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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불제자… 서로 마주보고 알아가야”[인터뷰] 일본 조동종 재무부장 진노텟슈 스님
“조계종 대지진 지원 감사…교류 이어 새로운 미래를”

한국인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한국불교에게 일본불교는 무엇인가?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흉터 그대로 남아있고, 그 과정에서 보인 일본불교의 행태 역시 한국불교에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아픈 과거사를 딛고 미래를 설계하는 움직임도 필요한 시점이다. 슬픔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보살행의 근본. 지난해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을 덮친 대지진으로 큰 슬픔에 빠진 일본국민과 일본불교를 한국불교가 찾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눴다.

지난 16~17일 3.11 대지진 지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일본 불교계의 부처님연등축제 참가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 일본 조동종 재무부장 진노텟슈(神野哲州)스님을 <불교포커스> 편집실에서 만났다.

진노텟슈 스님은 일본 조동종을 ‘한국의 조계종과 형제’격이라고 소개했다. 800여 년 전 중국의 선불교가 일본에 전해지면서부터 조동종의 역사는 시작됐다. “한국에 수행종단인 조계종이 있다면 일본에는 조동종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현재 8만여 개의 사찰이 있다. 200년 전에는 그 숫자가 12만개였다. 조동종은 메이지유신 이후 정권의 불교 억압으로 8만개의 종단 소속 사찰이 2만개로 줄었고 현재는 1만 4천 여 개다. 현재 조동종 스님은 2만 명 정도이며, 신도는 8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 일본 조동종 종무청 재무부장 진노텟슈 스님.
“한 조계종-일 조동종은 형제”

스님의 이번 방한의 주목적은 조계종의 대지진 지원 감사인사와 한국의 연등축제에 일본스님과 불자들의 참여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것. 그러나 조계종 지도자연수 기간과 겹쳐 실무자만 만나고 돌아갔다.

진노텟슈 스님은 “25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연등축제를 처음 본 뒤 지난 2006년에는 직접 참여했으며 이를 일본에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두 번의 경험을 가지고 연등축제 제등행렬에 참여하고 일본 불교를 알릴 수 있는 부스를 설치해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했다”고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앞서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조동종을 연등축제에 공식 초청한 바 있다.

스님은 한국의 연등회(연등축제)에 대해 “불자들이 스스로 참여해 생동감 있는 축제”라고 평가했다.

“일본에도 ‘하나마츠리(花祭)’가 있지만 지역이나 사찰 단위로 열리고 있으며 한국처럼 TV로 중계하고 대규모로 열리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행사의 주체가 스님이지만 한국은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것을 배우고 싶은 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스님은 “한국의 연등회를 보며 더욱 감격스러웠던 것은 참여 신도들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욕, 제등행렬 등 생생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한국 연등회에 감동 일본불교에 전하고파”

일본 조동종과 한국 조계종이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3.11 대지진이 계기였다. 수십 년 간 한일불교교류대회가 양국을 오가며 열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본의 최대 종파인 조동종과는 무관하게 열려왔다고 스님은 전했다.

조계종은 일본 동북부 대지진 이후 모금활동을 벌여 지난해 7월 총무원장 자승스님 등이 직접 일본을 찾아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을 통해 모금한 일본 지진피해 복구 지원금 2천만 엔(한화 2억6천만 원)을 조동종이 설립한 자원봉사단체인 ‘샨티국제자원봉사협회(SVA)’에 전달했다.

스님은 조계종의 피해복구 지원에 대해 “고맙고 놀라운 일”이라고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했다.

“동북3현(미야기현,후쿠시마현,이와테현)에 조동종 소속 50개 사찰이 파괴됐습니다. 사찰뿐만 아니라 ‘단가’(檀家) 조직도 붕괴됐습니다.”

일본불교의 단가제도(檀家制度)는 17세기 중반 이후 정착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일본의 거의 모든 가정은 불교사원에 소속되어, 자신이 속한 사찰에 상장례를 일임하고 있다. 상장례를 중심으로 맺어진 불교사원과 가정(혹은 개인) 사이의 대를 이어 지속되는 관계가 바로 단가제도다. 지진해일로 인한 사찰의 파괴도 문제지만 사찰의 유지의 기반이 모두 붕괴된 것이다.

   
▲ 미야기현 나토리시 유리아게구 조동종 동선사. 대지진으로 사찰도 거의 붕괴되다시피했고 납골묘 수만기도 폐허로 변했다.
진노텟슈 스님은 “단가가 붕괴가 되어 이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 사찰 청년회를 우선 부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사찰이 이런 상황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알리고 본존불을 다시 모셨다고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당국은 피해지역민 이주계획에 따라 주민들에게는 이주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사찰도 이주하라고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주비용이 미미해 어려움이 크다고 스님은 전했다.


“조계종 지원‧위로 큰 도움”

스님은 “복구가 막막한 상황에서 한국 조계종의 지원금은 매우 큰 금액이었고 고맙고 놀라운 일이었다”며 “종단이 직접 모금해 전달하고 직접 찾아와 구호활동을 벌인 것을 공식문서화 해 기록으로 남겨두었다”고 말했다.

그러한 한일불교의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일본불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진노텟슈 스님은 “그러한 인식은 일본 역사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150년 전 메이지유신 이후 1개의 마을에는 하나의 사찰만 허락되었으며 스님들은 강제로 결혼하게 했고 사찰은 세습하도록 강제되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신의 나라(神國)’으로 선언한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강력한 정책으로 인해 일본 불교 역시 외부의 힘에 의해 바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세습불교도 변화가 시작됐다고 스님은 설명했다. “세습이 아닌 불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결심하고 출가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조동종은 지난 1992년 참사문(讖謝文)을 발표했다. 과거 국가가 자행한 침략과 전쟁에 조동종이 행한 전력을 드러내면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민들에게 참회하고 사죄한 글이었다. 일본 불교, 특히 조동종과 진종 대곡파 등은 일제 강점기 전쟁에 부역하며 ‘침략을 미화하는 선무공작의 첨병 역할’을 했다.


“과거 참회 되새김 오히려 고마운 일”

이에 대해 스님은 “(일제 강점기는)일본을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메이지 유신 이후 사찰은 탄압을 받으면서 ‘신사’가 될 것인지 ‘사찰’로 남을 것인지를 강요당하며 택일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승려의 지위도 아주 천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역사적인 아픔이며 그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참사문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종의 참사문 발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일본과 일본불교의 과거를 비판한다. 진노텟슈 스님은 “나는 전후세대라 그 시기를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말해도 어쩔 수없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우리가 받은 만한 일이며, 오히려 과거사를 알지 못하는 일본인들에게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동종은 이후 인권‧평화‧환경을 종단포교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조동종은 참사문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의 유골을 한국에 반환하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동종이 강제징용자의 유골 반환의 처음 시작은 40여 년 전이다. 아리마 지츠조 스님이 아먀구치현에서 개인적으로 시작해 지난 2005년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과 노무현 대통령의 협의를 통해 구체화됐다. 강제 징용에 의한 한국인들의 유골 귀한을 위한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일본 각지의 사찰에 모셔진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숫자를 파악해 보니 700명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한국인으로 판명된 것은 100여 명이었습니다. 유족까지 확인된 경우는 5~6명이었습니다.”


   
▲ 지난해 7월 일본 요꼬하마 조동종 대본산 총지사에서 열린 조계종-조동종 대표단 간담회. 양 종단은상호이해를 바탕으로 교류를 확대해 세계평화라는 공동 목표를 실현하는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강제징용 조선인 유골 귀환 논의 재개 희망”

그러나 양국 정권이 교체되면서 강제징용자 유골 귀향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래서 조동종은 이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유골을 정부에 반환해야 할지 조계종을 통할지 논의를 진행 중이며 조계종 측에 의향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불교, 특히 조동종은 한국과의 공식 교류는 이제 걸음마 단계이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양상이 다르다. 지난해 작고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일본 조동종 신도였다. 스님에게 ‘세계 속의 일본불교’의 위상을 물었다.

   
▲ 일본불교 최대 종단인 조동종은 일본 전역에 약 1만4천개의 사찰을 산하에 두고 있는 선종 종단이다. 조동종 홈페이지에는 종단 포교의 근간이 인권‧평화‧환경임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불교는 일찌감치 외국인들을 ‘소도(僧堂)’에 받아들여 일본 승려와 같은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40여 년 전 데시마루 다이세(弟子泰仙) 스님이 프랑스로 건너가 키워낸 제자만 3천명입니다. 미국도 이민자 사회에 불교가 함께 있다가 현지인들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본 현지에서 불교를 접한 이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젠 마스터(Zen Master)’가 되어 ‘젠’을 전파한다. 참선을 뜻하는 영어가 ‘Seon’이 아닌 ‘Zen’이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10월 도쿄에서 열린 조동종 세계대회에는 300여 명이 세계 각국에서 참가했다. 이중 순수 외국인이 1/3, 일본계 외국인이 1/3, 일본인이 1/3 이었다.

진노텟슈 스님은 “미국에 조동종 사찰이 50여개고 프랑스에는 승려만 3천여 명”이라며 “ 특히 프랑스에서는 고성(古城) 하나를 매입해 선 수행을 하며 유기농 농사를 짓고 승복을 제작하는 등 자립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조동종은 북미(LA)와 하와이, 남미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프랑스(파리) 등 4곳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서로 마주보라, 서로 전달하라, 서로 지지하라’

진노텟슈 스님은 “우선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기 위해 템플스테이와 연등축제에 젊은 불자들을 보내 한국불교를 알게 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한국과 일본인 모두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오늘의 일본 조동종이 채택한 슬로건은 ‘서로 마주보라, 서로 전달하라, 서로 지지하라’이라고 스님은 소개했다. 스님은 “일본 안에서 뿐 만 아니라 한국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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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자 2012-03-19 17:15:30

    단가제도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불교가 탄압을 받았던 역사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라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강제징용 조선인 유골 귀환에 대한 논의가 꼭 다시 재개되었으면 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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