.4km 떨어진 중학교가 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수업을 하지 못해 아이들이 중학교로 등교를 하면 버스가 와서 멀리 떨어진 한 국민학교의 강당에 벽을 만들어 반을 나누어 수업을 하고 있다. 전학교의 일일 버스대절비 만 100만엔이 드는데, 동경전력이 부담하고 있다.

심각한 것은 30km 권내에는 현재 방사능제거작업을 하고 있는데, 공원의 표토 10cm를 걷어내면 오염이 제거된다고 한다. 체르노빌의 경우 외부의 흙을 가져와 객토를 했는데, 이 공원은 같은 공원의 흙으로 객토하고, 그 흙을 파낸곳에 오염된 흙을 매립하곤 해서 큰 비판이 일었었다. 그러나 사립 유치원이나 보육원의 경우는 예산이 없어서 마당의 흙을 객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으로 심각하다. .

   - 불교잡지에서 ‘불교가 사회적인 문제에 대대적으로 참여한 경우는 일본역사 이래 초유의 일’ 이라는 글을 봤다. 재난지역에서 불교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지금 현지에서 불교사찰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할이라기 보다 오히려 불교가 안하면 안되는 일들이다. 우선 쓰나미로 사찰이 휩쓸려갔고 주변에 있는 단가묘지도 모두 사라졌다. 이에 대한 복구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또한 쓰나미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장례식도 불교가 해야 할 일이며, 이들을 위로하고 상담하는 많은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 필자와 함께 한 치노 순코 스님.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나라로서 많은 갈등이 있어왔다면서 한·일 불교가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서지지 않고 남아있는 절은 피난소로 사용하든가, 유골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일본의 불교는 보다 더 사회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전향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사찰들도 이타행을 하면 결국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쓰나미로 화장터도 많이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있는 화장터도 피난소가 되었다. 지진이 많은 일본은 곳곳에 정해진 피난소가 있다. 그런데 지정된 피난소가 쓰나미로 없어지는 바람에 사찰과 화장터가 피난처 역할을 했다.

레쿠젠다카타는 아버지나 어버니를 모두 잃은 아이가 300명정도가 된다. 이번 쓰나미로 여성들이 많이 죽었다. 지진이 발생한 시간이 2시45분이라서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마중나가는 도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지진발생 15일 뒤에야 쓰레기 속에서 어머니와 4살난 여동생과, 초등학교입학예정인 여동생이 발견했다. 그 꼬마는 매일 밤 그 쓰레기더미 앞에서 울곤 했다. 그러나 이후 내가 울면 아버지가 힘들어하니까 내일부터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했다.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다.

해외분쟁지역에서 항상 느끼지만, 아이들은 항상 미래에 낙관적이다. 캄보디아 난민이나 라오스에서도 아이들에게는 낙심과 실의라는 것이 없다. 항상 언제나 눈이 빛나고 밝다. 그것이 미래이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 불자들이 성금을 모아서 조동종을 통해 SVA에 전달되었다. 한국인과 불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한국의 조계종에서 초기에 많은 모금을 해주셔서 조동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조계종 총무원장님께서 직접 현지를 방문하셨다. 한국으로부터 이러한 지원을 받은 것을 우리단체로서는 최초였다. 그동안 한일간의 역사적인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감회가 깊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불교의 지원금은 이재민들의 초기 비상식량지원에 집중적으로 사용했고, 후쿠시마 프로그램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나라로서 많은 갈등이 있어왔다. 조동종은 1992년에 침략과 전쟁참여에 장문의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갈등이 깊을수록 교류가 더욱 많아져야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젊은이들의 교류가 많았으면 좋겠다. 과거 태국의 워크캠프에서 일본, 캄보디아, 태국의 어린이들이 함께 문화적인 교류를 하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이들끼리 아주 창조적으로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앞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깊어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일본대지진의 조계종의 지원을 계기로 그러한 시기라 빨리 앞당겨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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